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모시고 살기
요한일서 4장 10~16절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번 주가 지나면 이제 금년도 한 달밖에 안 남았다.
12월은 우리가 결산의 달로 정하였다.
금년을 잘 결산하여 하나님께 칭찬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편 16편 1~11절
"1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40대를 지난 어느 남자분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하기 어려운 일 10가지를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그 10가지 중
첫 번째 배가 나와서 숨 쉬기가 힘들다.
두 번째 tv를 많이 보기 때문에 잠자기가 힘들다.
세 번째 거짓말을 가끔 하게 되는데
참 말만 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네 번째 시간 관리가 어렵다.
다섯 번째 부모 모시고 살기가 그렇게 어렵다.
여섯 번째 자식과 함께 살기도 어렵다.
일곱 번째 100m 달리기가 이제 어렵다.
젊었을 때는 마음껏 달렸는데 40이 넘어가니까
100m 달리기가 어렵다.
여덟 번째 유유자적하게 살기가 어렵다.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유유자적하며 여유 있게 살기가 어렵다.
아홉 번째 남의 말 안 하고 살기가 어렵다.
열 번째 약속 지키기가 어렵다.
이렇게 열 가지를 꼽았다.
여기서 다섯 번째, 여섯 번째가 부모 모시고 살기가 어렵고
자식과 살기가 꽤 어렵다고 말을 했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저와 여러분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이다.
부모를 모셔야 되고 자식하고 함께 사는 것도 사실은
자식을 모시고 사는 거나 같은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모시고 사는 것이고
아내는 남편을 모시고 살고
또 강아지 한 마리를 갖다 놓고 보니까
강아지도 모시고 사는 것이다.
먹을 것 주고 산책시켜줘야 되고
옷도 사다줘야 되고 상전이다.
직장에 가면 상관을 모셔야 되고 스승을 모셔야 되고
선배도 모셔야 되고 이런 많은 모시는 삶 속에서
가장 어려운 게 그래도 부모님 모시는 것이
제일 어렵더라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오늘날 사회 이슈가 노인 문제가 급증하니까 실버산업이
발전하고 노인 요양보험 제도가 나타났다.
직장 다니면서 나이 든 부모님을 모시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모시고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세상이지만
성도의 삶은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
남편도 아내도 잘 서로 모셔야 되고 더 나가서
하나님 아버지까지 모시고 살아야 되는 삶이
성도의 삶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 모시고 살기"이다.
첫 번째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는 것은
시편 16편 8절에 다윗이 고백을 한 것처럼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는 것은 항상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시고 사는 것이다.
코람데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 코람은 "그 앞에서" 그런 말이고
데오는 "하나님" 그런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을 합치면 "하나님 앞에서"
계속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코람데오이다.
다윗이 이 고백을 하고 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있다"고
이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다.
구약시대 성서에는 1년 내내 7개 가지에 불을
1년 내내 쉬지 않고 킨다.
1년 내내 하나님 앞에 제물을 갖다 제사 드리고
1년 내내 절기를 지키고 찬송하는 이들이 와서
일 년 내내 찬송을 한다.
이것이 하나님 모시는 것이다.
지금은 마음에 성전 시대니까 우리 마음 안에 성소가 있고
그 성소에 성령님이 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항상
모신다고 하는 것은 내 마음에 오신 그 성령님을 항상
의식하고 사는 것이다.
항상 소통 하는 것이다.
항상 교제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항상 모시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간에도 남편이 생각도 나지도 않고
소통도 안 되면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다.
계속 생각해야 되고 계속 소통이 돼야 되고
서로 함께하는 것이 서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영이시고 예수 그리스의 영이고
같은 분이다.
요한일서 4장 15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항상 모시고 살아가는 것인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을 하면 모시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 분이다.
영원히 볼 수가 없는 분이다.
시편 2편 7절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영으로 볼 수
없는 그분이 눈에 보이도록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분을 하나님으로 시인해야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바로 내 안에 계신다 하는 것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시인하고
그분이 나의 구세주고 그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대신 보내신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것을
시인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항상 모시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6장 15~16절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하나님은 영원히 죽지 않고 생명이 그에게만 있고
빛 가운데 거하시고 누구도 볼 수가 없는 분인데
그분이 기약이 이르면 나타나시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만왕의 왕 만주에 주로 오시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여 다시 오시면
그분이 만왕의 왕 만주에 주로 오신다.
그분이 하나님으로 오신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19장에 보면 지상 재림 하시는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천년 왕국에서 만왕의 왕인 예수님
곧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리고 천년 왕국이 끝나고서 계시록 20장에
백보좌 심판을 할 때도 그 백보자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다.
그 다음에 요한계시록 21장에 가서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보좌를 보니까 여전히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어린 양 예수님의 보좌가 같은 보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히 천국에서도 볼 수가 없는 분이고
눈에 보이는 예수님으로 오신 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 낳은 아들로 오셨지만 그분이 곧
하나님의 본체시고 하나님이시고 이것을 시인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이고 이단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10장 9~10절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우리의 주로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믿어야 하고 부활의 주님을 믿고
죽은 자 가운데 살리셨고 부활했기 때문에 영생의 하나님이
그 가운데 오셔서 예수님이 재림에 오실 때
그 생명의 하나님이 그 예수님을 통해서 오실 수가 있다.
그래서 이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을 하면
구원을 이룬다는 이런 신앙이어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항상 하나님을 모시는 신앙이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모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부모님을 모실 때
그 "부모님을 섬긴다" 이런 말로도 표현할 수 있고
"부모님 마음에 들도록 순종한다" 이런 뜻일 수도 있고
그다음에는 "함께 지낸다"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신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모시는 것처럼 부하가 상관을 모시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 사랑하는 이 사랑의 삶을 살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된다.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6절에 말씀을 하셨다.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이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한다"
이것이 모시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시니까 사랑하니까 그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도 하나님 안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시게 된다는 말이다.
요한일서 2장 5~6절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되어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느니라" 사랑이 온전해져서
그 사랑 안에 있을 때 함께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기 된다.
그래서 저 안에 있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찌라
그가 어떻게 행하셨나?
오직 모두에게 사랑으로 행하셨다.
자기도 그렇게 사랑으로 행해야 저와 그 안에 함께 있는 것이다.
요한일서 5장 1~3절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여러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요한 사도는 그것이 무거운 것이 아니다 하였다.
우리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해야 한다.
요한일서 3장 24절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계명들을 지켜서 서로 사랑하는 자는
주님이 그 안에 거하는 것이고
또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고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랑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을 모시게 된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훈련이다.
신앙생활은 사랑이신 그분이 내 안에 계셔서
그 사랑 안에 온전하게 되어지는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계속 말씀만 있는 곳이고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계속 이루어지는 그런 나라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천국에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훈련을 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다.
여러 가지 환경을 주신 것이 광야고 연단이다.
전에 벌써 오래된 이야기인데 춘천에서 목회를 하는데
어느 집사님이 시어머니를 너무 미워했다.
본인도 힘들어 했는데 그때도 이런 진리의 말씀들을
들었으니까 사랑해야 된다는 건 아는데
그 시어머니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와서 "목사님 제가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계시기도 좀 해주세요" 그래서 기도를 같이 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좀 탤런트가 될 수 없겠느냐"
그 사랑을 연기라도 하라는 말씀이었다.
속에는 부글부글 끓지만 그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텔런트처럼 사랑의 연기를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분은 그렇게 했었다.
속에는 아직까지 불편한 마음이 있어도 연기를 하였다.
나중에 시어머니가 변화를 받았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이 아이가 갑자기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그런 걸 느끼셨는지
시어머니가 변했다고 하였다.
우리는 사랑의 연기라도 해야 한다.
힘들어도 내가 텔런트라도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훈련이고
그렇게 우리는 사랑으로만 살아야 주님을 모시게 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의 축복이다.
시편 16편 2절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여러분 복을 다른 데 가서 찾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란다.
주님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주님만이 나의 복이다.
시편 16편 3절
"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성도는 존귀한 자이다.
여기에 소수의 무리가 모였지만 한 분 한 분이 존귀한
자니까 얼마나 귀한 자리인가!
그래서 이 존재한 자들과 함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함께 섬기는 이 즐거움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을 모시는 자의 축복이
5절부터 나와 있다.
시편 16편 5절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누가 나의 분깃을 지켜줄 수가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누가 나의 분깃을 지켜주는가
아무도 나의 분깃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신 인생, 땅에서 존귀한 자는
하나님이 그의 산업과 잔의 소득이 되기 때문에
그 분깃을 지켜주신다.
시편 16장 6절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 땅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정해준
구역들이 다 있다.
나라마다 구역이 있고 인생이 살아가는 동안에
다 구역이 있는데 다 하나님이 정해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
그런데 이 세상뿐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도
우리 각자의 정해진 구역이 있다.
내가 들어갈 마을이 있고 내가 들어갈 지파가 있고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변화된 만큼
우리의 영원한 자리가 있게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서도 줄로 재어준 구역이
우리에게 있고 또 가야 할 나의 자리가 있고
나의 기업이 거기 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가?
시편 16장 8절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신 자의 축복이다.
어떤 환란 풍파가 오든지 어떤 기가 막힌 일이 생기든지
이 세상이 요란하고 별일이 다 생겨도
하나님을 우편에 항상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에
요동치 아니하는 삶 이것이 우리가 받는 최고의
신령한 복이다.
하나님을 모신 만큼 우리는 요동치 않는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대통령을 모신다고 한다면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을 누가 건드리겠는가?
권세가 있는데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내 우편에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에 요동치 않는다.
수많은 환경들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공격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신 인생을 누가 건드릴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기 때문에 요동치 않게 된다.
여러분 추수할 때 보면 키로 까불고 탈곡기로 바람을 날릴 때
알곡은 그 속에 알맹이가 들어가 있어 떨어진다.
그런데 검불은 다 날라가 버린다.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다 날라가게 된다.
이것을 요동한다고 하는 것이다.
탈곡기에 바람이 불고 추수 할 때 바람이 불어올 때
알곡은 그냥 그 자리에 내려앉고 모여지지만
쭉정이, 겨 같은 것은 바람에 다 날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세상에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흔들려서 이리저리 요동칠 때
하나님을 모신 인생은 요동치 않는다고 하였다.
연못에 가서 돌멩이를 한번 던져보면 동심원들이 생긴다.
그런데 연못 깊은 곳이라면 위에는 동심원이 생기고
요동이 있어도 그 안 깊은 곳에는 아무런 요동이 없다.
이와 똑같다.
하나님을 깊은 나의 영에 모시고 하나님을 내 우편에 모셔서
하나님 앞에 항상 모시고 사는 이 인생은
어떤 환란이 와도 동심원과 같이 요동치 않는다.
왜? 깊은 곳에 주님과 함께 침잠해 있는
그런 삶이기 때문에 요동치 않는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말 한마디에도
요동할 수가 있다.
어떤 환경이 다가오면 요동하고 바람이 불면 요동하고
무슨 일을 만나면 그냥 요동하게 된다.
계속해서 주님을 깊이 모시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게 된다.
무슨 일만 생기면 하나님 또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십니까? 왜 또 접니까? 왜 또?
이것이 전부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모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환경과 그 모든 것에서
나를 하나님을 더욱 깊이 모시고
사랑하게 하려는 섭리 속에 두신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감사해야 된다.
그러면서 그 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원망하고 난리를 치는 것이
다 요동치는 것이다.
시편 16편 9절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②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은 마음이 기쁘다.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여기 간주에는 이 "영광"을 "영"으로 번역을 해놓았다.
그러니까 마음도 기쁘고 내 마음 깊은 지성소에 있는 영도
즐거워하며 기쁘다는 말이다.
영혼이 다 기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셨으니까 마음도 기쁘고 영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더 나가서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한다 하였다.
요동하면 육체도 힘들어진다.
우리가 한번 화를 내면 육체도 스트레스를 받고
몸도 점점 나빠지고 뼈가 쇠하여 진다.
그런데 마음이 기쁘고 영도 즐거워하면서
영혼이 기쁘고 즐거우면 육체도 저절로 안전해지면서
건강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영혼육이 다 기쁘고 즐겁게 된다.
시편 16편 10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결국은 부활을 이룬다는 것이다.
사실은 다윗을 빙자하여 예수님의 삶을 여기서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을 음부에 버리지 않고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부활해 주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을 우편에 모시고
영원히 그분을 섬겨가는 그런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받는 복이고 그 다윗을 빙자하여
예수님이 받는 복을 똑같이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도 이런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신 인생만 썩지 않는 부활을 맛보게 된다.
시편 16편 11절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신 인생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아직 부활을 입지 못했고
그 생명을 아직 취하지 못했지만 이것을 가진 소망 속에서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을 바라보면서 가야한다.
그러니까 환란 중에도 즐거워할 수가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어떤 일이 와도 든든한 하나님을 모신것 때문에
요동치 않으면서 이 길을 갈 수 있다.
확신 속에 가는 어떠한 길을 가더라도 요동치 않는다.
어떤 길을 가도 기쁘고 즐겁다.
부모님 모시는 것도 어렵고 남편을 모시는 것도 어렵고
자녀를 다 양육하는 것도 모시는 것이다.
다 어렵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도 잘 모시면 효자가 되고
자녀를 잘 양육하고 모시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이 중에서도 영원하신 하나님!
이분을 모시는 것만큼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게 가장 위대한 일이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위대한일이고 가장 투자할 만한 일이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 속에는
가장 투자할 일이고 가장 위대한 일인 것이다.
왜?
영원토록 그것이 기업이 되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장 8절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내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그 의지대로 애쓰면
하나님도 너희를 가까이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그 하나님을 모시려고 애를 쓰고
그런 삶으로 몸부림쳐야 하나님도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시게 된다.
내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데
그분이 먼저 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내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그 일이 가장 위대하고 투자될 만한 일이고
영원한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모하면서
그를 가까이 하려고 애를 쓰는 이런 삶으로
나가야만 한다.
골로새서 3장 1~3절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저와 여러분의 생명이 예수님 안에 다 감춰져 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고 영이신 그분인데
눈으로 보이는 예수님으로 오신 그분 안에
그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래서 그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게 된다.
그러한 영원한 생명이 나타나기까지 땅의 것은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다.
금년 한 해 남은 한 달 은혜 가운데 잘 결산하시면서
잃어버렸던 하나님 모시기를 다시 회복하시면서
한 해 결산을 하시고 어렵지만 힘든 일이지만
이것이 위대한 일이고 투자할 만 일이며 영원한 일이다.
여러분이 하나님 잘 모시는 일을 남은 한 달 동안
열심히 하면서 결산한다면
금년에도 좋은 결산이 있게 될 줄 믿는다.
하나님 모시는 것은 항상 하여야하고 같이 살고
소통이 돼야 하며 그분을 의식해야 하고
그분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 잘 모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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