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나엘을 본받는 신앙
요한복음 1장 43절~51절
현대인의 고민 중의 하나가
본받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인 것이다
대한민국을 한 번 생각해보자
정치나 경제나 사회, 종교, 그 밖에서
다른 본받을만한 사람이 있을까?
멘토가 있을까?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의 고민이다
고전 11장 1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본받는 것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면서 동시에 모든 언어행실에
본이 되는 분이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만 알면 안 된다
예수님은 모든 삶에 본이 되신 분이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하는데
우리가 의에 태양되신 주님을 직접적으로 본받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지도 않고
또 성경을 통해서만 알게 된 것인데
마치 5~6월에 뜨거운 태양을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지만
밤하늘에 달은 얼마든지 보아도 눈부시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수많은 성자, 성인들은 다 달과 같은 것이다
주님의 그 빛을 받아서 그 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이렇게 사도 바울을 본받고 성경에 나타난 그런 인물들을
본받는 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길이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 나다나엘을 통해서
그의 삶을 조명해보고 그를 본받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먼저 나다나엘은 요한복음 21장 1절~2절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이 말씀을 보면 나다나엘은 주님의 제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나다나엘인데 21장 2절에 보니
주님의 제자 중 하나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10장 2절~3절 예수님이 열두사도,
열두제자를 부르셔서 파송하는 그 열두명의 이름에는
나다나엘이 들어가 있지 않다
2.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이렇게 12명이 예수님의 제자인데 여기에 나다나엘이
들어가 있지 않다
바돌로매는 성경에 많이 나오지 않는데 이 바돌로매가
나다나엘이다 대게 그렇게 해석 한다
이것을 따로 따로 하면 13명의 제자가 되버린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본문에도 빌립과 연결이 있는데
10장 3절에도 빌립과 함께 나온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바로 바돌로매다 이것을 전제로 해서
우리가 한 번 생각을 해보자
나다나엘에게 본받아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요한복음 1장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제일 먼저 우리가 나다나엘을 본받아야 할 것은
그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고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라는 것이다
다른 번역에 보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거짓이 없다,
진실한 사람이다 이런 말로 되어 있다
간사한 것이 무엇인가?
이익을 따라 변화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익 때문에 거짓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사한 것과 거짓은 같이 가는 개념이다
신앙인 가운데도 이익을 따라 이렇게 움직이게 된다면
그것은 간사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거짓, 속이는 것, 하면 누가 생각이 나는가?
야곱이 생각이 난다 야곱은 그 이름이 사기꾼이다
속이는 자, 가로채는 자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받았고
이삭에게도 속여서 장자권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변하여 후에 이스라엘이 되었고
그때부터 남에게 속임을 당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
아들 요셉을 잃어버릴 때도 그 형제들이 와서
채색 옷에 짐승에 피를 묻혀 와서 짐승에 잡혀 먹었다
속는 것이다
계속해서 속이는 인생이었지만 나중에 변화 받고는
속아주는 인생이 된다
나다나엘은 그런 거짓과 간사가 없는 그래서 예수님이
보시기에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것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2편 1절~5절
1.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하나님은 간사한 것, 악을 행하는 것, 거짓을 사랑하는 것,
이런 혀들 전부 멸해버리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간사한 것과 거짓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시편 15편 1절~3절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하나님의 성산에 하나님의 장막에 유할 자
그들은 정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장막과 성산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직과
공의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편 32편 1절~2절
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는 나다나엘처럼 시편기자처럼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모든 것에 정직하고 참되고 진실한 이것이
아멘이라는 것이다
아멘이라는 것이 그런 뜻이다
정직, 참, 진실 예수님이 종종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이렇게 표현 하시지 않는가?
우리가 나다나엘처럼 간사와 거짓이 없는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
두 번째
나다나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절대로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믿는 믿음이다
요한복음 1장 48절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45절에 빌립이 와서 율법에 기록되어 있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일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
그러니 46절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나사렛은 죄인들, 망명한 사람들, 범법자들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동네인데 그곳에서 무슨 선한 일이 있겠느냐
그런데 그가 예수님 앞에 왔을 때 예수님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이 말씀을 하시니
즉각적으로 49절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그 자리에서 굴복하고 메시아임을 인정하였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막지대이고 더운 나라이니까
무화과 그늘아래 앉아서 묵상도하고 거기에서 기도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심도 있게 보면
미가 4장 1절~5절
1.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미가서 4장에 예언은 말일에 이르러서는 마지막 때
그때 예루살렘에 말씀이 선포되는데 그때
메시아인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에 3절에 있는 것처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천년왕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4절에 있는 것처럼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자기 기업을 받을 수가 있고 그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가 5장 2절에 보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 예언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다나엘 입장에서는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온다고
있는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냐
그러나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서 이 예언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이 오시는 그때를 기다리며 묵상하는 그런 생활을
했는데 예수님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려와서 무엇을 했는가?
그 말 한 마디에 그 자리에서 신앙고백을 하였다
율법의 모든 언약을 믿고 기다리는 삶이고 그 기다림 끝에
메시야를 만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본받아야 한다
성경에 모든 언약된 말씀들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준비하며 때를 따라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나라를 소망하며
달려 나가야 될 줄 믿는다
이것이 나다나엘의 믿음이었다
세 번째
올바른 신앙 고백을 드리는 사람이었다
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많은 신앙고백이 나온다
예수님이 말씀이셨다
육신이 되어 오셨다 이런 고백들을 많이 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자기는 참 빛이 아니다 라는 표현도 한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자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이런 고백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고백 중에서 거기에 안드레의 신앙고백도 있다
요한복음 1장 41절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주님이 메시야란 사실을 신앙고백하고 있다
그다음 빌립이 나다나엘에 가서 고백하는 45절 말씀이 있다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49절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아주 정확한 고백을 하고 있다
그 유명한 베드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것은 공생애 중간이다
그 이전에 먼저 나다나엘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입니다
이런 고백을 예수님 만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육신의 자녀들도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그 아버지를 알아주면서 바른 고백을 하면
아버지는 행복한 것이다
그 아버지가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자녀들을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내 아버지가 어떠한 분인가
자녀들이 올바르게 신앙고백하면 아버지는 위로가 되고
힘이 나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것을 신앙으로 고백하면서
그렇게 입으로 고백하며 시인할 때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고백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저 우리가 주님 앞에 ‘내가 주님을 사랑 합니다’
이런 고백 하나 하나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주님은 듣기 원하시고 그 고백을 받기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매일 올바른 신앙고백을 드려야 되는데
나다나엘은 주님을 만나는 그 자리에서부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분이 만왕의 왕이라고 분명하게 신앙고백을
하면서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네 번째
요한복음 1장 51절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우리가 구약시대 벧엘에서 야곱의 사닥다리가
생각이 난다
벧엘에서 잤는데 꿈속에 사닥다리가 보이고
하나님에까지 이르는 사닥다리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야곱은 꿈속에서 보았다
예수님의 인자 위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물론 세례 받을 때도 하늘로부터 성령이 내리고 비둘기가
내려오고 예수님이 구름타시고 부활하고 하늘에 올라가시는
것 전부 천사들을 통해서 부활하고 승천하시고
재림하여 오실 때도 천사와 함께 오시고 이런 모든 주님의
놀라운 인류역사에 되어 질 모든 것을 나다나엘이 볼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제자가 되면 나다나엘처럼
신령한 체험을 사모하고 그것을 받아야한다
물론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좋지만 보고라도 믿어야 된다
체험을 하게 되면 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 이런 신령한 체험들을 사모하면서 우리에게는
깊은 체험이 믿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된다
다섯 번째
나다나엘의 순교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전승에 의하면 나다나엘은 아르메니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맨 나중에는 인도에 가서 순교를 했다
그러나 순교할 때 보통 순교한 것이 아니고
온 몸의 가죽을 다 벗겨내고 순교하였다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성 시스티나성당에 가면 미켈란젤로가 몇 년에 걸쳐서
최후의 심판이라고 하는 대작을 그려 놓았다
최후의 심판이라고 하는 그 그림 속에
나다나엘이 거기에 등장 한다
순교할 때 전승처럼 껍질이 벗겨지는 그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
몸의 껍질이 다 벗고서 몸에는 전부 보이게 하고
자기에 벗겨진 가죽을 손에 들고 그런 순교의 모습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켈란젤로가 나다나엘의 얼굴대신에
그 그림 속에 자기의 얼굴을 그려 놓았다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왜 나다나엘의 얼굴 속에 자기의 얼굴을 그려 놓았겠는가?
자기도 나다나엘처럼 위대한 순교자가 되고
살가죽이 벗겨지는 순교를 당할지라도
그 믿음을 본받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는 세상이 흉흉하고 빛이 없어지고 사랑도 식어져가는
세상을 살아간다
누군가 좀 본받았으면 좋겠고
누군가를 본받는 것이 좋은 신앙의 방법이다
누군가의 믿음을 본받아서 그 본을 쫓아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서에는 예수님이 모든 고난의 발자취를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주님과 같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는 골고다로 올라가야 하고
나의 겟세마네를 지나야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든 삶이 나의 삶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 일시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니까 우리의 형편에
따라서 그것을 할부식으로, 월부식으로 나누어서
조금씩 조금씩 감당하는 것이고
결국은 십자가의 그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되고
그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그것을 따라갔던 사도 바울이나 열두사도나
이런 믿음의 선진들의 발걸음을 하나씩 하나씩 보면서
따라가는 것이 어린아이 신앙인 것이다
마치 눈 속에 어른들의 발자취를 쫓아서 아이들이 눈길을
헤쳐 나가는 거와 똑같은 원리이다
나다나엘을 묵상하면서 나다나엘의 여러 가지 본받아야
할 것을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지도자가 세상에 없고 찾기가 힘든 세상인데
나다나엘처럼 다섯 가지:
자기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간사한 사람이 아니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처럼
정직한 그런 신앙을 본받아야 되고
모든 약속의 말씀 언약을 믿고 그것을 그대로 이루기를
기다리며 사모하는 신앙
그래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자기의 기업을 누리고
마음껏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그 자리를 사모하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주님을 기다리며 묵상했던
그것을 예수님이 알고 있는
그런 언약을 사모하며 이루어지길 사모하는
초대교회 메시아의 주님이 오실 때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러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 채고 주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있다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이다
언약의 말씀을 다 이루어져가고 있고 주님 오실 때가
매우 가까운 것을 우리가 눈치 채고 언약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온 세상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류역사는 전부 성경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으니 우리가 기다리면서 사모하는 사람
그리고 올바른 신앙의 고백
부족하다면 신령한 체험 인자가 하늘에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런 신령한 체험까지는 가지 못해도
그래도 뭔가 주님을 믿을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신령한 체험 그것을 우리가 많이 사모하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순교의 제물이 되는 그런 신앙
마지막 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신앙이고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이것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신앙이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때가 되었구나!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때가 되었다
라는 것을 많이 깨달으며 가는 세대가 되었다
많은 사람 중에 나다나엘의 신앙 다섯 가지 본받으면서
우리 주님 잘 따라 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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