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눅 22:31-34, 제목 : 온 천하를 꾀는 자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족, 친구, 직장에서의 동료들이 그런 사람들에 속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보다도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는 바로 오늘 설교의 제목이기도 한 ‘온 천하를 꾀는 자’, 곧 옛 뱀이라고도 하는 마귀입니다.
이들의 목표는 사회, 문화의 모든 것들을 수단삼아 믿는 자들을 꾀어 넘어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과연 어떤 때 어떻게 역사하는 것일까요?
1. 서로 다툴 때 마귀는 역사합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났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안에서는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더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2:24-27)
우리는 이 천국 원리를 깨달아 다툼 속에 역사하는 마귀의 계략에 대응하여야 합니다.
사람들 간의 다툼으로 그 관계가 소원해졌을 때 마귀는 반드시 그 틈을 파고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먼저 화목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마 5:23-25)
어떤 교회는 피아노를 성전의 왼편에 두느냐, 오른편에 두느냐하는 문제로 시작된 분쟁이 결국 분열을 낳고 말았습니다.
다툼을 틈타 시작되는 마귀의 역사는 이토록 강력한 것입니다. 이런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형제를 비판치 말고,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욕심이 있을 때 마귀는 역사합니다.
제자들은 앞서 말한 다툼 속에서 서로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기를 원하는 욕망을 표현했습니다. 바로 이런 욕심 가운데 마귀는 역사하며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그것의 결과입니다.
3. 교만 때문에 마귀는 역사합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옥에서도, 죽는 자리에서도 따를 것임을 호언장담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는 그 자신의 연약함을 보지 못하고 마음속에 있었던 교만으로 인해 결국 말로 실수를 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베드로처럼 교만하여 늘 실수가 잦지만, 그러므로 또한 베드로처럼 참회하여 그 길을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공중 권세를 잡은 마귀들에게 위협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다툼 속에서 보이지 않게 역사하는 그들 앞에 우리는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의 다툼 앞에서 서로 낮은 자가 되기를 충고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셔서 마귀 앞에 화목이라는 방어벽을 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