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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성의 신비가/무명의 사부

로마서 7:17

by Andrew Y Lee 2012. 1. 26.

 

17절 :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비로소 죄를 깨달은 거예요. 우리 영혼 속에 죄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계속 실패하면서 발견한 것이지요. 실패했다고 해서 범죄 했다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계명대로 살려고 하는데 마음속에 자꾸 악심이 나타나는 거예요. 기회만 되면 자꾸 나타나는 거예요. 안 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데 마음에 죄가 자꾸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속에 죄가 거하는구나.' 알게 된 것입니다. 뿌리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실패하면서 이 죄성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정도 되면 이분의 행실은 거의 정결케 되었을 때예요. 광야연단을 거의 마칠 때쯤이지요.

 

여기서는 분명하게 죄와 우리의 선한 의지를 구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라고 했으니까요. 율법이나 계명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의 선한 의지를 여기서 '내가'라고 했단 말이지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드디어 발견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괴로움 속에서 결국 원죄를 발견했어요. '내 영혼 속에, 우리의 몸속에 바로 죄가 거하고 있구나.' 죄가 거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죄성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려고 한다고 해서 안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게 다 속에 능력이 거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구나.' 자기 속에 있는 죄성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 죄성이 강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지요?

 

네, 사실 원죄는 영과 육체 가운데 뿌리 박혀 있는 것인데, 바울 사도께서는 지금 마음만 보면서, 마음 상태만 느끼면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니까요. '마음속 깊이 이상한게 들어 있구나.' 그것이 곧 우리의 선한 의지와 구분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이것을 잘못 적용하면 "죄지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다. 그것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이니까 욕을 하려면 내 속에 있는 죄한테 해라." 이런 식으로 자기 정당화에 빠지기 쉬워요.

 

▷ 자꾸만 죄를 강조하신 것은 해결책이 있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그렇지요. 그것을 계속 의식하면서 기록한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대하여 알게 하시려고요.

 

▷ 선한 의지와 관계없이 죄가 속에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잘못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되나요?

 

그것에게 순간순간 짓밟히고 같이 어울리고 그랬으니까 문제지요.

 

▷ 로마서는 참 대단해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원죄와 자범죄, 그 해결까지 몽땅 다루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로마서 7,8장은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귀한 말씀이다." 로마서를 연구하는 분들은 누구나 다 여기에 대해서 극찬을 하였지요.

 

▷ 이걸 어떻게 쓰실 수 있지요?

 

확실하게 경험을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경험을 많이 한 분들이 라도 이 진리 깨닫는 데는 각양각색이더군요. 그래서 기독교의 사상들이 혼잡하게 되어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심지어는 칼빈 선생님조차도 이것이 약간 불투명해요. 이 말씀을 해석할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어야 하는데 그게 좀 시원하지 않아요. 약간 두루 뭉실한 상태에요.

 

▷ 웨슬리 선생님은 어떤가요?

 

웨슬리 선생님도 이 점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더군요. 그러나 분명히 경험자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 빌립보서 2장 12절에 "항상 복종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시고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셨거든요. 이것은 로마서 7,8장을 압축시켜서 표현하긴 건가요?

 

네, 그렇지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요. 점진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최종목표는 몸의 구속을 받을 때까지입니다.

 

▷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니까 심판대가 있는 중간 영역에서도 우리가 이 소원 때문에 결국 정결케 하시는군요. 그게 중요한 것이지요?

 

그렇지요. 소원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소원이 중요한 것입니다.

 

▷ 조금 전에 로마서 7장을 극찬한 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누구십니까? 내촌감삼입니다. 그분은 아주 시원스러운 면이 있어요. 『구안록』이라는 책에도 두 번째 연단과정과 그 다음에 오는 십자가 언덕에서 체험한 것을 어느 정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긴자의 경지에 들어간 체험까지 기록된 책은 아닙니다.

 

▷ 전집에 보니까 로마서 7,8장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어요.

그게 시원스럽게 강조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잘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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