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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삶의 우선순위

by Andrew Y Lee 2023. 7. 8.

삶의 우선순위

 

요한3서 1~4절

 

한국 속담과 격언 중에 종종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그런 내용들이 있는데

‘냉수도 차례가 있다’ 그런 말이 있다.

 

흔한 찬물이지만 그 찬물도 위아래가 있고

한국이 어른을 공경하는 그런 문화에서 나오는

그런 말인데

냉수 한 그릇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도 ‘차례가 있다’

‘우선순위가 있다’ 그것이 교훈이다.

 

스티븐 바틀렛이라고 하는 잉글랜드 맨체스터 출신의

사람이 있는데 이분이 한국식으로 하면

흙수저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한 빈털털이 외톨이인데

25살이 됐을 때 2천6백억에 부자가 됐다.

세계적인 CEO가 됐다.

 

그분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1학년

조금 다니다가 말고 7년 동안 ceo가 되기까지

자신의 성공 비결을 책으로 써서 냈다.

 

근데 그 책 이름이 ‘우선순위의 법칙’ 그런 제목이다.

인생을 사는 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준 시간을

사용하는 게 우리의 인생인데

이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책을 쓴 것이다.

 

흙수저이고 고등학교밖에 못 나오고

빈털터리고 가난뱅인 그 사람이 2천600억의

부자가 돼서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그 분은 ‘나는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걸 전제로 해서 그 시간의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그렇게 거부가 돼서 이 책을 써서 수백만 부를 팔았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우선순위를 잘 알아야 된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서 성공하려면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에 성공하기 위해서

우선순위의 삶을 정하지만

신앙인은 신앙 안에서의 우선순위의 삶을 정하고

신앙 안에서 성공하면 인생은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알아야 되겠다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가르쳐준 우선순위이다.

 

예수님이 우선순위를 가르쳐 주셨는데

마태복음 6 33의 말씀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이 예수님이 가르쳐준 삶의 우선순위인데

25부터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세상 사람들은 의식주가 가장 큰 염려다.

무엇을 먹어야 되는지 무엇을 입어야 되는지

무엇을 마셔야 되는지

그런데 그 예수님은 이런 걸 염려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너희가 구하는 이 모든 것 의식주 문제 이것을 전부

주님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이것을 책임져 주시고 이걸 더 해 주시겠다

이렇게 약속하신 내용이다.

 

그래서 중요한 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세상 사람이 염려하는 그 모든 의식주의 문제

이것을 전부 주님이 더하여 주신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의가 무엇이냐 그 말이다.

 

누가복음 17 20~21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찾아와서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라라고 하는 것은 땅도 있어야 되고

사람 백성도 있어야 되고

누군가의 주권이 있어야 나라인데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시고

내 마음을 주도하셔서 내 마음을 그분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내 속에 이루어져야 된다.

내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이 주권을 가진 나라

내 마음을 내가 주관해서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내 마음을 마음대로 주관하시는

그런 나라를 만들면 이 모든 것은 저절로 더해주신다.

 

그분의 의대로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 평강의 나라이다.

아무 염려 당할 수 없는 절대 평강의 나라,

절대 사랑의 나라이다.

 

그럼 그의 의가 뭐겠는가?

로마서 1 17 말씀에 보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다 그랬다.

 

율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의인데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인데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의다 그랬다.

 

예수님께 접붙임을 당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의 생명을 나누어서 의롭게 되는 득이 하는

그래서 죄에서 해방되어 영적 할례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을 치는 이 의

이것을 먼저 구하면 나머지는 다 하나님이

책임을 져주시겠다 그런 약속인 것이다.

 

신명기 8 4에 보면

광야 40년을 걸어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왜 의복을 책임져주셨고 발이 부르틀지 않게 하시고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주시고

40년 동안 이 모든 의식들을 왜 책임져주셨는가?

가나안 들어가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땅 들어가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내 안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이 일을

먼저 우선순위로 살아가면

의식주 문제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고

주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삶의 우선순위다 그 말이다.

 

두 번째는

사도 요한이 가르쳐주신 삶의 우선순위이다.

 

본문의 말씀처럼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되는 이게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의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범사가 잘 되고

우리가 강건한 복을 받게 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무엇이냐?

그 말이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무엇이냐?

 

고린도전서 3 16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보에도 성막을 제가 넣어놨는데

모세가 광야에 성막을 짓고 이것을 솔로몬이 성전을 만드셨는데

이것이 사람의 심령과 육체의 구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성전이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지성소 이 부분이 우리의 영이다.

그리고 여기에 성소가 우리의 마음인 것이다.

그리고 뜰이 우리의 육체이다.

 

고린도전서, 후서에서 여러 번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너희가 성령의 전이다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사람의 심령과 육체의 구조가 성막과 일치하는데

우리의 뜰 육체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는데

이 번제단은 제물을 태워서

하나님이 그 연기를 흠향하시는 것이다.

그건 바로 우리의 육체의 헌신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헌신하고 희생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물두멍은 제사장이 물을 떠서 성소에 가서 몸을 닦고

제사장복으로 옷을 갈아입는 그런 씻는 기능인데

이 물두멍은 우리가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신과 회개의 삶을 육체적으로 성실히 살고

마음 안에 세 가지의 등대가 있고 분향단이 있고

진설병상이 있는데 이 세 가지가 바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세 가지 기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금 등대는 우리의 마음속에 양심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성막은 4개의 덮개로 돼 있기 때문에

또 창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둠 깜깜한 곳인데

제사장이 어떻게 들어가서 일을 하겠는가?

이 등대에 감람유로 1년 내내 기름을 공급해서

계속 1년 내내 불을 켜놓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양심을 상징한다 이 말이다.

 

왜 가지가 7개로 돼 있는가?

죄악성이 7개이기 때문에

7개의 죄악성을 다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7개의 이 등불이 환하게 비춰져서

양심이 온전히 100% 밝아져야 심령 안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연단 받으면서 점점점 양심이

우리 안에서 밝아져 가는 것이다.

이 양심이라고 하는 그 기준이

세상 법의 기준이 아닌 것이다.

 

식인종 나라에 가면 식인종 사람을 잡아먹는 게

죄를 느끼지 못한다.

어느 나라의 이런 기준이 아니고

관습이나 이 법이 기준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 양심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내 마음 안에

양심을 환하게 밝혀가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이다.

 

그다음에 진설병상은 뭐겠는가?

이 진설병상은 열두 덩어리의 떡을

매 안식일마다 진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떡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때 사용하는 떡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그러한 떡이다.

 

누룩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 정욕적인 사상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매 안식일마다 우리의 심령 속에 계속해서 채워져 가야 한다.

 

우리가 설교를 듣든지 어떤 녹음을 통해서

또는 우리가 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계속 우리가 안식일마다 공급을 받아서

내 마음 안에 있는 이 지성을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100% 채워줘야 된다.

 

왜 그런가?

천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가는 곳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말씀이 내 심령의 지성소안에

가득 채워져 가는 그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이다.

 

그다음에 분향단은 우리가 내 마음 안에 있는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양심으로 깨달아서 어떻게 기독교인이

성령대로 살아가야 된다 양심대로 깨달았다.

 

지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순종해야 되는지

그걸 깨달았다.

그럼 깨달은 다음에 중요한 것이 그것을 실천하는

기능이 바로 분향단의 의지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깨닫고 아무리 지성으로 알아도

철저하게 내 의지가 순종하지 못하면

의지는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내 의지를 드려야 된다.

 

우리가 흔히 작심삼일이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작정하고 결단하면 삼일 지나면 또 마음이...

한 달에 열 번만 작정하면 된다.

계속해서 결단을 끊임없이

 

연약한 인생이지만 끊임없이 결단하고

그러면서 의지를 온전히 100%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그렇게 되어지면 이 영 속에 뿌리 박혀 있는

죄악성이 떠나고 가나안 칠족이 떠나가면서

우리 마음 안에 또 영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이 잘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도표로 정리를 해봤는데

등대인 양심이 점점점점 깨끗해지는 것,

떡상인 지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는 것,

분향단인 의지가 깨달은 양심과 지성으로 순종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의지가 되는 것,

이게 영혼이 잘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출애굽을 해서 죄악 세상을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고 애굽을 떠났는데

떠나면 광야 40년이 기다리고 있다.

 

애굽을 떠나자마자 천국으로 상징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광야 40년을 지나면서 애굽을 떠났던

그 육십만 명이 광야에서 다 죽는단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60만 명이 가나안 땅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성령 받기 전에 옛 사람이

광야 연단 훈련을 해서 다 죽어야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이 모형적인 원리가 내 마음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거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의 피와 같이 어린 양으로 떠나면서

광야로 나가는 것처럼 우리가 죄악된 애굽을 떠나서

성령을 받으면 그 성령이 바로 빛이신 것이다.

 

어두운 내 안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왔다.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왔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다.

말씀이 곧 생명이기 때문에

내 안에 말씀이 들어왔다.

 

그래서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고

생명이 들어오고 사랑이 들어오고 빛이 들어오고

이게 성령이 들어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 22 말씀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이 세상에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 속에 성령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보증으로 마음속에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온 것이다.

마음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가나안에는 칠족이라고 하는 지옥 백성,

지옥 일곱 지파를 상징하는 가난한 칠족이

뭐를 섬기는가?

우상을 섬기고 살아간다.

그 우상이 바로 정욕이라고 하는 것이다.

애정과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 안에 성령이 들어오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양심이 밝아지고

지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또 그다음에 내가 순종하는 의지를 가지고

성령님과 하나 되어서 이 연단이 마쳐지고

마음이 그 양심이 100% 밝아지고

지성이 100% 하나님 말씀 채워지고

그다음에 의지도 100% 순종하는 그런 의지가 되면

그 성령님이 영속으로 들어가서 내 영 속에 뿌리박힌

7종 죄악성을 뽑아내고 이스라엘 백성의 12지파가

자리를 잡는 것처럼 12가지 열매를 맺게 되면서

그때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다 같은 원리다 그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이 말씀이나 요한 사도가 영혼이 잘되기를 먼저 구하라

이게 똑같은 말씀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결국은 영혼이 잘 되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걸 더해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면 염려할 삶이 있을 수가 없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다 잘 되고

거기다가 복도 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다음에 요한 사도가 말씀하신 먼저 영혼이 잘 돼야 된다.

이것이 똑같은 원리로 기독교인의 삶의

우선순위가 돼야 된다 그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이런 원리 속에서

신앙의 우선순위의 삶을 살아드린다고 하는 것은

내 의지적 결단의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완전히 내 의지가 100%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지가 돼야 된다.

 

그래야 죽으면 죽으리라 순교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떠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는

그래서 교회 시대에 이기는 자들 십사만사천명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 했다.

 

저와 여러분은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갈 수가 있겠는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이 싸움이 아니면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삶에 주님이 어떠한 요구를 해 오신다 할지라도

내가 지금 사자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풀무 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내가 이 시간 순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

지금 온다 할지라도 100% 하나님 앞에 결단하여

드릴 수 있는 이 의지가 준비되어야

우리는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게 간단한 게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간단한 영적 싸움이 아닌 것이다.

너희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한 달에 열 번을 작심을 했다 할지라도

작심삼일 만에 또 무너지고 무너져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오뚝이 같은 신앙으로

계속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초대 교회부터 수도적인 삶을 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왜 많은 분들이 세상을 포기하고 수도원을 택해서

일생을 살아가는가?

자기를 쳐서 복종했던 사도 바울처럼 어떤 틀 속에 자기를

집어넣어서 강제로 라도 자기의 마음이 의지가 순종하고

강제로라도 이 하나님 나라를 내 속에 이루어지는

그런 틀 속의 삶이 바로 수도적인 삶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수도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약한 인생인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속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기를 치면서

내 의지와 결단을 계속 꾸준히 이어나가지 않으면

순간순간 이길 수가 없다.

그러니까 여러분 매일 작정을 해야 된다.

 

나는 무조건 하루에 성경을 석 장이라도 읽겠다.

하루라도 성경을 안 읽으면 난 죽어야 된다.

이런 결단을 가지고 매일매일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서 구멍이 나도

구멍이 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만이 나를 살리고 그 말씀이 영으로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을 꼭 기도하겠다.

매일매일 그것을 반복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기도하는 삶을 매일매일 놓치면 안 되는 것이다.

 

제가 바쁜 시간 속에 책도 써야 되고 책도 마무리 되고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기적의 방을 계속 끌고 가는 게

그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한 달에 두어 주간은 말씀을 전해야 되고

그 시간을 억지로 가서 기도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힘든 가운데도 그걸 꾸준히 하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가 아니면 거룩해지지 못한다고

성경에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변덕쟁이를 싫어하시는 것이다.

꾸준히 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부족하지만 매일 조금씩이라도 말이다.

꾸준하게 말씀과 기도를 가지고 꾸준히 의지적인 결단의

삶을 살면서 언제 무슨 명령이 떨어져도

하나님 내 의지를 온전히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갈 수 있는 그런 의지의 결단을 가지고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해야 된다.

 

미국 생활을 가서 해보니까 미국에는 뭐든지 느리다.

삶이 다 느리다.

관공서에서 뭐 하나 하려면 엄청 오래 걸리고

한국사람 빨리빨리 하는 거에 비하면 답답해서 못 산다.

 

고속도로에서 한번 길이 딱 막혔는데

한국 사람은 어떻게 가는가?

바로 샛길 찾아 얼른 나가고 갓길로 가고

근데 미국 사람은 하나도 요동하지 않고

몇 시간에 걸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질서적인 사람들이고 여유가 있는데

벌써 갓길로 빠졌다 샛길로 나가려고 한다하면

 

전부 한국 사람들이다.

 

모든게 다 빨리 빨리 그게 세계적인 한국 사람의

습관인데 미국 사람은 답답하다.

 

그런데 어떤 방향을 정해서 꾸준히 미국 생활을 하다 보면

늦어도 반드시 이루진다.

 

그러니까 미국 사람의 스타일은 그 가는 길을

방향만 바로 정하면 가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그걸 즐기면서 가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걸 배워야 된다.

 

내 삶 속에서 당장 축복이 안 나타나고

내 속에서 당장 응답이 안 나타나고

계속해서 연단이 계속되고 매일매일 영적 싸움이 있었는데

내가 목적과 방향을 분명히 내 안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여기에 목적을 두고 한다면

더딘 것 같아도 방향만 바로 정하면

반드시 언젠가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게 빨리 빨리 안 이루어지니까 우리는 쉽게 낙담하고

좌절하면서 우리는 또 성경을 읽지 못하고

또 기도하지 못하면 이걸 게을러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그걸 꾸준히 하는 이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사람 너무 빨리빨리 하다가 다 제 풀에 쓰러져

넘어진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 같다.

 

어느 목사님이 냄비 신앙이라고 말이다.

그냥 바르르 끓어서 금방 끓는 건데

금방 식어버린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믿음의 선진들의 삶은 전체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그 자체가 그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다.

 

이 구약의 모든 이스라엘 민족은

신앙생활 자체가 삶인 것이다.

 

아브라함의 삶을 보자.

광야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니까 가나안 땅에 가고 말이다.

가나안 땅에 가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타나 주는 대로 계속 순종하면서

그 광야의 삶 자체가 그냥 사는 것이 신앙이다.

그게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게 의로워지는 것이고 그게 믿음의 조상이 되는 길이고

그냥 삶 자체가 신앙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그렇게 사는가?

신앙은 따로 나의 삶은 따로 우리 이렇게 별개로 산다.

그게 아닌 것이다.

나의 삶 자체가 신앙인 것이다.

 

신앙 때문에 사는 거고 하나님의 신앙 때문에

살려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제 가정을 부양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이거와 상관없이 내 환경은 어떻든지 간에

가족도 부양해야 되고 직장생활도 하고 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려주는 것은 가나안 땅 들어가기 위해서

살려주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려고

살려주시는 거고 나의 삶의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목적 때문에 사는 거기 때문에 신앙 자체가

나의 삶이 돼야지 내 생활 따로 직장생활 따로

나의 신앙생활 따로 교회 생활 따로

이게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는 것 자체가 신앙이다.

 

그게 우선순위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이걸 자꾸 분리하면 안 된다.

 

로마서 4 아브라함의 신앙을 잠깐 좀 엿보도록 하자.

로마서 4 18~24 말씀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여러분 믿는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죽은 것 같은 데서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바라할 수 없는 중에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걸 믿으면서 가야 되는 거고

자기 몸은 태의 죽음과 같고 자녀를 낳을 수 없는

형편인데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통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셨다 그랬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믿음을 붙잡고

그 삶 자체가 다 신앙의 삶인 것이다.

그것이 다 믿음의 길인 것이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도 내 삶이 지금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하나님이 나의 여러 가지 환경을 주시고

나를 지금 이 길로 이끌어 가시는데,

나를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지금 이루시려고,

그의 의를 이루어주시려고,

내 안에 영혼이 잘 되게 하시려고 하는 섭리 속에서

끌고 가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이걸 확신하고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계속 나가는 것이다.

이게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따라가는 것이다.

 

여러분의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직장생활을 하든

가정을 부양하든, 어떤 환경이 가도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이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야 된다.

 

오늘 주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영혼이 잘 되는 이 길을 먼저 택하면서

여러분의 삶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의 삶이고,

 

그래서 우선순위의 삶을 정해서

그리로 약속을 잡고

확신의 삶을 살면 영혼이 잘 된 만큼 범사가 잘 되고

그 나라를 구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면서

놀라운 기적을 일상처럼 체험하는 그런 삶이

우리에게 나타날 줄로 믿는다.

 

삶의 우선순위를 잘 결단하여 이렇게 따라갈 수 있는

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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