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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 출판기념 감사예배

by Andrew Y Lee 2022. 9. 1.
내 혀에 있는 말씀


사무엘하 23장1~7절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 하니라


가을이 벌써 왔다.
가을은 우리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책을 좀 많이 접하시고 열매를 맺는 그런 절기다.


저희 교회는 섬김의 달로 가을을 보내려고 한다.
많은 섬김의 은혜를 입게 되길 바란다.


지난주에 예고한대로 오늘은 출판 기념 감사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평생에 책을 하나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동시에 세 권을 이번에 출판하게 됐는데
금년이 제가 목회 사역 40주년이다.


1983년 7월 달에 목회를 시작을 했는데
목회 생활 40주년 기념회이다.
신앙생활은 한 사십 이삼년 이렇게 됐는데
책을 썼다고 하는 그것 자체는 사실은
신앙생활을 결산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런 것이 나오는 게 아니고 40년 목회생활이
결산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복음에 빚진 자다
사도 바울도 그런 표현을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의 빚도 짓고 또 복음의 빚을
지게 되어서 이런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갚는
이런 일로 시도를 한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도 계셨고
기도로 후원하신 분도 계셨고 표지 등 출판에 도움을
준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오늘 출판 기념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신앙 고백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한다.


본문에 사무엘하 23 1에 보면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그렇게 나왔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다윗이 마지막으로 지금 하는 말
이것이 바로 다윗의 일생을 총 정리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건 유언과 같은 말인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가치관과 인생관과 신앙관이
다 들어있는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신앙 고백을 우리가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다.


첫 번째는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호칭을 세 가지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무엘하 23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다윗은 스스로 자신의 고충을 세 가지로 부르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높이 올리운 자다 그랬다.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은 받은 자다 그랬다.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다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높이 올리운 자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지금 왕이 되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겸손한 고백인가?


자신 스스로가 왕이 된 것이 아니고 어린 시절 막내로
태어나 목동으로 살았던 다윗에게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은혜를 통하여 발탁이 되면서 이스라엘에 등장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사울에 여러 가지 죽음의 위협과 많은 연단을
받았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에 의해서 높이 올리운 자다
이렇게 겸손하게 구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하나님에게 기름 받은 자
이렇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기름 구원 받았지만은
결국은 하나님이 택하셔서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런 직분자로 높이 올리고
우리를 세워주고 우리에게 기름 주시는 것은
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다 이렇게 표현을 했다.
22 전체를 보면 다윗의 승전가라고 되어있다.
이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22 전체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승전가를 올리는 것이다.
거의 시편의 내용과 비슷하다.


다윗이 시편의 절반가량을 쓰면서 이 많은 노래들을
지어서 하나님께 올렸는데 이 노래 잘하는 자다 하는
이 표현은 물론 다윗이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께 찬양도 잘 올렸겠지만 그 승전가를 쓰고
시편을 쓰는 작시하고 노래를 지르는 이것 자체를
노래 잘하는 자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과 같은 유행가를 누군가가 지어서
노래하는 그런 게 아니고 자기가 이 시편의 모든 시를
작시하고 승전가를 직접 쓰고 그러면서
그걸 악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선포했단 말이다.


일생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나님께 많은 작시를 하고
많은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결국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라고 하는 뜻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기를 즐겨 하는 자다
이런 뜻인 것이다.


여러분 이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인 인물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시편 22 11~21
"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다윗의 시이지만 다윗이 예수님이 장차 당하실 일들을
다윗을 빙자하여 노래한 것이다.
거기 특별히 내 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예수님에게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개들이 나타나고 사자가 나타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 전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나는 어려운 사건들을 다윗을 빙자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인 인물이다.


사무엘하 23 2 본문 말씀에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하나님이 지금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본받지 못하지만
그 예수님을 본받았던 사도 바울을 본받고
또 예수님을 빙자한 다윗을 본받으면서
우리는 예수님께 나가야 된다.


구약에 나타난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인 인물들을
우리가 본받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대표적으로 다윗이다.


그럼 다윗이 자기를 세 가지 호칭으로 불리면서
나를 높이 올리는 자다 이 고백이 다윗의 것만이
아니고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하는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을 이 자리에 있게 하고 우리 각자에게
직분을 주시고 이 모든 것이 나를 높이 올려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나를 높이 올렸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운 것처럼
구약시대에는 왕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제사장이 될 때 기름 부음을 붙는다.
오늘날 시대에 우리는 이것을 제2의 부르심이라고 한다.


우리는 예수 믿도록 부르신 것이 제2의 부르심이라면
우리를 제2의 부르심으로 부를 때
그것이 목회자의 부름이 되는 거고
수도자의 부름이 되는 거고 선교사의 부름이 되는 거고
기도원 사역의 부름이 되는 것이고
구제하는 자의 부름이 되는 것이고
교회 여러 직분 자의 부름이
전부 두 번째 부르심인 것이다.
그때 우리는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다.


나에게 기름을 부으신 것이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은 것처럼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이 나에게 기름을 부었다.
우리도 이 다윗처럼 이렇게 고백을 하며
이것을 본받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제2의 부르심이 없다면 우리 아무도 좁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좁은 문을 통과하여서 점점 좁고 협착한 길을 지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 길에는 반드시 제2의 부르심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데 그 부르심에
하나님의 기름이 부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름이 부어진 여러분들을 축복한다.


그리고 노래 잘하는 자가 되는 것
이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다.
실제 노래를 잘 하는 자가 돼야겠다.


우리가 노래 잘하는 것도 은혜이지만 다윗처럼
찬송시를 쓰고 그 신앙 고백을 돌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이 다윗의 신앙 고백이 우리의 신앙 고백으로 삼아서
우리도 다윗처럼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두 번째는
다윗이 2절 말씀에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다윗이 지금 승전가를 쓰고 많은 시편을 쓰면서
그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노래하면서
영광을 돌리는 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혀에 있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혀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굉장히 중요하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런 다윗을 본받아서
이런 사람이 되고 힘쓰게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어야 그래야 우리가
그 혀를 가지고 전도도 하고 찬양도 하고
말씀 선포도 하고 제2의 부르심으로 우리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혀에 있어야만 이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 3 우리에게 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혀가 작은 지체지만 큰 것을 자랑하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가?
혀가 작은 것인데 그 혀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크게 쓰이는 것이다.


혀라고 하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도 하는데
동시에 혀를 가지고 저주도 하고
이게 마땅치 않다고 그랬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많은 종류의 짐승, 새 다 길들이고 사람이
잘 길들이지만 오늘 혀는 길들일 사람이 없다.
쉬지 않는 악이 나오고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다.
이런 혀를 가지고 아버지를 찬송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또한 저주도 한다
그랬다.


이 혀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혀에 있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찬양하고 선포하고 전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쓰여 질 때 이 혀가 작은 지체인데
크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다윗은 그 혀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혀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윗을 빙자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모든
다윗을 빙자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다윗의 혀를
본 받아서 우리에게도 그렇게 쓰임을 받도록
우리는 하나님께 나가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누구든지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구든지 봉사를 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이렇게 해야지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어서
이 입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찬양을 올리고
노래를 올려드리고 신앙 고백을 하고
이 말씀으로 전도를 하고 우리의 입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으로 선포해 나갈 때
그 혀가 얼마나 복 되겠는가?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 9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먼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셔서 그들을
왕 같은 제사상 나라로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외된
백성으로 삼았지만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끝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그들은 버림을 받고 이방인인 우리가 접붙임을 당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우리를 향하여
너희야말로 택하신 족속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되고
제사장이 되면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
거기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선전해야 된다.


우리가 무엇으로 선전을 하겠는가?
이 혀가 그렇게 쓰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그 도구가 혀이다.


우리는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고 그것을 선포하고
그것을 쓰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 이 다윗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는 이런 사역을 사모하고 이렇게 주님 앞에
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여러분의 그 혀를 귀하게 쓰실 줄로 믿는다.


세 번째는
말씀이 그 혀에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곧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곧 학자의 혀, 학자의 귀를 가졌다고
이사야에서 선포하고 있다.


이사야 50 4~5
"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는 것이 곧 학자의 혀이다.


예수님은 이 학자의 혀를 가지고 곤핍한 자를 말로
도와줄 줄 아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만나는 자마다 그 상황에 맞게
그 사람의 곤고한 거, 그 사람의 궁핍한 거,
그 사람의 영적인 사정, 그 사정에 따라 꼭 필요한
말씀으로 역사를 해 주셨다.
이 예수님이 학자의 혀를 가졌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제2의 부르심을 받아서
우리가 직분자가 되고 사명자가 되고 이럴 때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기름을 부어주신 것은 곤핍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이다.
곤고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이다.
지금 고민하는 자를 도와주라는 것이다.


학자의 혀가 있지 않으면 그 곤핍한 자를
말로 도와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학자의 혀를 가지려면 아침마다 깨우치시고
나의 길을 깨우쳐서 학자 같이 알아듣는 학자의 길을
먼저 가져야 한다 그 말인 것이다.
내게 학자의 귀가 열리지 않으면 학자의 혀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새벽마다 미명에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그때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면서 학자의 길을
통하여 하나님이 알아듣게 하시는 말씀을 가지고
그대로 순종하며 학자의 혀의 사명을 감당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받은 우리는 학자의 혀를 갖기
위해서 먼저는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해야 될 것이고
학자의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서 학자의 귀가 되어서
깨닫는 그런 역사가 먼저 있어야 학자의 혀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 일곱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귀 있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셨다.
학자의 귀를 갖고 있는 그 사람이 복된 것이다.
깨달아 알 수 있는 그 사람이 복된 것이다.


부족하지만 책을 이렇게 내게 된 것은 사실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있고 이것을 이제 나누어야만 되겠다
라고 하는 그런 감정 때문에 사실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책을 쓰고 나니까 특강 요청이 들어왔다.
특강 요청이 들어오고 나름대로 이제 평가들이 들린다.


평가들이 들리면서 케톨릭 교회에서 사모하는
그런 분들에게도 지금 영향을 주고 있다.
귀 있는 자들인데 귀 있는 자들은 이게 뭔지를 아는 것이다.


여러분 이 시대에 곤핍한 자가 얼마나 많은가?
새벽이 오기 전 한 밤중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새벽 직전이 가장 어둡다.
이 시대가 가장 어두운 때이다.


그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 곤핍한 자가 있는가?
얼마나 많은 곤고한 자가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빛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추수 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 두루 찾으면서
누가 학자의 혀를 갖고 있는가?
그걸 살피시고 그런 자들을 사명자로 채택하시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학자의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출판을 하기 위해서 7년간의 묵상 기간이 있었다.
이스라엘을 그동안에 여섯 번 다녀오게 하셨고
7년간의 묵상생활을 해서 작년 7~8월에 시작이 됐는데
책 세권을 쓰는 건 7~8개월 밖에 안 걸렸다.


사실은 그게 40년 목회해서 받은 은혜를 정리한 것이고
그 7년의 묵상이 있었기 때문에 7~8개월 만에
세권의 책이 정리가 된 것이다.
평생의 작품이 나온 것이고 이제 7년간에 묵상이
정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귀 있는 자를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함께 은혜를 받고 함께 이런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이 일을 소망을 한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3장 3~5절까지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자.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서 높이 올리운 자가 되고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되고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셔서
그 말씀이 혀에 있는 이런 삶을 살고 나니까
3~5까지 이런 신앙의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령한 복과 이러한 복이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될 줄 믿는다.


3 4에 그 복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게 마지막 유언이고 마지막 말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고 하나님이 나를 기름으로
주셨고 하나님이 나를 높여 올리셨고 이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노래 잘하나가 되었는데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 고백을 하고 있다.


3 4 5 말씀이 여러분 자신에게 임하고 여러분의
신앙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한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 혀에 있는 자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들, 하나님의 노래 잘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다윗과 같은 생애를 살면 그 인생은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그건 바로 바위가 지난번에 말씀드렸다.
반석을 무조건 예수님이라고 이 바위도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혀에 있기 때문에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면서
그렇게 하니까 돋는 해같이 아침 빛 같이 축복을 받고
비 온 후에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이 비가 온 후
새로운 풀이 이렇게 돋아날 때
그게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
그래서 다윗을 통하여 성전 건축의 준비를 다 이루시고
이렇게 놀라운 축복하시는 것이다.
결국은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다윗의 신앙 고백을 주목하셔서
다윗과 같은 은혜로 겸손하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세우셨습니다.
나에게 이 직분을 준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기름 부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가는 것,
글을 쓰는 것 하나님의 은혜인 겁니다.
전부 이렇게 펼쳐서 고백을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혀에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면서 이 다윗처럼 이렇게 나가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언약을 하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돋는 해 같이
아침 빛 같이 움에 돋는 새 풀과 같이 여러분에게
언약을 세우며 여러분의 모든 구원과 모든 소원을
이루어가는 놀라운 이런 복이 임할 줄로 믿는다.


이러한 신령한 복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하시고
책을 출판하면서 우리 성채교회도 이러한 신령한 복이
함께 임하는 복된 그런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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