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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연/메세지

예수님께 칭찬듣는 나다나엘

by Andrew Y Lee 2023. 7. 19.

예수님께 칭찬 듣는 나다나엘

 

요한복음 1장 43~51절

 

샬롬!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주 유명한 책이 있다.

오래된 책인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런 책이다.

 

켄 블랜차드라고 하는 분이 쓰신 책인데

조련사가 범고래를 조련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다.

 

고래가 반응을 일으키는데 사람들이 자기에게

잘해주는 거, 칭찬 같은 거,

이런 것을 알아내고 반응을 한다고

이걸 고래 반응이라고 한다.

 

반면에 뒤통수치기 반응이 있는데

이건 사람들이 자기에게 잘못하는 거, 못해주는 거,

이런 걸 잡아내는 반응이라고

그래서 이 고래가 두 가지 반응하는 것에 힌트를 얻어

사람도 여러 가지 사회생활, 가정생활, 모든 생활 속에서

칭찬을 필요로 하는구나.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런 제목으로 쓴 책이다.

 

이 칭찬은 예수님의 방법이기도 한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하시면서

이 일곱 교회는 이천년 교회 시대에 모든 되어져 가는

교회 시대의 모습들, 초대교회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의

시대적인 교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그 일곱 개의 칭찬이나 책망, 권면,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

이것은 또 이천년 동안 모든 교회에

그대로 다 적용이 되는 말씀이기도 한다.

 

책망이 없는 교회도 있었지만

칭찬은 교회마다 다 칭찬을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다.

예수님은 먼저 칭찬을 해주시고

그 다음에 두 가지 책망할 것이 있다 그러면서

책망을 하신다.

 

공생애 도중에는 예수님이 많은 칭찬을 하셨다.

백부장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

그런 표현을 하셨고

예수님 옷자락에 손만 대도 낳은 가난한 여인의

믿음을 보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칭찬해 주셨다.

 

본문 가운데 나다나엘에게도 칭찬하시는 모습이 있는데

이 나다나엘에게 칭찬하시는 모습을 우리가 교훈으로 받고

우리도 예수님께 칭찬 들을 수 있는

그런 개인과 가정, 교회 또는 공동체 되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다.

 

첫 번째

인생을 살펴보시고 칭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예수님은 그냥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 대상을 보시고 칭찬을 하시는 것이다.

 

42에도 보면

안드레가 그 형제 베드로를 데리고 오니까

예수님이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하리라 하시니라

그 베드로를 딱 보시고 그의 장래에 수제자가 될 것을

반석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 47에도 보니까

예수님이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걸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아주 칭찬하신 내용이다.

 

48에도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그럴 때 예수님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예수님은 이미 나다나엘을 만나기 전부터

나다나엘을 다 보고 계셨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 18 말씀에 보면

두아디라에 편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 눈이 불꽃 같고 그랬다.

 

예수님은 엑스레이보다도 더 투명하고

더 불꽃같은 눈을 가지시고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와 모든 모습을 다 한눈에

꿰뚫어 보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그걸 보시고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2 25에도 보면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사람 속에 있는 걸 다 아신다.

 

우린 사람 속을 어떻게 다 알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냉장고를 열어보듯이 사람의 속에

있는 걸 전부 아시니까 사람들에 대해서는

누구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면 벌써 다 아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베드로를 보시고 나다나엘을 보시고

아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 19절 이하의 말씀에도

전부 그 7개의 사자들을 다 보시고 거기에 맞춰서

칭찬도 하시고 권면도 하신다.

 

그래서 지금도 살아계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이 오늘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심을 알고

그분은 지금 하나님 우편 보좌에 계시지만

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모든 걸 꿰뚫어 보시고

우리에게 칭찬도 하시고 권면도 하시고

책망을 하시는 것이다.

 

원하옵기는 오늘도 살아계시고 영원하신 그 예수님으로부터

우리 칭찬 듣는 그런 공동체, 칭찬 듣는 교회,

칭찬 듣는 가정, 칭찬 듣는 개인이 되어야 된다.

 

나다나엘처럼 우리는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두 번째는

나다나엘에게 칭찬하신 내용을

우리가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나다나엘이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셨다’

이런 뜻인데 이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이다.

 

나다나엘이 바돌로메라고 하는 새로운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 바돌로메는 ‘톨로메의 아들’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톨로메 집안의 자녀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1 29에 보니까 세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 안드레와 요한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는 그 말을 듣고는

예수님을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요한이 또 안드레가 이렇게 예수님을 쫓는

사람이 됐을 때 그 안드레가 먼저 형 시몬 베드로를

우리가 메시아 만났다 하고 소개를 했다.

 

그러고 나서 이제 43에 보니까

이튿날 예수님이 빌립을 만나서 나를 좇으라 하고

빌립을 또 제자로 부르신다.

 

그러니까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다 그랬다.

 

빌립이 예수님이 나를 좇으라 그러면서 이렇게 할 때

그 빌립이 이제는 나다나엘에게 가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 그분이 바로

선지자가 기록한 그 메시야다.

그러면서 나다나엘을 예수님께서 소개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다나엘이 46 말씀에 보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였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나사렛 또는 사마리아

이 앗수르의 포로생활 이후로 거기는

혼혈 지역이 되었다.

혼혈 정책을 통해서 혼혈 지역이 됐고 이 나사렛은 죄인들

또 망명자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런 곳이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으로 오시게 되어 있는

이 예언을 알고 있는 나다나엘이 베들레헴도 아니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타나겠느냐?

나다나엘이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고백을 통해서 주님께 나왔는데

그 예수님이 나다나엘 보면서 칭찬을 하시는 것이다.

 

제일 첫 번째는 47에 있는 말씀처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이렇게 칭찬하셨다.

간사하다고 하는 것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미혹하는 미끼를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인생들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미끼를 던지고

그러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당 이익을 챙기고

잔머리를 써가면서 남이야 죽든 말든

이렇게 사람들에게 미끼를 던지면서

이렇게 정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이게 전부 간사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된다.

순수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된다.

 

윤동주 시인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시를 썼는데

이게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오늘 뉴스를 보니까 정치인이 바로 이 말을 이용해서

나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요새 한국 정치인의 이런 고백을 누가 믿겠는가?

정치 자체를 거짓이 없이는 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하늘이 곧 예수님인 겁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

그 예수님은 말씀이다.

말씀이라고 하는 거울에 비추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 그런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간사한 삶이 아니고 정직한 삶이다 그 말이다.

 

그다음에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은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랬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성민을 하나님이 택하셨는데

혼인잔체의 비유로 보면

이스라엘이 먼저 혼인잔치 청함을 받았는데

전부 상업 차, 장가들었기 때문에, 밭을 샀기 때문에,

소 다섯 개리를 사서, 이스라엘은 그 잔치에

들어오지 못하고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청함은 받았는데 택함을 못 받았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방인들을 이 잔치에 불러서

오늘날 교회 시대가 열렸는데

이제는 새 언약한 예수님 안에서 이스라엘 사람이 됐든

이방이 됐든 그 잔치 비유의 초점인 예복을 준비하는 것,

그게 바로 죄에서 해방되고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목적과 방향인 것을 알고

그 길로 오직 가는 그 사람들이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랬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신앙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히 알고

주님으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이는 참 간사한 것이 없다 이런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다나엘이

무화과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사실 이스라엘은 사막지대고 더운 지방이다.

 

그래서 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고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의 그늘 안에서 성경도 읽고 묵상도 하고

회개하면서 그런 신령한 생활을 하는 것을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성경을 보면서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이다.

 

예언된 구약의 말씀을 자세히 살피면서

오늘날도 예수님 오실 때가 됐다고

우리가 준비하는 몇 몇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 당시에도 메시야가 나타날 때일 것을 알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회개하면서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칭찬의 내용이다.

 

로마서 9 13에 보면 야곱과 에서가 나오는데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말씀 하셨다.

 

무슨 일을 해서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고

나가기도 전에 이 세상을 살기도 전에

그렇게 정해버리셨다.

 

창세기 25 27 말씀에 보면

에서는 사냥꾼이 됐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라 장막에

거하기를 좋아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표현했다.

두 아들이 자라나, 에사오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질이 차분하여 천막에 머물러 살았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들은

들판, 벌판을 쏘다니면서 사냥꾼처럼 피를 흘리고

정욕을 만족시키고 이렇게 사는 그 에서와 같은

삶이 아닌 것이다.

 

야곱처럼 장막에 거하면서 묵상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회개생활하고 이게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수도자이면서 또 신학자이면서

또 목회자이기도 한 삼박자를 두루 갇힌 그런 성자인데

이 캐톨릭도 인정하고 개신교에서도 인정하는 그런 성자이다.

 

그래서 많은 신학 교리를 세워놓고 존경받는 그런 성잔데

그 어거스틴이 참회록을 썼는데 참회록 8장 28절에 보면

그렇게 표현하셨다.

 

나는 한 무화과나무 아래에 쓰러져

정신없이 눈물에 잠겨 있었나이다.

그리고 내 눈에서 홍수처럼 터져 나오는

그 재물이 주 앞에 상달하였나이다.

 

어거스틴이 무화과나무 아래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눈물에 잠겨서 회개하고 홍수처럼 터져 나오는

그 눈물이 앞에 상달되어서 자기가 변화 받는

인생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화과나무 아래 이렇게 말씀 묵상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거울에 비춰 회개하고

참회 생활하면서 자기를 깨끗하게 준비해가는

이런 사람들을 주님이 나다나엘에게 칭찬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칭찬을 하실 것이다.

 

시인 괴테는 인간이 영감을 받는 것은

고독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말했다.

 

영적으로 가는 길은 외롭고 힘들고 고독한 길이다.

그런데 그 고독한 그 길을 아무도 가지 않는

좁고 협착한 길을 가고 그 좁고 협착한 길 끝에

그 길을 다 가서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 좁은 길로 갈수록 세상을 버리고

정욕을 버리고 이렇게 갈수록 하나님이 영감을 주시고

계시를 주시고 생명의 역사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처럼 우왕좌왕 몰려다니면서

이렇게 들판, 벌판을 쏘다니면서 욕망들을 채우려고 하는

이런 사냥꾼 같은 삶이 아니고

조용히 묵상하고 야곱처럼 종용한 사람,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고 사랑받는 사람이고

칭찬받는 사람의 특징인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칭찬 듣는 자의 비전을 말씀하셨다.

 

본문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더 큰 일을 보리라

더 큰 일은 뭔가?

예수님이 택하셔서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되고

증인이 됐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도 보고

공생애 도중에 수많은 기적들

더 큰일을 다 보는 특혜를 받은 것이다.

 

칭찬 듣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와 영감을 주시고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하여 증인의 삶을 살도록

많은 큰 일들을 보게 하신다.

 

51에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종종 진실로 진실로 이 말씀을 사용하시는데

아주 중요한 내용일 때 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에만 25회에 사용이 됐는데

51에 그 말씀을 사용하고 있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언제 하늘이 열렸는가?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하늘이 열렸다.

변화산에서 하늘이 열렸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할 때 하늘이 열려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은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순교했다.

 

천사가 언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는가?

야곱이 벧엘에서 돌베게 뵈고 잘 때

하늘까지 사닥다리가 닿아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인자가 여기서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인자, 신성을 강조하면서

그 인자가 하늘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래서 공생애 끝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까지 이 모든 것을 전부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뜻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칭찬 듣는 사람을 택해서 사용하시고

비전을 주신 것이다.

 

나다나엘은 간사한 사람이 아니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고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회개생활하면서 기도하면서 이렇게 주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주님은 그 나다나엘을

칭찬하시고 그를 사용하셨다.

 

얼마 전에 뉴스를 하나 봤는데

한국의 원로 배우라고 하는 신영균 배우가 기사에 났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하는데

그분이 지금 94세인데 서울에 2만 4천 평의 땅을

가진 가운데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짓는데

4천 평의 땅을 내놓겠다.

그래서 기사가 난 것이다.

 

이 신영균 배우는 원래 의대 출신으로 치과 의사이다.

그런데 치과 의사를 하다가 삼십이 넘어서

연기를 하고 싶어서 배우가 되고

배우로도 이제 성공을 했다.

삼백 편 이상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국회의원도 여러 번 하시고

그리고 노년이 되셨는데 가지고 있는 많은 재산들을

전부 자기가 치과 대학 나온 거기에도 많은 돈을

기부하시고 많은 곳에 이렇게 기부를 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황해도 평산 출신이다.

 

신앙을 이제 가지고 이렇게 살아가신 분인데

이 수많은 재산을 죽기 전에 다 이렇게 정리하고

좋은 일을 하신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분은 결론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이제 94세인데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이걸 다 아름답게 정리하고 나는 죽은 후에

4, 50년 손때 묻어 내가 쓰던 이 성경책 한 것만

내 관에 집어넣어주면 된다.

이런 고백을 했다.

 

얼마나 위대한 삶인가?

그 한 권의 껍질이 다 펴지가 닳도록 4, 50년을 묵상한

그 성경책 하나만 내 관에 넣어주면 된다고

 

오늘날 나다나엘처럼 무화과나무 아래서 묵상했던 사람이고

참 주님의 칭찬을 들을 만한 그런 내용이다.

 

이 아침에 나다나엘의 일처럼 간사한 것이 없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칭찬 듣고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묵상하고

또 이렇게 비전을 꿈꾸고 또 회개하면서

주님 앞에 사용당하기를 원해서 이렇게 칭찬 듣는

그런 여러분과 가정과 또 교회와 공동체 다 되시기를

이 아침에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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