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회의 필요성 (느8:1-12)
1. '사경회'의 정의
‘사경회’란 함께 모여 일정기간동안 성경을 배우는 것,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 성도의 모임을 말합니다.
우리나라가 120년의 짧은 기독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2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게 된 것은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가 본인의 집에서 7명의 성도에게 성경공부를 시킨 것을 시작으로, 1910년에는 연평균 64,000명, 1920년에는 129만 2천명이 성경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구약적 사경회의 모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학사 에스라가 율법책을 찾아 선포하니 알아들을만한 회중이 모두 모여(2절), 귀를 귀울여(3절) 은혜를 경험하는 모습입니다.
개신교 예배의 절반은 말씀선포입니다. 오늘날 힐링치유집회, 영성집회라는 용어는 많지만 사경회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한국의 초대교회가 사경회로 부흥했듯이, 이 시대도 순수한 성경연구의 사경회 운동이 필요합니다.
2. 사경회의 필요성
사경회가 필요한 이유는 영적 허기, 영혼의 기갈을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양식입니다. 주님오실 때가 되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에 허덕이게 됩니다(암8:11). 정작 홍수가 나면 물을 넘치나 먹을 물이 없듯이, 설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참되고 순수한 복음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을 두려고 애씁니다(딤후3:1-5).
어느 목사님이 한국교회에 주신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배포했는데, ‘순수한 복음이 아닌 정욕적, 기복적인 설교가 판을 치는 시대이며, 교회가 부흥되었지만 바른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회개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가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에스라를 통해 말씀이 선포되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함께 기뻐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순수하고 참된 것을 좇아가는 사경회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3. 우리의 자세
1)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롬12:2).
본문 1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포로생활을 했는지, 왜 율법책을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며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에베소교회처럼 첫사랑을 회복하길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2)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급함,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모든 백성이 일제히 모여(1절), 다 같이 하나님 말씀 앞에 아멘으로 화답하고(6절), 모든 백성이 울었던 것입니다(9절).
말씀보다 세상 것을 짝하기 좋아하면 어찌 은혜를 입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진리요, 하나님 말씀으로만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번 심령부흥대사경회는 53차입니다. 1년에 2차례씩 열린 것을 계산해보면 27년째 진행된 집회입니다. 일주일 60시간 동안 말씀을 샅샅이 조사하는 이러한 집회는 초대교회의 놀라운 기초를 세웠듯이 매우 귀중한 일입니다.
수문 앞 광장 에스라의 말씀 선포를 통한 것과 같은 역사가 나타나는 귀한 사경회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