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_daum->“밝은빛을 생활화한 이용도 목사님”
현대만큼 종교가 물질적이고도 세속적인 것에 갇혀 무력해진 시대는 일찌기 없었다. 교회가 외적으로 비대해지고 팽창하는 속에는 카타콤에서 가졌던 그 진실하고도 뜨거운 신앙이 없다. 박해와 순교와 수치뿐이던 박해시대는 가짜 신앙인이 없었다. 신앙이 외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하면서 내면적이고 영적인 것은 힘은 힘을 잃어버리고 목소리로는 외쳐도 생활로 가르치는 이가 없으니 도처에서 눈 뽑히고 머리깍인 삼손들이 영적인 힘이 없는 말라빠진 소리를 외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속화되고 어두워질때면 기둥같은 일꾼들을 세우셔서 밝은빛을 비추어 교회를 새롭게 하셨다. 구원받은 성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앙으로 무장된 분들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 분들이고, 거칠고 사나운 환경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분들이다. 이들은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님의 밝은빛을 따라 살았던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분들이다.
인간은 모방성이 있고 특히 신앙은 모방을 통해 많은 것을 얻게 되므로 밝은빛을 따라산 사람들의 삶을 모방하면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된다. 순교자 전기를 읽고 순교자들이 나왔고 성인전을 읽으면서 성인들이 생기게 되었다. 쇳조각도 닦을수록 광채가 나듯 신앙생활도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을 본받으며 자기부정,절제,극기,사랑실천을 할때 놀라운 능력을 얻게 된다.
한국이 정치적으로,영적으로 위기의 국면을 맞았을때 하나님께서는 이용도 목사님을 세우셔서 빛을 비추어 주셨다. 이제 그 분의 삶을 통해 영적으로 새로운 결단을 하였으면 한다.
1. 이용도 목사님의 생애
1) 1901.4.6. 황해도에서 이덕흥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불신자이며 술주정뱅 이였고 어머니는 병약하였으므로 집안이 가난하였다. 1915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영 서원을 학비를 벌어가며 다녔다. 중학시절은 항상 배고픈 학생으로 공을 차고 놀기보다는 흙짐을 져야 했고 밥대신 냉수를 마셔야 했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열렬하게 가담했다. 그 결과 4번이나 투옥되어 3년이나 옥고를 치뤘다.
2) 1925년 형무소에서 나온 후 학교 당국에서 처치곤란의 학생으로 격리 추방시키느라고 협 성신학교에 보냈다. 마음에도 없는 신학교를 들어갔으니 강의실에서는 까다로운 질문만 했고 학생들과는 논쟁만 일삼는 말성꾼이 되었다. 그러나 하루이틀 거룩한 말씀과 신성한 공기를 마시다 보니 조금씩 변화되어갔다.
3) 1926년 겨울 방학에 폐병3기의 진단을 받고 휴양을 하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으나 때마 침 강동에서 부흥회 인도의 요청을 받고 말씀을 외치다 죽겠다는 결심으로 결사적으로 외 쳤는데 그것이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33세의 생애를 마치는 날까 지.....
2. 이용도 목사님의 신앙관
한국교회가 무서운 외적인 도전과 내적인 갈등속에서 허덕이어 침체되어 가는때에 새로운 영적 각성을 주고자 첫째, 회개하라. 둘째, 기도하라. 셋째, 사랑하라고 외치면서 그것 을 몸소 실천하였다.
1) 기도하는 이용도 목사님
1928년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목회를 시작할때 10일간의 금식기도를 한 날부터 기 도의 사람이 되어 새벽이나 밤중에나 산기슭에서나 교회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 하는 기도꾼이 되었다.
어느날 기도하는 중에 새까만 몸을 가진 아주 험악한 마귀가 나타나 가슴이 서늘하도록 흉칙한 형상으로 목사님 앞에 나타났다. 목사님은 필사적으로 마귀와 싸우느라 유리창을 깨 트리기도 하고 벽을 부수기도 하였다. 손에는 피가 흐르고 뼈는 어긋났는데 자세히 보니 성 전에는 그런 마귀가 가득하였다. 밤새도록 기진맥진 하도록 싸워 결국 쫓아내었다. 이런 마 귀와의 격전에서 승리한후 이목사님의 기도는 더욱 힘이 있어져서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 지는 겨울에도 바위위에 엎드려 기도하시고 세찬 바람에 숨이 헉헉거려도 밤새도록 일어날 줄 모르고 기도했다. 집회를 하기전에도 기도, 집회를 끝내고도 기도, 무슨일이든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쳤다.
“기도없이는 살 수도 없고, 죽을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잠잠할 수도 없으니 그저 기 도하라.” “가뭄이 오래면 바닥이 갈라지듯 기도의 가뭄이 오래면 마음밭은 갈라지고 터지 어 영은 아픔을 느낀다. 기도로 영이 윤택해지고 은혜의 비에 젖게 된다. 마귀는 지혜로와 서 기도 하나를 빼앗으면 모든 것을 빼앗는줄 알기에 기도를 뺏고자 한다.” “이루어 주시 고 안 주시고는 주님의 일이었고 나는 기도의 향을 피우는 내 일을 그치지 아니하련다.” “우리는 눈물도 말랐거니와 피는 더욱 말랐습니다. 무기력한 빈혈병자가 되어 힘없고, 담 력없고, 의분없고,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게 잡혔을때에 더불어 싸울만한 피가 없습 니다. 마귀가 우리를 유인하나 분히 피가 없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님의 피를 주시어 죄 와 더불어 싸워 이기게 하소서!” “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저의 자랑을 물리치소 서. 저라는 관념을 없애 주시고 저의 속에는 오직 주님만이 살아계시옵소서!” “나의 주의 공이 되게 하소서. 나의 눈도 버리고, 귀도 잘라버리고, 수족도 버리고 전체가 주님의 뜻대 로 구르기에 쉬운 공이 되게 하소서.”
2) 밝은빛을 생활화한 이용도 목사님
목사님은 아호를 ‘시무언’이라 하여 말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냥 살면서 주의 오심을 기다렸던 경건한 시므온을 본받고자 했다.
“주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만나는 그곳에 주와 하나되는 합일의 기쁨이 있는데 이곳에는 모든 노리개가 방해가 되나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자는 많으나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 는 자는 적구나! 주님 저로 하여금 육신의 평안과 안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주님께서 살으신 곤고한 생활과 몸소 받으신 고난을 저도 당하게 해 주옵소서!” “넥타이 바로 매어 졌나 자꾸 거울 보는 남자나, 콧잔등에 분이 지워졌나 거울 들고 다니는 여자의 마음에 예 수님은 거하시지 않는다.”
목사님의 설교는 사람의 깊은 심정을 콕콕 쏘아 찌르고 가르는 말씀이기에 죄를 짓고는 견디지 못하였고 흐린 양심은 가책을 받아 눈물을 흘리게 했다. 회개치 않으면 방금이라도 천벌을 받을듯 하여 십년전에 훔친 것도, 어렸을때에 참외를 훔친것도 주인에게 돌려주고 사과의 편지도 쓰게 했다. 사례비를 받으신 것은 집에 들어가시기 전에 구제비로 썼고 어린 거지아이를 따뜻한 밥과 옷을 마련해 주고야 떠난다. 이런 목사님이시니 곳곳에서 집회인도 의 요청이 들어왔고 가는 곳마다 사람이 터지게 모여들었다. 그러나 시기하는 무리의 세력 으로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고, 집회도중에 쫓겨나기도 했으나 이 모든 것에 감사를 했다. 남루한 옷차림이라 강사인 줄 못 알아보다가도 그 집회를 다 마치고 나면 은혜를 못잊어 230 리 길을 이틀이나 걸어서 다음 집회까지 따라가기도 한다.
결핵으로 지쳐 기진맥진하며 피를 토하다 못해 말문이 막혀 말이 안나와도 죽는 순간까 지 손과 발로써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다가 1933.10.2. 무기력한 이 세상에 영적인 굵은 획을 그어 놓으시고 조용히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이용도 목사님께서 보이신 삶을 본받아 주님께서 다시 오마 약속하신 날이 멀지 않은 때에 우리 모두 깨어 주님의 재림을 대망합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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