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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혼의 글/사고의 유연성

어거스틴의 시간관

by Andrew Y Lee 2019. 1. 5.

시간(時間) 〔〕 Time 〕 Zeit 〕 temps

 

시간이 무엇인가에는 아직도 공통된 대답이 주어지지 않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어거스틴은 시간을 논하면서 아무도 나에게 물어보지 않을 때는 그것을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누구에게 설명하려  때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의 《참회록에서 술회(述懷)하였다. 

 

칸트I. Kant) 철학에서 명백하게 보여  것처럼 

인간의 모든 지식은 시간을 정제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시간이 전제된 지식으로 정의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 원시적이요 자연적인 시간관은 윤회설(輪回說)이다. 

해가 졌다가 다시 뜨고 사시 계절이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삼라만상(森羅萬象) 생성병화生成變化 윤회하는 것이며, 

 변화와 복귀(復歸) 시간의 본질(本質) 보는 것이다. 

 

시계, 달력, 그리고 동양 제국(諸國)에서 

  있는 환갑還甲, 甲子 돌아온다는 잔치 등에서 이런 시간관의 자취를   있다. 

 

윤회적 시간관은 물론, 진정한 의미로서의 역사를 용납할  없다. 

하늘 아래  것은 없고, 따라서 발전이란 것도 있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관은 원시 종교에서만 아니라 희랍 철학스토아 철학까지의에서도   있어며 

심지어 니이체Friedrich W. Nietz-sche, 1844-1900. 독일 철학자 철학까지그 흔적이 남아 있다

  

시간의 변화무상(無常),  걸은  나아가서는 허무한 관련하여 생각 되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험인데 윤회적 시간관은  변화 무상 가운데서라도 

다시 어떤 영원한 요소를 발견해 보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변하긴 변하되 변치 않는 법칙에 의하여 변하여, 

궁극적으로 모든 변화는 원상(原狀)으로 복귀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Platon) 사간을 () 관련시켰으며 

무질서한 물질 세계에 천체들의 규칙적인 운동에서   있는  같은 질서를 제공하는 

우주이성宇宙理性 모형(模型)이라고 간주하였다. 

 시간은 생성변화의 그림자 세계에 역사하는 이성혹은 관련 표현인 것이다

 

아라스토텔레스Aristoteles) 시간을 자연의 존재 형태로 보고 

먼저 나중으로 표현될  있는 운동의 ()라고 정의 하였다. 

그도 천체들의 기준으로 삼았고, 규칙적인 운동에 짐승이나 사람에게서   있는 

 규칙적인 운동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함으로 플라톤과 비슷한 시간관을 암시하였다. 

 

규칙적인 운동보다 한층  높은 것은 운동을 가능하게 하지만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는 ()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윤회적 시간만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시간과, 특히 서양 사상의 시간관은 희랍의 영향보다는 

오히려 유대교  기독교의 영향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히브리의 시간관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관과 똑같지 않은 것은 

히브리어의 시제(時制) 보아서   있다. 

 

 과거, 현재, 미래보다는 어떤 상태로 완료 되었는가 미완성인가가 

 중요한 것으로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은  우주의 창조와 종말을 말하고 있어 

희랍  원시 종교의 윤회적 시간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직선적 시간관을 가르치고 있음은 부인할  없다. 

 

시간은  우주와 더불어 시작되고  우주의 종말과 더불어 끝난다고 것이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관이고, 

따라서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흘러간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도 시간과 변화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다른 종교에서   있듯이 영원 불변의 상층 세계절대 정신, 하늘 나라, 관념의 세계  비하여 변하는 시간의 세계는 열등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보려는 유혹이 개재되어 있고 사실상 많은 기독교 신학이  유혹에 빠졌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시간  자체가 열등한 것이며 죄와 관계 있는 것으로는 가르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완성을 위한 과정이  수도 있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역사는  시간관에서만   의의를 가질  있다

 

성경적으로 시간에 대하여 생각한 신학자듣 가운데 처음으로 어거스틴A. Augustinus,354-430)이다 

그는 그의 참회록에서 시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처음과 마지막이 있음을 말하였고 

영원은 계속되는 현재,  시간을 초월하는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 

과거와 미래가 없었  우리는 시간을 말할  없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특히 시간을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하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해와   천체에 의하여 우리가 시간을 측량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에 기억하고memoria), 현재를 현재에 의식하고Contuitus), 

그리고 미래를 현재에 기대할  있는expectatio) 우리의 마음anima=영혼

비로서 과거, 현재, 미래를   있다 하였다. 

 

인간 영혼의 이런 특성을 그는 영혼의 확정distentioanimi)이라고 불렀다 

 영혼 지금의 순간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스스로를 확장시켜 과거와 미래를 자신 속에 감쌀  있다는 뜻이다.  영혼의 확장 어거스틴은 만물의 하나님에게 향한 갈망intentio)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설명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현재라고 표현될  있는 영원의  흔적signum, vesti-gum)으로도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 함께 시간적 제한성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 향하는 세계적 시간의 제한성에서 해방되려면 하나의  혹은 진리 필요하며 

 빛을 갈망하는 것이  영혼의 지향성(志向性)이라고 하였다

 

어거스틴이 시간을 영혼의 지향성inten-tion)으로 설명한 것은 철학적으로 이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후대에 철학에  영향을 끼쳐다. 먼저 어거스틴은 시간을 인간의 영혼과 관계시킴으로 신간의 본체성本體性 부인하였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는 시간을 하나의 독자적인 존재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고, 

Newton) 같은 물리학자도 절대 시간을 말하고 있다. 

칸트Kant) 절대 시간을 부인하고 단순히 인간 지각(知覺)  형식이라고 주장한 것은 어거스틴의 영향이 개재된 것이라 풀이할  있다. 

 

특히 최근 현상학의 시조인 훗세르Edmund Husserl, 1859-1938) 이이덱거Martin Heidegger) 시간관은 본인들이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어거스틴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칸트, 훗세르, 하이덱거는 모두 인간의 주체를 시간을 초월적(超越的) 주체로 보고 시간을 주체의 창조적 능력에 구속시키는  반하여, 어거스틴은 영혼의 하나님에 대한 지향성(志向性) 시간을 관계시킴으로 하나님 중심의 시간관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사상에도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측량은 영혼육체가 아닌) 만의 능력이라고  것이라든가, 

시간계는 영원의 세계에 비하여 열등한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시간관에 암시되어 있다는  등에서 희 철학의 영향을 살필  있다

 

성경의 시간관을 연구한 쿨만Oscar Cullmann) 그의 저서그리스도와 시간에서 성경은 결코 시간과 영원은 시간의 무한한 연장으로 취급한다고 강조하며 시간과 영원을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보는 태도는 희랍 철학의 영향이라 강조하여 간접적으로 어거스틴의 시간관을 비평하였다. 

 

성경은 실로 시간  자체에 대하여 추상적이요 사색적인 정의를 주지 않고 있다. 

성경의 관심은 어떤 시간의 내용,  충만한 시간에 쏠려 있다. 

시간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시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시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주로 철학과 물리학에서 취급되고 있다, 

물리학에서는 철학이 점점 주관적 시간관을 채택하는  아랑곳 없이 객관적인 시간을 여전히 전제하고 있다. 아인슈타인A. Einstein) 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에서  전까지 인정되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과의 상관 관계가 주장되고 최근에 실험으로 증명되기까지 했지만 시간의 객관성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형제 교회」. 그러나 시간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운장산 산기슭기 독서실 자료에서  2013..11.   하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