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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신비가/무명의 사부

죄의 법에 대하여 깨달은 사도 바울

by Andrew Y Lee 2011. 9. 22.

 

죄의 법에 대하여 깨달은 사도 바울

 

 

사도 바울께서 18절에 “선을 행하는 능력은 없노라.”고 하신 말씀은 공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탐심을 없애버릴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고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신 것이지요. 이 말씀에서 ‘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증거했던 경험적 진리와 전부 연관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법’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마음에 나타나는 죄의 법을 가르쳐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짜증나고 화가 날 일이 생겼을 때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거나 음란한 영화나 책, 사람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 음욕이 나타나는 것, 밉살스러운 사람이 나타나서 얄미운 짓을 할 때 마음속에 미움이 느껴지는 것 등, 이러한 악심이 나타나지 않기를 언제나 소원하는 데도 기회만 주어지면 마음속에 나타나는 악심이 바로 ‘죄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악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칙과 같이 자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법칙’이라는 말은 항상 똑같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원리를 설명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뉴우톤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공기보다 더 무거운 물체를 공중에서 놓게 되면 반드시 아래로 떨어진다는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죄를 범하기 쉬운 환경이 생길 때마다 법칙과 같이 마음속에 죄 즉 악심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법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죄성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7장에 기록한 죄라는 말을 해석할 때, 그것이 자범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마음속에 나타난 악심을 가리켜 말하는지, 죄성을 가리켜 말하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죄의 법은 바로 죄성의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써, 죄성의 능력의 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죄가 능력이 아니라면, 악심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순간적으로라도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고 항상 노력을 했는데도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꼭 나타나기 때문에 ‘죄의 법’ 즉 죄의 법칙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죄의 법칙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교만의 법칙, 분노의 법칙, 미움의 법칙, 짜증의 법칙, 음란의 법칙 등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죄성 중에서도 강한 죄성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요. 어떤 사람이 화는 쉽게 내지 않는데 질투성이 강하다면,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잘되거나 더 예쁘거나 목소리가 아름답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교만성이 강한 사람은 자기와 경쟁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들을 때 기분이 나빠지거나 헐뜯는 말을 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죄의 법칙이 나타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죄성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성결은총을 받기 전에는 이러한 죄의 법칙을 자신의 마음 가운데서 언제나 발견하면서 고민해 왔던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2-23절을 보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도 즉 계명을 따르고자 하는데, 순간순간 죄의 법칙이 나타나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을 방해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마음의 법’은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말하는데, 그 의지가 순간순간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히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