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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특별 강단

by Andrew Y Lee 2022. 6. 3.
특별 강단


느헤미야 8:1-12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 상인들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가는 그 과정을
"광야 교회"라고 표현 했다.


신약에 나타난 교회가 이미 이스라엘을 모형으로 하여
하나님이 보여주셨는데 스데반 집사님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것이
"광야 교회"라고 표현하였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가고 광야를 지나가는 대상처럼
저와 여러분도 사막과 광야를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사막과 광야를 지나가는 낙타 상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오아시스다.


사막을 통과할 때 물을 마셔야 되고 짐승들을 쉬게 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는데 이 오아시스가 없으면 아무도 사막과
광야를 지나갈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영적 광야 교회를 지나면서 가나안 천국을
향해서 가는 우리들은 사막과 같은 죄악 세상을 지나갈 때
꼭 필요한 것이 영적 오아시스이다.


그래서 오늘 "특별 강단"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오아시스에 대해서 말씀을 하려고 한다.


첫 번째,
그럼 영적인 오아시스가 무엇인가?


낙타 상인들은 광야와 사막을 지나면서 오아시스를 만나는데
현재 영적 광야와 영적 사막을 지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영적 오아시스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영적 오아시스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영적인 각성을 만나는 것이다.


이 마지막 때는 인류에게 영적인 대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영적인 각성이 나에게 있어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영적인 각성이 나에게 있어야만 영적인 물을 마시고
영적인 휴식을 얻고 또 나머지 광야를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영적인 오아시스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영적인 각성을 만나는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리가 살펴보면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 사무엘상 6장을 보면 언약궤를 다른 나라에게
빼앗겼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빼앗겼을 때
얼마나 나라와 민족이 어려웠겠는가?


사무엘상 7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3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8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사무엘을 통해서 언약궤를 다시 찾아오고
사무엘상 7 2에 보면 언약궤를 찾아온 지 20년이 될 때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면서
새로운 각성을 만나게 된다.


그때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라" 하였고
그 미스바에서 대각성의 운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블래셋이 쳐들어올 때 사무엘은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어린 양의 번제를 받으셨다.


하나님이 그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셔서 미스바에 모인
모든 온 이스라엘 백성이 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놀라운 각성의 역사가 미스바에서 일어났다.


사사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하고 우상을 섬길 때도 사사들을
일으켜서 하나님이 또 각성 운동을 일으키셨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고 다시 회개하면서 또 빼앗겼던
나라를 또 찾게 되고 열두 명의 사사가 지나면서
이런 각성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이 각성이 바로 오아시스인 것이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나머지 광야를 지나갈 수가 없다.


오늘 본문의 배경인 느헤미야와 에스라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 되었다.
모두가 다 포로로 끌려갔다.
이럴 때 하나님이 느헤미야를 보내서 성벽을 재건하게
하시고 에스라를 불러서 하나님이 말씀을 선포하게 하고
회개 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나라와 잡혼 한 것과
우상 섬겼던 것 이런 것들을 다 회개하면서 영적인 각성이
또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영적 각성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와이시스라 하는 것이다.


신약시대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초대교회 이후로 교회가 타락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때마다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셨다.


웨슬레를 일으켜 감리교를 창시하며 영적인 각성을 일으켰고
캘빈을 세워 장로교를 세우면서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셨고
루터를 세워 루터교를 세우고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고
오순절 운동을 일으켜서 오순절 교회들을 세우고
수많은 교파들이 생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새롭게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가성을
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고 인류를 향한 영적인
오아시스였던 것이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인류도 이렇게 영적인 각성을 통해
이 시대까지 왔는데 이렇게 교회들과 개인의 신앙도
똑같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각성이 일어날 때
우리는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그러면 우리가 어디에서 오아시스를 만날 것인가?


누구나 다 영적인 각성이 필요한데 어디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물을 마시고 위로 받고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적인 오아시스가
부흥회와 사경회라고 생각한다.


먼저 사경회는 무엇인가?
일정 기간 성도들이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이다.


말씀을 샅샅이 조사하면서 말씀을 자세히 살피는 것을
사경회라고 한다.


교인들이 성경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사경회이다.


한국교회는 1907년에 놀라운 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이후로 한국교회가 120년 만에 이렇게 부흥의 역사를
일으킨 곳은 인류 역사에 없다.


이 한국교회의 부흥 역사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느냐하면
바로 사경회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님 집에서 7명이
모였었다.
일곱 명이 모여서 열심히 성경 공부를 했다.
그 당시에 이것을 "사경반"이라고 말했다.
반이 모인 것이다.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우리가 이제 스스로 성경 공부를
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여러 선교 교구마다 전부 사경회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1910년 이 사경에 동참한 성도들이 6만 4천명이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처럼 이렇게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 백여 년 전인데 1년에 6만 4천 명이
사경회에 동참했다.


1929년까지 약 20년 동안 한국교회는 129만 2천 명이
사경회를 참석했다.


한국교회가 지금 이렇게 우리에게 놀라운 부흥을 갖다 주고
복음이 전해진 이 원동력은 그 초대교회의 사경회 여기에
원동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129만 명이면 얼마나 많은 숫자에 얼마나 많은 사경회를
했는지 모른다.


우리 교단은 1년에 두 차례 사경회를 70여회 하고 있다.
우리교회는 기회만 되는 성경공부를 하는 교회이다.


왜 이렇게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생수와 같이 우리의 목을 시원하게 하고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해서
사경회를 하려고 하고 성경공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저는 누구를 만나기만 하면 성경공부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다 바쁘고 모이기도 힘들어
성경공부 하는 것이 힘들어지다 보니 제가 책을 쓰게 되었다.
아예 책을 사서 그냥 돌려버리면 일일이 모이지 않아도
저절로 성경공부가 되니까 그래서 책을 서둘러서 쓰게 되었다.
사경회 대신에 책을 쓴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가 특별한 1일 부흥회를 하게 되는데
이 부흥에도 또한 영적인 오아시스를 만나는 통로가 되고
영적 대각성을 일으키는 그런 통로가 될 것이다.


오늘 본문 가운데 느헤미야 8 4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4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때의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랬다.


에스라가 말씀을 선포하는 8장 장면에는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세워서 율법책을 낭독하였다.


이것처럼 저에게는 오늘 1일 부흥회가 특별한 강단이다.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처럼 특별한 강단을 만들었다.
지금 저는 웬만하면 다른 강사님을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강단을 세우게 됐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이 특별 강단이다.


에스라를 불러서 온 백성이 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나무 강단을 특별히 지우는 것처럼
오늘 부흥회는 우리 교회에 특별히 세운 강단인 것이다.


이렇게 특별 강단을 세우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각성을 맞이해보기 위해서이다.


오늘 강사 목사님이 나이가 73세이다.
작년에 심장병이 와서 고생도 하셨다.


안수 기도하기가 힘드신 그 때가 됐는데 성령의 역사를 따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제가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하셨다.


왜 제가 이렇게 하냐하면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오늘 오아시스를 좀 만나게 해주고 싶고
영적인 각성이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그 마음 때문에 특별 강단을 세우게 됐다.


부흥회와 사경회가 오아시스임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란다.
이것이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는 지름길이다.


본문 말씀처럼 특별 강단에서 에스라가 말씀을 낭독한 것처럼
하나님이 오늘 강사 목사님을 이렇게 사용해 주시라고 기도했다.


저는 오늘 강사 목사님이 에스라처럼 사용하셔서
우리 교회의 특별 강단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데
여기서 에스라가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
함께 말씀을 보도록 하자.


에스라 7 6을 함께 보겠다.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저는 오늘 강사 목사님이 에스라처럼 이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저에게 "한 알의 밀알" 을 설교를 하신다고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을 이렇게 학사 에스라처럼 익숙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다고 하였다.


인생은 다 연약한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왕에게 구하는 것을
다 받는 것이  에스라였다.


그러니까 그 성벽 재건을 감당하게 하고 율법을 선포하였다.
에스라 7 28
"28 또 나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있음으로 힘을 얻었다.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주셔서 하나님이 그 왕의 권세를 가지고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해서 이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신 것이다.


왕께 은혜를 입은 것도 또 하나님이 그의 손으로 도와주셔서
힘을 얻어 이 일을 감당하게 된 것이 에스라였다.


그래서 저는 강사 목사님이 오늘 이렇게 쓰임 받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에스라 10 1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먼저 죄를 자백했다.
그러니까 많은 백성이 이 은혜로 심히 통곡 하게 됐다.


오늘 부흥회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에스라처럼 하나님이 그분을 사용해줘야 우리가 다 같이
영적인 각성을 맛볼 때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이 말씀대로 되어지기를 저는 소망한다.


강사 목사님이 계시는 기도원의 이름이 "에벤에셀"인데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위에 말한 미스바 회개 운동을
일으켰는데 그 미스바 회개 운동에서 하나님이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놀라운 각성이 일어나니까
거기에 기념으로 돌을 하나 세웠다.


도움의 돌인데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
이것이 에벤에셀 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어려울 때 사무엘을
통해서 미스바 회개 운동을 일으키면서 대각성이 일어나니까
거기에 기념으로 돌을 세웠다.
이것이 기념의 돌이고 도움의 돌이다.


기도원이 있는 곳 미국의 샬롯은 영적인 구멍이 열린 곳이다.
이 기도원의 강사 목사님이 오시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신 것처럼 목사님을 에스라처럼
하나님이 사용해 주셔서 오늘 놀라운 은혜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세 번째는,
그러면 이런 놀라운 오아시스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적 각성을
맛보려고 하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되는가 하면
느헤미야 8 1
"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여기서 누가 청했는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청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다 포로 잡혀갔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성벽을 재건해서 특별히 만든 강단에
학사를 좀 모셔오라고 모든 백성이 청하였다.


여기 이 백성들처럼 변화받기를 원하고 영적 각성을
만나기를 원하고 소망이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저에게는 영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저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기적과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모든 백성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지 모른다.
5에도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수문 광장에 모여서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들이
모두 모였는데" 모든 백성들을 말하고 있다.
이 백성들처럼 변화받기를 사모하고 새롭게 되기를 원하고
오아시스를 만나기를 원하는 이 필요성을 느끼는 그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로마서 12 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알려면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 변화를 받으려면 이 세대를 본 받아서는 안 된다.
세상 따라가면 안 된다.
유행 따라가면 안 된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
먼저는 뜻을 알게 되는데 '그 변화가 나는 필요합니다'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하다.


이것이 그릇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변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사모해야 된다.


느헤미야 8 2~3
"2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지금 시간이 몇 시간인가?
새벽부터 오전까지 여러 시간인데도 알아들을 만한 자들이
다 모여서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다.


5 말씀에 보니까 이제 에스라가 백성 위에 서서
책을 펴니까 모든 백성이 그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 앞에
전부 일어섰다.


6 말씀에 보니까 광대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면서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면서 응답을 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다.
말씀을 사모하면서 그 말씀의 책을 펴니까 전부 일어서서
아멘 아멘하면서 전부 다 경배를 하였다.


이렇게 말씀 받는 자의 자세가 필요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 강사 목사님이 학사 에스라를 사용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가 영적 각성이 꼭 필요하니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기를 소망해야한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계셔서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말씀이
지금도 살아있음을 믿어야 한다.


시편에 보면 그 말씀이 안개도 보내고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마음대로 천둥, 번개도 치게 하시고 하나님이 태풍도
말씀을 보내서 하신다고 하였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의 으뜸인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치료하지 않겠는가?
말씀을 통해서 응답하지 않겠는가?


그 거룩한 말씀을 펼 때 "아멘"하고 전부 경배를 했다.


이렇게 말씀을 귀히 알고 말씀을 사모하며 변화를 사모하는
이런 심령으로 모이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9 말씀 보겠다.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니까 어떻게 되었는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성벽은 다 무너진 현실은 우리가
다 말씀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울면서 회개하게 되었다.


우리가 오아시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된다.


문제는 영적인 허기와 기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면서도
자기가 이렇게 죽어가는 것을 모른다.


옛날 학교 주변에 가면 아이들에게 불량식품을 팔았다.
이 불량식품 몸에는 해로운데 달콤하고 당장 먹을 만하니까
용돈 가지고 불량식품 사먹었다.
몸에 해로운 줄도 모르고


마찬가지고 우리가 생수와 같은 말씀을 만나고 영혼의
양식을 제대로 만나야 하는데 불량식품처럼 달콤하니까
기복적인 것들, 잘못된 것들, 이단 이런 것에 귀가 솔깃해서
많은 사람이 따라가는 이 시대가 이런 때이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깨달아야 된다.
디모데후서 4 3~4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이 자기의 귀가 가려워서 이 귀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처럼 내 사욕을 만족시켜주는
그런 스승과 말씀들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이게 영적인 불량식품이다.


배탈이 나는 줄도 모르고 이것으로 허기를 떼 우는 양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 불량식품을 먹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영적인 대각성을 만나려면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4 5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영적인 각성을
우리에게 일으켜주게 된다.


여러분 주변의 영혼들을 바라보시면서 나 같은 죄인도
변화시켰는데 저 사람을 왜 변화시키지 못할까?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란다.


하나님은 순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말씀과 기도로 영적 각성이 일어나면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모든 영혼은 다 변화를 받게 돼 있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변의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대신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


주일마다 우리가 다 섬기는 제단에서 말씀을 먹고
이렇게 은혜를 받는데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비가 필요하다.


매일매일 조금씩 내리는 이슬비도 필요하고
때에 맞는 단비도 필요하고 또 소낙비가 내려서
한꺼번에 부쩍 자라는 소낙비도 필요하다.


오늘 이 집회가 소낙비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소낙비를 맞아야 암모니아수가 풍성해서 푹 자라게 된다.


은혜의 비를 만나야 때에 딱 맞게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처럼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그래서 오늘 부흥회가 말씀과 기도로 각성하게 하는
영적 오아시스가 되도록 준비하시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동참하여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기적과 응답을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소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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