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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해하기/완전 - 성경의 중심

28. 들숨과 날숨

by Andrew Y Lee 2020. 12. 3.

완전의 길 영성시리즈

28. 들숨과 날숨

본문 : 사무엘상 3:8-10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샬롬, 반갑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호흡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호흡이 멈추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것을 숨이 멎었다. 숨이 끊겼다라고 하는 거지요

호흡은 허파라는 장기가 하는데, 아기가 엄마 뱃속에 들어 있을 때는 허파가 그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기가 스스로 뱃속에서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태반이 대신 해준답니다.

그러나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첫울음을 울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서 허파도 동시에

펴지면서 생명유지를 위한 호흡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흔히 영적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즉시 호흡을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가 영적인 아이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영적인 호흡인 기도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태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기도의 대상으로 하나님에게 나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속 영적인 호흡인 기도를 통해 영적인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까지 호흡을 계속해야 하는 것처럼,

계속 영적인 호흡인 기도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매우 다양한 상황을 만나면서 감정이 달라지고,

그 상황에 맞게 호흡을 달리 하는 것입니다.

 

큰 걱정이나 근심이 있을 때에는, 긴 한숨을 땅이 꺼지듯이 쉬지 않습니까?

무서운 공포영화를 보거나, 악몽을 꾸면 짧고 빠른 숨을 쉬게 되지요.

그것은 이러한 상항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작업인 셈이지요.

 

화장실에 가면 숨을 길게 들이쉬고 참아야 밀어내기(?)가 되어 집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콩닥거리며 숨이 가빠집니다.

 

그것처럼 영적인 호흡인 기도로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기도의 형태가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는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부르짖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조용히 기도하기도 하고, 묵상기도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화살기도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화살기도는 화살처럼 순간적으로 쏘아 올리는 기도지요,

성경에 나오는 바디매오가 소경인데 그 앞에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외친 것처럼,

급박한 상황에 화살을 쏘듯 순간적으로 외치는 기도가 화살기도입니다.

 

여러 가지의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기도의 형태를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러나 아무리 여러 가지 형태로 기도한다해도결국은 호흡하려면 호흡의 기본인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것처럼, 기도도 두 가지를 반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호흡인 기도도 결국 들숨, 즉 들이키는 숨과,

날숨, 즉 내뱉는 숨 결국은 이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말씀의 제목이지요.

 

그런데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날숨으로 끝날 때가 너무도 많은 것을 봅니다.

내안에 있는 것들만 다 쏟아내고 끝내 버리는 것입니다.

내안에 있는 슬픔, 괴로움, 죄의 고민,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날숨 쉬듯 다 뱉어

올려 보내고 들이키는 들숨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적의 방에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는 날숨이 필요합니다.

통성으로 합심하여 기도하니까 주로 부르짖어야 하고 조용한 기도는 어렵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따로 시간을 내어 두 가지를 다 활용해야 합니다.

 

들숨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들을 받는 것입니다.

들숨을 쉬어야 공기가 들어와 온전히 호흡이 되는 것인데, 그것이 부족합니다.

너무나 일방적인 기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기가 필요한 것만 다 올려드리고 도무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은

받으려 생각하지 않습니다.

 

숨을 쉴 때 들숨과 날숨을 반복해야 하는데,

내뱉는 날숨은 쉬지만 들숨은 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공기가 들어오는 들숨이 있어야 날숨도 있는 것 아닙니까?

 

들숨과 날숨의 호흡의 원리는 비단 기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의 원리가 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면서 정화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들숨, 날숨을 통해 호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는 밤낮의 주기를 가지면서 스스로 호흡하고 있습니다.

 

식사와 배설은 들숨과 날숨과도 같은 것입니다.

먹기만 하고 배설이 없어도 안 되고, 먹지 않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날숨을 통해 내안에 배설물을 다 내보내듯이,

내안에 있는 슬픔과, 걱정과, 고민꺼리들, 필요한 것을 쏟아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와 생명을, 들숨을 쉬듯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들숨을 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감람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것도, 세상의 소리를 듣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하늘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작업이었던 셈이지요.

 

어느 목사님이 전도사시절에 처음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 주일에는 성도들이 한명도 안 오는 것입니다.

그때 본문의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이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강단에서 내려와 성도들의 좌석에 앉아서 주님, 오늘은 제가 듣는 날입니다.

종이 듣겠사오니 말씀하여 주십시요했더랍니다. 그래서 큰 은혜를 받았답니다.

 

어린 사무엘이 부름 받았을 때는, 엘리 제사장이 타락한 때로 개혁이 필요한 때였고,

새로운 말씀들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셔서 말씀을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사무엘을 3번이나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들숨의 기도도 함께 해야 합니다.

내가 필요한 것만 잔뜩 날숨으로 뱉어 내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그렀습니까?

현재 우리의 당한 모든 환경이 왜 일어난 것인지 알아야 바로 대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참새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셨지요.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데, 우연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운데 나타난 일들인데,

왜 그런 일이 나타났는지, 들어서 알아야 해결책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십니다.

달라고만 할 것이 아니고, 해결책을 들어야 하고, 방법을 들어야 합니다.

 

대화하는데 일방적으로 내 할 말만 하고 끝내버리면 그게 무슨 대화입니까?

대화는 주거니 받거니 해야 대화가 되고 상대방의 생각을 들어야 아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너희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다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생각은 모르고 나의 생각대로만 밀어붙이면 되겠습니까?

대화를 통해 조율도 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 하겠지요?

그러므로 기도를 대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삼상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하셨는데, 왜 그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어린 시절부터 종이 듣겠습니다하고 들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알았기 때문에 그 뜻대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19장에 보면,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납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를 다 죽여 승리한 후, 이세벨의 협박에 로뎀나무 아래에서

천사를 통해 힘을 얻은 엘리야가 호렙산에 이릅니다.

 

그런데 호렙산에서 만난 하나님은 바람가운데 계시지 않고, 지진가운데 계시지 않고,

지진 후에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고,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십니다.

그 세미한 소리를 듣고 나니까 자기만 남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칠천 명을 남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생애의 사명을 알게 됩니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후계자로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미한 소리를 듣지 못했으면 어떻게 남은 생애의 사명을 감당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어느 얼음공장에서 사장님이 작업을 하다가 비싼 시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디에 놔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심부름 하는 아주 어린 소년이

내일 아침에 오실 때 까지 시계를 찾아놓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아침에 와 보니 시계를 찾아 놓은 것입니다. 어떻게 찾았을까요?

그 소년은 모두가 퇴근하고 공장의 기계가 다 멈추고, 아주 조용한 시간에 째깍째깍 시계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더니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지혜로운 소년이었던겁니다. 

들숨은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의 어머니는 무슨 말씀을 하던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 채우고 떠다 주어라 했을 때

하인들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더 좋은 포도주가 나타났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잔치집의 흥이 깨지는 것처럼,

내 인생의 무엇인가 바닥이 나고, 무엇인가가 떨어지면 흥이 깨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2004년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경상도에서 얼마간 목회를 하였는데,

아주 젊은 여자집사기 있었는데, 자주 교회 와서 기도를 합니다.

종종 밤새워 철야기도도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령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 모르는 것을 물으면 대답해 주시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종종 그 은사를 일문일답이라고 합니다.

저도 많은 계시와 환상을 주시는데, 그 여 집사님의 기도생활을 보면서

일문일답의 은사를 지금까지도 사모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은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모하십시오.

아마 여러분 가운데 그러한 은사를 가지고 기도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그리고 호흡은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을 청하며, 그분의 세미한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자꾸 말씀하시는데 들어야 합니다.

 

33:14,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적의 방에 모든 분들이 들숨과 날숨의 영적 호흡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영적생명이 충만하시고,

일문일답의 은사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여 놀라운 응답과 기적들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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