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과 분별
어떤 분들은 빛 과 어두움을 예로 들어주면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세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 율법사나 서기관들의 옳지 못한 마음과 행실을 판단하며 진리를 증거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사도 바울이나 기독교 역사 가운데 훌륭하게 생활하며 증거 했던 분들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런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전도할 때 빛에 대한 진리를 증거 하려면 빛 과 어둠을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성도님들이 혼동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악심을 품고 판단하는 것, 또는 비방하거나 후욕하거나 무시하는 것에 대한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성에 지배받지 않고, 건전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온유하고 자비롭고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안타까워하면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더 큰 사랑을 실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성의 지배를 받은 마음 가지고 무시를 하고 비방을 한다든가 혈기나 교만한 심정을 나타낸다면 심각한 것이지요. 속에 죄성의 지배를 받지 않고 건전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빛과 어둠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독사의 자식들아”(마12:23, 23:33), “회칠한 무덤이여”(마23:27)라고 하시면서 진리를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혈기나 교만, 아집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약이 오르거나 화가 나서 한 비판은 회개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심정으로, 사랑과 동정의 마음으로 한다면 죄를 범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의 사상이 조금 문제가 있을 때 가만히 있어야 되는지 아니면 틀렸다고 가르쳐줘야 되는지요?
잘못된 것인데 옳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침묵을 지키면서 그 사람이 권면이나 설득을 들을 만한 마음이 생길 때까지 인내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대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이에요. 상대방이 들을 마음 자세도 안 가지고 있는데 억지로 얘기하는 것도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적해 줘야 된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실 때까지 그냥 둬야 한다고 하세요.
두 가지 다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될 수 있어요.
제가 볼 때는 틀린 것 같은데 진리를 나름대로 적용하면서 합리화시키는 내용이 많아요. 얘기를 해줘야 할까요?
사람들마다 그런 것이 너무너무 많아요. 그래도 비판적으로 말하면 공격당하기가 쉬워요. 아집과 육적인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비판하면 “왜 내 것만 가지고 그러느냐, 당신도 육적인 것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느냐? 먼저 고치고서 말해.”라고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상대방의 마음상태를 잘 읽어 가면서 해야 돼요. 듣기를 원할 때 해야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여, 주변에 있는 다른 단체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꼭 해야 될 것 같으면 조용히 기도해 가면서 온유한 심령으로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지요. 그럴 때도 상대방이 얼굴이 굳어지고 기분이 나쁘다고 하면서 좋지 않게 여기면 살짝 뒤로 후퇴하는 것이 덕이에요.
한 번 입이 열리기 시작하면 대포를 쏘듯이 나가거나 아니면 억지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 아집성의 지배를 받고, 교만성의 지배를 받고 또 혈기까지 동원해서 일을 성취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주장하는 자세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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