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 성령충만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스승 : 성령충만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요한 웨슬리 신학에서는 성결은총 받은 성도들을 성령충만이라고 하더군요. 『신약의 성결』이라는 책을 쓰신 토머스 쿡 있지요? 그분도 역시 성령충만을 성결은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광야를 통과하는 성도들의 성령충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바울 사도의 경우를 보면 처음 출애굽하는 경험을 할 때 성령으로 충만해졌다고 하였습니다. (행9:17).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징계로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3일 후 안수기도를 받는 도중에 눈이 떠지게 되었잖아요. 그대 큰 기쁨과 함께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대개 성령충만은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다든지, 만족함으로 충만하다든지, 감격으로 넘친다든지, 감사로 충만하다든지, 행복감이 넘친다든지, 감동을 풍성히 받았다든지 그러한 경험들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런 때는 더 열심히 살고 싶고, 더 철저한 절제생활을 하고 싶고, 주님께 무엇이든지 다 바치고 싶고,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문둥병자라도 끌어안고 싶고요, 여러 가지 삶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아주 은혜롭고 덕이 넘치는 순간순간이 있어요. 그런 것을 대부분 성령충만이라고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이 성령충만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체험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바울 사도와 같이 출애굽을 할 때나 여러 가지 중요한 은혜체험을 할 때도 성령체험이라고 하지만, 자아가 깨어지는 과정이 가나안 경험 이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잖아요. 그 과정을 통서부터 나왔던 60만 명, 우리의 옛사람 즉 옛 성질을 상징하는 60만이 다 죽잖아요.
바로 그 60만이 죽어야 되는 그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불평하고 대적하며 때로는 돌멩이를 던질 정도로 극심하게 패역을 하잖아요. 이렇게 죄를 한참 범하노라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성막 꼭대기에 구름기둥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죄지은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고 모두 다 회개시키거나 징벌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요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체의 소욕이랄까, 여러 가지를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출발하게 하세요. 그때가 바로 성령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여러 가지 육체의 소욕이 나타나면 하나님에 의해서 깨어지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많이 겪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회개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그리스도께서 없어진 줄 알았는데, 즉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사람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줄 알았는데 회개하고 나니까 마음속에 은혜와 성령이 충만해지고 하나님이 그렇게 소중하고 고마울 수가 없는 그런 상태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욕적인 구덩이에 깊이 빠졌다가 나온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때 바로 숨바꼭질하던 예수님께서 숨으셨다가 자신을 다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대표적인 성령충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평상시에도 다양하게 은혜 충만한 상태가 있지만 숨바꼭질 경험을 할 때 가장 대표적이라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성도들이 육적 행실을 회개할 때 강하게 하나님께서 은총을 나타내시며 자아를 하나하나 깨뜨려 나가십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남의 탓인 줄 알았는데, 다른 환경 때문인 줄 알았는데, 잘못된 일들이다 그것 때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사랑이 부족하고, 겸손이 부족하고, 인내가 부족하고, 온유가 부족하고, 충성이 부족해서 그런 일이 생겼구나." 이렇게 깨닫고 "내 탓입니다. 내가 부족합니다, 부끄럽습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마음을 비우는 순간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해지는데 이것이 성령충만을 가장 풍성하게 받는 경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전부라고 보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성결은총을 받은 성도들도 성령이 충만할 때가 있고 성령이 충만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긴자의 경지에 들어가면 언제나 성령이 충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마음에 충만해지는 것이거든요. 영속에 생명이 내주합일 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성령충만은 마음속에 채워지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긴자의 경지에 들어가서도 성령충만은 항상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하거나 우울하고 찹찹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영속에 내주되어 있고, 몸 전체에서 신비로운 감각으로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생명수의 폭주가 언제든지 감각적으로 또 청각을 통해서 확실히 나타나니까 마음에 성령 충만이 언제나 계속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은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이고, 성령의 내주합일은 영속에 나타나는 것이니까 확실하게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속에는 하나님의 생명 즉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합일 된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마음속에는 얼마든지 충만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또 세상적인 것을 즐기거나 육적인 것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슬그머니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지요.
제자 : 성결은총을 받은 분들의 성령충만과 죄성이 뿌리박힌 저희들의 성령충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까요?
스승 :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은 성령충만도 더 많을 것이고, 또 영적으로 어린 사람은 정결해진 내용이 작은 그릇이니까 성령충만도 작은 분량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칠 정도로 수학 계산하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제자 :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스승 :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늘 주님과 동행하려고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수도자들이라면 수도적인 양심을 따라서 꿋꿋이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이런 과정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고 또 충만케 하시는 것이니까요. 늘 깨어서 살려고 하는 노력이 제일 중요한 조건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제자 : 선생님께서 전에는 성령충만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스승 : 어떻게 증거했는데요?
제자 : 광야성도들에게는 쓸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신학연구원 1학년 때 어느 목사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스승 : 전혀 아니에요, 처음부터 이렇게 증거했어요. 토머스 쿡이라든가 웨슬리신학에서는 성결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은 성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고 증거해 왔어요.
제자 : 광야를 통과하는 성도들도 언제나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지요?
스승 : 네 출애굽할 때부터 언제나 받을 수 있어요. 로마서8장 경험에 들어가서 죄의 법에서 해방된 성도들뿐만 아니라, 로마서 7장과 같은 내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마음속에 가끔가끔 그런 충만한 체험을 주심으로써 우리가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도움이 되게 하십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우리가 꾸준히 기도생활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체험뿐인가요? 성령체험이라든가, 환상이나 꿈이라든가, 병 고치는 능력이라든가, 권능을 행하는 은사라든가, 방언 통역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성령충만과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그런 은혜체험을 사모하면서 언제든지 빛 가운데서 성화되고자 하는 그 신앙의 목표를 잃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 우리 밝은빛 용사들에게는 필수적이지요.
제자 : 성령충만한 광야성도와 성령충만하지 않은 이긴자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스승 : 광야를 통과하는 성도라도 성령이 충만할 때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기쁨과 감사, 평안과 감격, 찬양과 만족과 행복감이 넘칩니다. 여러 가지 환난고통이 있을지라도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성도라 할지라도 마음이 좀 착잡하고 우울한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성령충만은 우리에게 항상 필수적으로 기쁨과 감사, 만족, 즐거움, 행복감, 감격을 줍니다. 그런 기분이랄까 마음에 언제나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회개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눈물을 흘리며 죄 때문에 슬퍼하고 있지만, 성령 충만한 경우가 얼마든지 잇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려고 하던 일이 안 돼서 슬퍼하는 것은 해당이 안 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겪는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탄식하고 우울증이 생기고 부정적인 마음에 사로잡혀 있고, 그럼 때는 성령 충만한 상태가 아니라고 봐야 되겠지요, 또한 예수님 없이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성령 충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을 의지하는 마음, 가슴에 분명히 예수님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또 확실한 믿음 안에서 기쁨과 감격이 넘치게 되고, 감사와 찬송이 넘치게 되고, 행복감이 넘치게 되면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벗어나 우울증이나 고독감, 착잡한 심정,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 때 우리는 재빨리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자기 마음을 고백하고 은혜를 충만케 해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때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사람한테도 버림받은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며 답답하기도 하고요. 그런 경우가 있지요.
그런데 가나안 때에 들어간 성도들, 즉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된 성도들은 비록 마음에 약간 그런 것이 있을지라도 언제든지 감각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큰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제자 : 광야를 통과하고 있는 성도들이 성령충만하지 않은 상태와 성결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성령충만하지 않은 상태는 똑같은 것으로 볼 수 없지요?
스승 : 네, 똑같은 상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주합일된 하나님의 생명은 영과 몸 안에서 결코 떠나는 일이 없으니까요.
제자 : 마음에 충만 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우리 심령도표에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요?
스승 : 그냥 충만 이라고 이야기 하면 되지요. 도표까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돼요.
제자 : 위에 십자가에서 화살이 내려오는 것은요?
스승 : 그 화살표는 성령충만과는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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