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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

직무유기

by Andrew Y Lee 2017. 4. 10.

본문 : 벧전 2:1-4, 제목 : 직무유기

 

 


교회에는 영적인 지도자인 목회자와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있고, 또 이를 듣고 따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중 목회자와 설교자들은 구약적인 표현으로는 선지자라고도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는 성도들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성도들의 저항심만을 키운다면, 그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직무유기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설교가 본문 내용에서 지나치게 벗어날 때 성도들은 저항합니다.


현대 성도들 중에는 성경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성경을 읽거나 방송에서 설교를 접하는 등, 개인적으로 말씀을 접할 기회가 과거보다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도들 앞에서 설교자가 설교 중에 성경 내용을 틀리게 말하거나, 본문 내용을 지나치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 성도들 마음속에는 ‘저것은 아닌데…’ 라는 생각과 함께 저항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덧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설교자의 수준과 인격 자체에 대한 저항심까지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2. 설교자가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설교를 할 때 성도들은 저항합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 권면하고 교훈하는 내용이 그 설교자 자신은 전혀 행치 않는 것에 해당한다면 성도들은 이를 마음속에서 저항하게 됩니다.

 

 ‘기도하라’ 외치는 설교자가 기도 하지 않고, ‘전도하라’ 외치면서 실상 그 자신은 전도 한 번 안 한다면 성도들은 그 말씀을 따를 마음을 갖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하기 전에 먼저 모범을 보이고 외쳐야만 순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3. 눈높이 설교가 안 될 때 성도들은 저항합니다.


전반적으로 성도들의 신학적 수준은 미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설교자가 자신의 신학과 지식수준에서 설교를 하면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식의 설교를 한다면 성도들은 그 설교를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이는 결국 저항심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를 듣는 청중을 먼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4. 설교 적용이 객관성이 부족하거나 비논리적일 때 저항을 합니다.


설교의 생명은 적용입니다. 그런데 설교의 적용이나 예화가 객관성이 없는 지나친 비약이 있고 비논리적이라면 성도들은 이에 대해 저항하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설교는 항상 논리적이어야 하고 객관적인 근거가 함께 게시되어야 합니다. 없는 이야기를 만들거나 현실성이 없는 예화를 사용하는 것은 설교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성도들은 결국 설교자를 따를 수 없게 됩니다.

설교가 은혜가 된다는 것은 성도들이 깨닫고 이해가 되었다는 말이고 더 나아가 그 설교에 감동되어 결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설교자가 따라야할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사모하는 마음을 준비해야할 것과 믿음으로 받을 준비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지키며 서로가 직무유기하지 않고 은혜에 이르는 복된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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