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은 사명의 지름길 누가복음 5:1-11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류 역사가 지나가는 것이 불신자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역사이다.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구원의 역사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인류를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그런 섭리 속에서 구속의 역사가 지나가는데 그 구속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의 일꾼을 사용하신다. 영계에서는 천사를 사용하시고 땅에서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사용하신다. 히브리서 1장 7절 "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하나님이 천사들을 바람처럼 불꽃처럼 이렇게 삼으신다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1장 14절 "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서 하나님이 부리는 영 천사를 보내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꾼을 천사, 사람 이 두 가지를 사용하시는데 그중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데 특징이 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과 천사의 특징은 한마디로 "순종"이다. 그래서 유다서 1장 6절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하늘나라에서 불순종한 천사들이 있었는데 3분의 1이 타락해서 땅으로 떨어졌다. "불순종한 천사들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다"라고 유다서 6절에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큰 날의 심판까지 결박으로 흑암에 가둬놓았다" 말씀하였다. 그래서 이 불순종한 타락한 천사들은 악의 도구가 되었다. 성도들의 환경 배후에서 성도들을 핍박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을 조성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단 받는 이런 도구로 사용되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일꾼인 사람도 사용 당하는 사람의 특징은 바로 순종이다. 그래서 순종이 사명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역사에서 한 나라가 만들어지면 그 나라를 개국하는데 공신들이 있다. 나라를 하나 세우는데 얼마큼 공을 세웠느냐? 얼마큼 수고했느냐? 거기에 따라서 그들의 지위와 계급이 결정된다. 그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얼마만큼의 사명을 가지고 그 일에 헌신했느냐? 거기에 따라서 우리의 천국의 상급과 지위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된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얻는 우리의 지위, 상급, 면류관은 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우리가 애썼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명에 따라 그것이 결정이 된다.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사명이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예수님이 머리고 우리는 거기에 붙은 지체들이기 때문에 몸에 필요 없는 지체는 없다. 다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다 예수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사명자인데 사명자 가운데 특별히 순종하는 사람들이 사명을 더 크게 받고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된다. 첫 째 구약 시대에 순종한 일꾼들의 모습을 우리가 먼저 보도록 하자. 창세기 6장 22절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방주의 시간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이렇게 방주를 만들어라! 하나님이 만들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명하신 대로 노아는 준행하였다. 하나님의 시간대로 방주를 만들지 못하면 홍수 가운데 감당이 안 되었다. 명하신 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구원받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 그렇지만 "방주를 만들라 한 그대로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창세기 7장 5절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제 일주일 후에 비가 내릴 것이니 방주로 들어가라" 그래서 명하신 대로 그대로 진행을 했다. 그리고 비가 다 그치고 물이 다 빠졌을 때도 "이제는 방주에서 나가라!" 그래서 그대로 방주에서 나왔다. 창세기 8장 15절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노아의 때에 이 한 가족이 구원받지 못하면 인류가 어떻게 존속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방주 짓는 것이 중요하고 그 노아가 순종했기 때문에 들어가라 하면 들어가고 나오라 하면 나오고 하나님은 말씀대로 모두 준행하는 노아를 사용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대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창세기 22장 18절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갖다 바치라는 하나의 말씀이 나온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면서 백세에 난 그 자식을 모리아산에 갖다 바치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 하고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네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이 된 주님이 올 것이고 이제 네가 큰 복을 받을 것이다"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22장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철저하게 순종하려고 하는 자세를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고 나와 있다. 하나님이 자식을 바치라고 할 때 핑계도 대고 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오후에 할 수도 있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번제에 쓸 나무를 다 쪼갰다고 나와 있다. 불이 잘 붙도록 순종하였다. 그리고 모리아산에 도착해서 "하인들은 그 밑에서 머물라" 하면서 방해거리를 다 제거하였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반항하지 못하게 결박을 한다. 이삭은 청년이 됐을 텐데 그를 결박하고 말씀 그대로 칼로 번제를 잡듯이 그렇게 짐승을 잡듯이 하려고 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네가 나의 말을 다 준행하였다" 그러시면서 준비된 어린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하였다. 믿음의 조상이 세워졌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낼 수가 있었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준 가나안땅을 우리가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덕분에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되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의 순종이 없었다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철저히 말씀대로 준행하였다.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출애굽기 40장 16절 "16 모세가 그 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였더라" 이 성막을 짓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 성막을 짓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그 성막을 짓는 모든 과정,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하라고 한 그대로 말씀을 다 준행하였다고 말씀 하고 있다. 출애굽기 39장 21, 29,31절 "21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서 에봇을 떠나지 않게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29 가는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 놓아 띠를 만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31 그 패를 청색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제사장의 옷을 만드는데 그 제사장의 옷이 잘못 만들어지고 하나님 뜻대로 안 되면 잘못된 불을 들고 잘못된 제사를 드리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나님께 올바르게 제사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했다고 나와 있다. 출애굽기 39장 43절 "43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여러분 말씀대로만 살면 축복을 받는다. 말씀대로 명하는 대로만 하면 우리는 축복을 받게 돼 있다. 명하신 대로 되었으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그래서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기 때문에 40장 2절에서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그래서 회막을 세워서 거기에 모든 기구를 들여놓고 성막을 완성하였다. 그 모든 성막을 완성하는 일에 하나님말씀대로 다 명하는 대로 하여 그대로 되었다. 출애굽기 40장 29, 32절 "29 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32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명하신 대로 되지 않으면 그 회막 안에서 아무것도 될 수가 없다. 이렇게 구약시대 모든 하나님 쓰신 사람들은 철저하게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할 사람들 그들을 쓰시고 그들을 축복하셨다. 두 번째 신약 시대의 일꾼도 여전히 순종의 사람들을 썼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4장 18~19절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 잡는 도중에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 자리에서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고 나와 있다. 안 따라가면 순종하지 않으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없다. 마태복음 4장 21~22절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그랬다. 이것은 생업의 도구였다. 그런데 요한과 야고보는 배를 버려두고 부친을 버려두고 그랬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부친을 장사하는 데까지 부모를 잘 모셔야 되는 것이 그들의 도리인데 그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하였다. 이것은 대단한 순종이다. 이어서 누가복음 5장 본문 가운데 베드로를 부르시는 더 구체적인 장면을 누가만 우리에게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본문을 통해서 나타난 베드로의 부르심의 그 순종! 이것을 여기서 우리는 자세히 확인할 수가 있다. 먼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온 그 날은 오전에 이러한 날이었다. 누가복음 5장 5절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이 게네사렛 호수에서 잔뼈가 굵어서 일생을 이 곳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와서 그 배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라고 한 그 날은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얻은 것이 없는 날이었다. 그 날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서 종종 새로운 사명을 주실 때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없는 그날과 같이 그러한 인생의 어려움 그 가운데서 주님은 종종 우리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다른 날 찾아온 것이 아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해도 얻은 것이 없는 그날! 그날이 이제 우리가 성장론적으로 말하면 바로의 탄압을 받는 때이다. 마음이 가난해지는 때이다. 천로역정에서는 죄악세상이 장망성이라 장차 망한다는 걸 알게 되니까 성경 하나를 들고 생명 생명하면서 생명을 찾아 떠나는 장면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찾아오신 그날이 베드로의 마음이 가난해지는 날이고 그 날이 바로의 탄압이고 죄악세상을 떠나서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날인 것이다. 우리가 이미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또 우리에게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없는 그때 새로운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는 그때가 바로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하는 날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4절의 말씀을 마치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게네사렛에서 잔뼈가 굵고 어부로서의 경험도 너무 많다. 어느 시간에 어느 장소에서 고기가 잘 잡히는지 인간적인 계산도 있을 것인데 그것 다 밀어놓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의 순종이다. 그러니까 놀라운 은혜가 나타났다. 누가복음 5장 6~7절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얼마나 많은 고기를 실었으면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그렇게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없지만 단 한 번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릴 때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누가복음 5장 8절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지 의인을 부러 오시는 것이 아니다. 병든 자라야 의원이 필요하고 병든 자가 아니면 의원이 필요가 없다. 이 베드로가 죄인임을 고백했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예수님이 "당신은 메시야이십니다" 이런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이다. 나는 죄인이고 메시야이시고 그 거룩한 분이 죄인과 함께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와 함께하실 분이 아니시다. 블레셋이 법궤를 빼앗아갔을 때 블레셋의 다곤신 앞에 법궤를 갖다 놓으니까 다곤신이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메시야이신 주님이 나 같은 죄인과 함께할 수가 없고 나를 떠나소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놀라운 축복이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죄인인 걸 깨달아야 주님이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하고 용서가 필요하고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누가복음 5장 10절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사람을 취할 것이다! 물고기 잡는 것보다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게 바로 부르심이고 이것이 순종이었다. 여러분 베드로가 얼마나 천방지축이고 얼마나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나? 예수님이 유령과 같이 물에서 걸어오시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이다" 하니까 어떻게 했는가? 그냥 물로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천방지축이고 성격도 급한 그런 베드로인데 예수님에게 나와서 훈련받고 연단 받아서 그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니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 날 성령 받고 나니까 한 번 설교할 때마다 3천명이 회개하고 5천명이 회개하고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맡겨 천국문을 열었다. 고넬료 이방인의 가정 속에서도 천국문을 맡았기 때문에 그 첫째 문을 베드로가 열었다. 이방인의 사도는 사도 바울이지만 그 문은 베드로가 열었다. 베드로는 이렇게 사람 낚는 어부로 변화 되고 사명에 대해서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 이 철저한 순종이 베드로가 수제자가 되도록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떠한 사명이든지 순종이 사명의 지름길인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이 시대가 마지막 때인데 마지막 때의 일꾼도 여전히 순종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고린도후서 3장 6~11절 "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여기서 의무는 율법이다. 모세는 율법의 직분을 받은 사람인데 그 모세의 율법의 직분은 율법을 세우니까 사람을 정죄하는 직분이다. 죽게 하는 직분이었다. 법이 없으면 어떻게 처벌을 하겠는가? 살인하지 마라! 계명이 있으니까 그 살인자가 벌을 받는 것이고 이런 정죄의 직분이고 율법의 직분인 모세도 그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수건을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빛을 바라볼 수가 없으니까 그것도 영광의 직분인데 의의직분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사도 바울이 이것은 "영의 직분이다" 정죄의 직분이 아니고 영의 직분이고 사람을 살리는 이 영의 직분이 더 큰 영광이기 때문에 이 영광이 모세의 영광을 덮어버린다고 말씀하고 있다. 빛이 비추는 곳에 더 밝은 빛이 비추면 기존의 빛들은 다 그 밝은 빛에 포함돼 버리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더 추가해서 마지막 때 추수의 일꾼들은 더 큰 영광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란다. 구약시대의 모세 모든 율법 안에 있던 인생들 이 새 언약의 교회 속에 있던 모든 영혼들이 7년 대환란이라는 추수 때는 자다 깨서 다 한꺼번에 모아 놓고 타작마당에서 익은 열매를 골라내고 좋은 물고기 못 된 물고기를 골라내는 마지막 추수의 역사이다. 얼마나 큰 영광인가? 저는 연단도 많이 받고 훈련도 많이 받고 사는 것이 평탄치 않고 쉽지 않고 어렵지만 예수 믿고 이 마지막 때를 지나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인류역사의 대변혁기 한 가운데 놓여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여러분이 살아생전에 천년 왕국이 온다면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는가? 그걸 소망하고 바라보고 현실로 나타날 확률이 있는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이 시대가 정말 성경대로 일이 이루어지면서 말씀대로의 종말 시나리오가 이루어져 가는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태어난 게 너무나 감사하고 마지막 때 사역자가 된 게 너무나 감사하다. 저는 마지막 때 직분의 영광이 더 큰 줄로 믿는다. 모세는 정죄의 직분이고 사도바울의 직분이 이렇게 큰 영광의 직분인데 마지막 때 하나님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친다고 말씀드렸다. 마지막 우리는 스타가 되는 그런 기회가 있다. 갈수록 영광의 직분은 큰 것인데 우리는 더 철저하게 순종하면서 새로운 사명들을 맡게 될 줄 믿는다. 사무엘상 15장 22절 "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이 사울에게 18절에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고 했는데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는 이름으로 좋은 양을 남겨놓았다. 명분, 합리화 시켰다. "하나님께 제사합니다" 하는 그 명분을 가지고 좋은 양을 남겨놓고 또 백성들이 그렇게 원했다고 핑계를 대면서 불순종을 했다.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나은 것이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인 다 진멸하라 한 그 명령이 더 중요하다고 것이다. 사무엘상15장 23~24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4절에는 핑계 대는 것이 나온다. 그러니까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을 들을 것인가? 백성들의 말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는데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까 "하나님도 왕을 버렸습니다" 불순종이 곧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신 누구를 쓰시는가? 다윗을 택하여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윗을 통하여 모든 일을 다 이루신다.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지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해져 갔다. 불순종의 사람들은 점점 멸망해져 가고 명령을 어기는 대로 하나님도 그를 버리고 명령을 따라 순종하며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점점 강해지면서 사명이 돈독하게 되어져 간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로마서 15장 16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위하여 예수의 일꾼이 되었다. 로마서 15장 18절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먼저 부르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그들은 히브리서 3장 4절 이하에 보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그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결국 망했는데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서 이방인에게 보낸 것은 그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순종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 이방인들을 순종 하게 하려고 사도바울을 보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순종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방인의 일꾼이 되어서 갔는데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려고 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선민에게 먼저 말씀했는데 불순종했다. 버렸다는 것이다. 사울을 버리는 것처럼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위해 사도 바울 일꾼으로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4장 4절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14만 4천 명의 신부다. 예수님의 신부인 이들이 휴거 성도들인데 예수님이 어디로 인도해 가든지 따라가는 자들이 철저한 순종의 사람들이고 어디로 인도하든지 예수님이 양 한 마리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 같이 십자가지고 가는 그런 환경이라 할지라도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익은 열매가 되고 그들이 신부가 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의 삶은 매 순간 선택과 결단이다. 그러면 그 선택과 결단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선택과 결단인가? 내가 말씀을 순종할 것인가? 순종하지 못할 것인가? 말씀을 앞에 놓고 이것을 선택하고 이것을 결단하는 삶의 연속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노동자 천국 일꾼을 지금도 모집하고 계신다. 세상의 경력을 보는 것도 아니고 인물이 얼마나 잘 낫나 보는 것도 아니고 가문을 보는 것도 아니고 학벌을 보는 것도 아니다. 누가 이 시대에 말씀대로 순종하는 종의 삶을 살 것인가? 누가 내가 명하는 대로 다 준행하여 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인가? 지금 그걸 보면서 천국일꾼을 모집하고 계신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할 때 짐승들은 다 피신을 한다.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지진과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마지막 때가 되어 지면 우리는 그 피신할 수 있는 영적 감감이 있어야 되는데 그 영적 감각이 곧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 지혜! 말씀이 지혜이다! 다니엘서도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속에서 연단을 받고 희게 되고 정결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지혜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가지 않는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 하게 되고 지혜 있는 자, 충성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양식을 먹이게 된다. 그 지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 여호와가 곧 하나님이고 그분이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시고 그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이 말씀이고 진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순종하고 이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지혜를 주시고 우리가 마지막 때의 영적 감각이 여기서 나오게 된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인 감각이 있고 지혜를 받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마지막에 이끌고 찾으신다. 이사야 선지자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한 것처럼 우리도 손을 들고 "내가 주님 앞에 마지막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순종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순종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나라의 개국 공신과 같이 큰 상급과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이 아침에 간절히 기원한다. |
말씀의 향연/메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