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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두루마리를 먹으라

by Andrew Y Lee 2022. 9. 10.

두루마리를 먹으라

 

에스겔 3장1~11절

 

"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었더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누가복음 19 11~27에 보면

"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므나 비유 말씀이 있다.

달란드 비유와 매우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달란트는 한 달란트, 다섯 달란트, 열 달란트 받은

은사와 재능이 다 다르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므나 비유는 열 므나를 가지고 열종에게 나눠줘서

모두가 한 므나씩 똑같이 받았다는 그런 비유의 말씀이다.

 

그럼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았는데 받았다는 이 므나가 무엇인가?

 

바로 성령을 똑같이 받았다는 것이고

말씀을 똑같이 받았다는 것이다.

 

받은 성령과 말씀을 가지고 장사해서 므나를 남기는 것이

성령의 열매, 말씀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래서 귀인인 예수님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시는

천년왕국이 되면 이 므나만큼 땅의 권세를 차지하게

한다고 하였다.

 

천년왕국이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은 대로

말씀의 열매를 많이 맺은 대로 땅을 그만큼 허락해 주신다.

 

이렇게 므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동일하게 받았다 하는

것은 같지만 말씀에 관한 은사, 말씀에 관한 달란트는

또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많은 은사를 말씀하면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이러한 은사들이 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므나를 받아서 복음도 받았고

진리도 받았고 말씀도 받았지만 그러나 거기에 더하여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이라고 하는 달란트는

또 추가로 받는다는 것이다.

 

로마서 12 7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이 말은 말씀을 가르치는 지체는 지체로서의 은사가

있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4 11~12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목적은 모든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느 모양으로 구원을 받든 모든 성도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지체가 다 완전하게 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성도를 완전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직분을 주시는데

에베소서 4 11 말씀대로라면 다섯 가지 직분이 있다.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 자 그리고 개혁 성경에는

목사라고 했는데 목사라는 말이 아니고 목자

그리고 교사이다.

 

사도 바울은 이 5가지의 오중적인 직임을 다 받은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개인적으로 사도로서의 사명도 받았고

또 선지자였고 복음 전하는 자였고 교회의 목자였고

교사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개인적으로 말씀에 관한한

많은 달란트를 받은 자였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말씀, 진리, 복음은 므나로 똑같이 받았지만

그 말씀에 관한 은사와 달란트는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말씀에 관한 은사와 직분은 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말씀과 진리, 복음이라는 므나는

똑같이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구원 받는 일과 우리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디모데후서 3 15~17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시고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모든 선한 일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려서 부터 성경을 알고 이 성경 안에 믿음에

이르는 구원의 지혜가 있고 성경을 통하여 교훈 받고

책망 받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을 받으면

온전한 사람이 되어 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1 23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가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에 이르는데

이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4 4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 4에 보면 예수님이 세 가지 시험을 받으면서

우리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므나의 비유를 통해 볼 때 우리가 받은

모든 말씀, 진리, 복음이라는 므나를 가지고 우리는

구원받는 일에 말씀이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여러 가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처럼 은사로 받는

이 말씀도 사명 감당한 일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자세를 한번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본문 3 1에 보니까

"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주었다.

 

이 두루마리는 오늘날 성경을 말한다.

구약시대에는 양피질이라고 하는 두루마리에 하나님 말씀을

기록했는데 그 두루마리를 주면서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는 말씀이다.

 

에스겔 2 8

"8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서 말씀을 계속 주면서 그 말씀을

먹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0 9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작은 책이라고 하는 계시,

이 말씀을 주시니까 사도 요한이 그걸 먹어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씹어

먹겠는가?

 

우리가 육신을 위해 밥을 먹고 살아가는 것처럼

내 영혼의 양식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을 먹는 것이 영혼의 양식을 먹는 것이다.

 

욥기서 23 12 말씀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우리가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일정한 음식을 먹어야 된다.

 

그런데 욥기를 통해 보면 하나님의 명령인 하나님의 말씀

그 입의 말씀을 일정한 음식보다 더 귀히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다.

 

육신이 배고플 때 양식을 먹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혼의 양식을 더 귀히 여겨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이다.

 

하루 세 끼 먹지 못하면 굶어 죽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의 양식을 일정한 양식처럼 꾸준히 먹지

않으면 내 영혼은 죽게 된다.

 

그래서 육신의 양식보다 영혼의 양식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이렇게 말씀하였다.

 

예레미야 15 16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먹었다는 것은 에스겔에게 계속 말씀을

주는 것처럼 예레미야에게도 많은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을 얻어먹는데 그 말씀이 기쁨과 즐거움이라고 하였다.

 

하루에 세 끼 밥을 먹는 것이 때에 따라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

먹는 즐거움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내게 주는 그 말씀을 얻어먹을

때마다 그 말씀이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말씀을 먹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려면 반드시 입을 벌려야 한다.

우리가 입을 벌리지 않고 어떻게 음식을 먹겠는가?

에스겔 2 8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라고 하였다.

 

에스겔 3 2에는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라고 하였다.

 

어린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에스겔의 입을 여니 그 두루마리인 하나님 말씀을

먹이셨다고 하였다.

이것처럼 우리가 입을 벌리고 먹어야 된다.

 

시편 81 10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우리가 기도의 입도 넓게 열어서 하나님 앞에 비전을 가지고

많은 것을 구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입도 넓게

열어야 된다.

 

구약시대에는 신하가 전승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상으로 보석을 주는데 그걸 입에 다 넣어주었다고 한다.

더 많은 보석을 얻기 위해 입을 최대한 벌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보석보다 더 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입을 최대한 넓게 열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말씀을 먹을 수 있다.

 

여러분 모두 말씀을 받는 입을 넓게 여시기를 축원 드린다.

 

제가 두 주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한 주간 병원에 입원하고

통원 치료를 받았는데 그 기간 동안에 마침 치과 예약이 있었다.

이가 하나 썩어서 거기에 임플란트를 해야만 했다.

병원 입원 도중에 시간을 내서 이를 빼고 임플란트를 심는

그런 작업을 하였다.

썩어서 이를 뺏지만 한 주간 내내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한 주간은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거친 돌이 있었지만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새롭게 되기를

원했지만 그 이를 치료하는 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가 건강하지 못하면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이가 성하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을 씹어 먹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린 아이에게는 젖과 우유로 그러다가

점점 아이들이 이유식을 먹고 죽을 먹고 밥을 먹고

나중에는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또 아가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호도와 같이 딱딱하다고

그랬다.

 

건강한 이가 아니면 어떻게 호두를 깨서 먹을 수가 있겠는가?

아주 건강한 이가 돼야 호두를 깨뜨려서 그 호두 안에 있는

고소한 호두 알맹이를 먹을 수 있는 것처럼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젖이나 우유를

먹는 것처럼 먹지만 점점점 장성할수록 입을 넓게 벌리고

어떤 딱딱한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는 그 입을 만들고

그런 치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어떤 말씀도 받을 수 있는 영원의 말씀을 먹는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입을 넓게 열어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먹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먹기 싫으면 입을 벌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먹기 싫으면 입을 다물고 벌리지 않는다.

 

내가 적극적으로 말씀을 받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만

성경을 하루라도 읽는 것이고 의지를 가지고 말씀을

먹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

 

예수님 말씀대로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분명한 믿음이 있어서

내 환경이 어떠하든지 그 말씀을 보내주시면

내 영혼이 살고 내 육신이 살고 어떤 환경에 와도

나는 믿음을 통해 사는데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만 받으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지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좋아도 말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입을 벌리지 않는다.

 

결국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다.

 

누가복음 16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있다.

거지 나사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것을 얻어먹고 살아간다. 

 

부자는 호화롭게 좋은 음식을 먹고 살았는데

둘 다 죽어서 영계로 갔다.

 

이 영계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품이고 음부라고 말하고 있는데

천국과 지옥은 아니다.

 

그런데 영계에 가서 그 부자는 불 가운데서 고민을 하는데

물 한 방울이 없어서 서늘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여러분 물 한 방울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데 불 가운데 있는 사람이 물 한 방울에도 서늘해지는데

그 물 한 방울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나 영계로 들어갔는데

그곳에 실제로 이런 육신에 불이 있겠는가?

거기에 무슨 물이 있겠는가?

그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한 방울이 없으니까

여러 가지 심판의 불, 연단의 불, 여러 가지 환란에

불에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물 한 방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렇게 영계에 가지 않고 이 세상에 산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종종 심판의 불이 오고 연단의 불이 오고

고난의 불이 온다.

 

그런데 그 말씀이 있으면 그걸 감당하고 말씀이 있으면

그걸 넉넉히 이겨 간다.

그런데 그 말씀이 없으면 다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여러분은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말씀을 사모하여 입을 넓게 열어 말씀을 먹고 그 말씀이

내게 꿀 같은 그런 말씀이 되도록 그런 경지를 체험해야 한다.

꿀이 얼마나 달고 또 얼마나 좋은가?

자꾸 먹고 싶은데 그런데 말씀이 쓰다면

누가 먹으려고 하겠는가?

 

시편 119 103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이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얼마나 단지

꿀보다도 더 달다고 말하고 있다.

 

잠언서 24 13~14

"13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꿀이 몸에 좋으니까 이 꿀을 먹어라 입에 다니라고 하였는데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이 입에 단 꿀처럼 달 거라는

말씀하고 있다.

 

이 지혜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을 말한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에스겔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이 말씀이 꿀같이 달아 지고

그래서 더 크게 입을 열고 그 말씀을 받아먹어야

육신이 세 끼를 먹고 사는 것처럼 우리 영혼이 살게 된다.

 

두 번째는,

에스겔 3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에스겔은 하나님이 주신 두루마리 그 말씀을 꿀같이 먹고

그것을 배에 또 창자에다가 차곡차곡 채운다고 하였다.

 

그럼 저와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종이를

씹어서 먹어서 창자에 배에 넣겠는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상은

이 배와 창자가 인격이 거하는 장소로 생각을 했다.

 

우리는 심장을 마음이라고 한다.

심장이 내 마음이라고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처럼 배와 창자가 내 인격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이 들어와서 나의 인격 안에

차곡차곡 그 말씀이 채워져야 된다는 말이다.

 

무슨 의미인가?

내 입에 꿀같이 단 말씀을 먹을 때마다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나의 인격으로 삶으로 변화가 되어

준비되어서 쌓여 가야 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말씀의 생활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말씀의 실천화가 되어야 한다.

말씀의 인격화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 배를 채우고 내 창자에 채워 가는 것이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내 안에서 하나도 삶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인격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배에 창자에 말씀이

들어와 새겨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돌에 새겨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었지만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에

심비 안에 새긴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돌비에 하나님 말씀이 새겨지는 것처럼 내 마음 안에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이 내 안에 새겨져 가는 것이다.

 

나의 창자와 배 안에 인격으로 이것이 채워져 간다는 말이다.

 

에스겔 3 7 말씀에 보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에스겔의 말을 듣지 않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 말이다.

 

그런데 마음이 강퍅하고 뻔뻔한 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해야 되는데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격이 변하여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용기로 가득 찬 마음,

말씀을 통한 그 믿음에 절대 신뢰의 마음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그 뻔뻔한 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3 14 말씀에 보면

"14 주의 신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있게 나를 감동하시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나니까 에스겔이 근심하고

분한 마음이 됐다고 그랬다.

 

왜? 근심하고 분한가?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거역하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분한 마음이고 근심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니까 뜨거운 마음 때문에 에스겔은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에스겔이 말씀을 통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이것이 생활화로 채워지니까 이렇게 뻔뻔한 그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할 수 있고 분한 마음, 근심하는 마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마음

그리고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서 그것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배와 창자에 얼마나 말씀이

채워져 있는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음식을 굶었다가 조금만 먹으면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그런 말을 한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양이 안 채워졌다는 말이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그 간절함이 클수록

우리의 영적 음식을 먹는 영혼의 양식에 배가 커지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찾는 것이고

끊임없이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고

끊임없이 주의 음성을 기다리게 된다.

 

육신의 배는 적은 양식을 먹는 것이 더 건강에 유익하다.

그런데 영적인 이 배는 더 위대한 배가 되어서

더 많은 말씀을 받아 채울 수 있는 그런 배로 만들어야 된다.

 

육신의 배는 조그만하게 영혼의 배는 위대하고 크게

만들어야 한다.

 

들어간 말씀들이 더 많은 인격으로 변하면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겠는가?

 

이것이 생활화된다면 이것이 우리 안에 실천화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말씀을 듣고서 삶의 변화가 일어나서 배와 창자에게

채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세 번째는,

하나님 말씀이 두루마리를 받아서 입을 넓게 열어 먹고

그것이 배와 창자에 채워져서 인격화 되고 나면

세 번째 그 말씀을 가서 고해야 된다.

 

3 1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말씀을 먹게 하는 이유가 백성에 가서 고하기 위해서였다.

백성에게 그 말씀을 던지기 위해서 먹이는 것이다.

 

3 4에 또 한 번 말씀한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3 11에도 또 말씀하고 있다.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하나님은 공의롭게 그들에게

말씀을 허락하신다.

 

말씀을 에스겔의 창자에 채우고 배에 채우는 하나님의

목적이 가서 이스라엘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고하게 하기 위하여 말씀을 먹이신 것이다.

 

3 15 말씀에 보니까

"15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강 가에 거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민답히

칠일을 지내니라"

 

 "민답"이라고 하는 이 말은 넋을 잃고, 경악하다

그런 뜻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말씀이 임하니까 넋을 잃었다.

놀라운 일을 보게 되면 우리는 넋을 잃는다.

멍 때리는 그런 자세가 민답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놀랐다.

경악을 하고 넋을 잃고 멍 때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에스겔 3 16절에서 21

"16 칠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찌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말씀을 먹고 말씀의 생활화 돼서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며

말씀을 은사로 받은 자들은 악인과 의인을 깨우치는 것이

사명이다.

 

악인이 악한 길을 가는 걸 깨우쳐 줘야 된다.

의인이 의로 가다가 악으로 갈 때 그걸 깨우쳐 줘야 된다.

깨우쳐주고 나면 후로는 각 개인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깨우쳐주지 않으면 그 핏 값을 파수꾼에게

찾는다고 하였다.

 

깨우쳐 줘야 되는 것이 사명이다.

듣든지 안 듣든지 일단은 깨우쳐 줘야 된다.

순종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고 일단은 깨우쳐 줘야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다.

"나는 그 피에서 깨끗하다"

그들을 다 깨우쳐 줬다는 말이다.

 

공중에서나 개인에게나 개인적으로 심방을 가서

또는 대중적인 집회에서 다 그 깨우쳐 줬는데

가장 유익한 것이 회개와 믿음이다 라고 하였다.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다 깨우쳐 줬다.

 

그럼 나머지는 개인의 몫이다.

여러분 이제 침묵하면 안 된다.

우리는 깨달은 만큼 가서 깨우쳐 줘야 된다.

나머지는 그들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먹은 우리 각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 핏 값을 그 손에서 찾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56 10~12절 말씀을 보겠다.

"10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12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이것이 신천지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씀이다.

기성교회 목자들이 벙어리 개다.

몰각한 목자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기성교회를 이 말씀을 가지고 치는데 자신들도

몰각한 목자이다.

 

그런데 파수꾼들이 무지하고 벙어리 개라 짖지 못하고

개처럼 꿈꾸고 누워있고 잠자기를 좋아하고 탐욕이 심하고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몰각한 자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깨우라고 파수꾼으로 세웠는데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하면 몰각한 목자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말씀을 주어서 우리를 파수꾼으로

세웠다면 그들을 깨우쳐 줘야 한다.

이걸 깨우치지 않고 말로 하지 않으면 벙어리 개와

같다고 하였다.

 

이사야 62 6~7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예루살렘에서 찬송을 받게 하는 이것이 천년왕국이다.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지기까지 성벽위에 파수꾼들을 세웠는데

그 파수꾼들이 종일 종야 쉬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여

하나님이 계속 역사하시도록 그렇게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한다.

 

이 파수꾼은 종일 종야 기도도 쉬지 말아야 되고

종일 종야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일도 쉬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셔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이 쉬지 못하도록

계속 기도의 향을 올려드리고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파수꾼의 사명이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에게 므나를 다 주셨다.

여러분은 다 말씀과 복음과 진리를 받았다.

 

그런데 그 므나 받은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은 달란트를 받아야 된다.

무슨 달란트인가?

 

지혜의 말씀을 받아야 되고 지식의 말씀을 받아야 되고

가르치는 사명으로 사람들을 섬겨 나갈 수 있는 은사를

또 받아야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입을 넓게 열고 그 말씀을 먹을 때마다

꿀같이 달아 지는 역사가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씀을 사모하고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말씀이 자꾸 들어올 때마다 내 배에

창자에 채워 그것이 인격화되고 생활화되면서

우리는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에스겔을 통하여 이러한 말씀에 대한 자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함께 보았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통하여 말씀과 성령으로 열매를 맺고

더 나아가서 말씀을 또 은사로 달란트로 더 추가하여

받아서 정말 어두워지는 이 시대에 파수꾼이 되어서

하나님의 우리를 통하여 쉬지 않고 일할 수밖에 없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감당해 내는 그런 파수꾼의 사명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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