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완전의 길 영성시리즈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보이신 완전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본문 : 고전10:1-13
본문에 보면, 애굽에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셔서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6절과 11절에 제 성경에는 거울이라고 하였고, 다른 성경에는 본보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거울과 본보기는 다른 말로 모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만 있을 것 같은데, 아파트를 지으려면 먼저 모델하우스를 짓고 그 모델하우스를
모형으로 하여 똑같은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죄악세상을 떠나 하나님나라에 가는 길을 이스라엘을 통해 모형으로,
다른 말로 하면 샘플, 견본, 거울, 본으로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모형인데,
하나는 우리의 심령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모형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역사 전체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모형입니다.
이 모형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심령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모형임으로, 우리가 가는 완전의 길의
과정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류 역사 전체 구속의 모형으로 인류역사가 어떠한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인류역사 전체의 모형으로 우리는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 모형을 통하여 앞으로 교회시대가 끝나고 나타날 대 환난과 천년왕국,
새 하늘, 새 땅을 다 미리 보여주셨기에 계시록이 이 모형을 알면 열리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에 이르는 길이 곧, 우리가 가기를 원하는 완전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스라엘을 통해 보이신 모형을 잘 이해하면 완전의 길이 무엇인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간단하게 그 모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정하신
● 가나안 땅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모형입니다. 그리고
● 애굽 땅은 불신과 죄악세상의 모형입니다.
● 바로는 악령세계의 최고 통치자로서 타락한 루시퍼 천사장의 모형입니다.
요한계시록 12:9에서는 사단, 마귀, 용이라고도 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은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의 모형이고,
● 애굽 백성은 지옥에 들어갈 불신자들의 모형입니다.
●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사울왕, 다윗왕 등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인도하는 예수님 또는 성령님의 모형입니다.
● 출애굽은 성도가 성령님의 도우심과 보혈의 은총을 힘입어 구원받은 경험,
즉 신앙생활의 출발점에 대한 모형입니다.
●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장소로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
즉 연단을 받아 정결케 하는 과정에 대한 모형입니다. 그리고
● 바로 군대, 아말렉 군대, 아모리와 바산과 미디안 군대들은 광야의 길에서 성도들을
유혹하고 방해하고 대적하는 악령들의 모형입니다.
● 할례산은 심령(心靈)의 할례, 즉 성결은총을 받는 장소에 대한 모형입니다.
● 바로 군대의 추격은 성도들이 광야에서 받아야 되는 첫 번째 연단과정에 대한 모형이고,
● 아말렉 군대와의 싸움은 성도들이 광야에서 받아야 되는
두 번째 연단과정에 대한 모형입니다.
● 아모리, 바산, 미디안 군대들과의 싸움은 성도들이 광야에서 받아야 되는 세 번째
연단과정에 대한 모형입니다.
이렇게 세 차례의 싸움을 마치고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완전에 대한 입문이 되는 것이고,
이후 사사들과 사울, 다윗을 지나 솔로몬 때 예루살렘성을 만드는 것이 완전에 이르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애굽은 바로가 다스리는 나라인데, 그 바로는 원수 마귀를 말하는 것이고,
바로가 다스리는 애굽은 마귀가 다스리는 죄악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애굽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요?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야곱과 함께 70인이 애굽에 들어가서 400년 후에
큰 민족이 되어 진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형을 보이시려고 그들을 애굽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애굽 백성은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반드시 언제인가 애굽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려면
반드시 바로의 탄압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 당시에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이스라엘이 더 강성할까봐 다 죽였고,
지푸라기도 주지 않고 벽돌을 구워내고, 농사를 하며 혹독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애굽과 같은 죄악세상이 살기가 좋으면 누가 거기에서 나오려고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나라에 가고 완전의 길로 가려면 반드시 먼저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많은 분들이 병들고, 사업에, 가정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로의 탄압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이 죄악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그의 백성에게
모세를 보내시는 것처럼, 예수님 곧 성령님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신 것처럼,
애굽을 떠나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성령님,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려면 유월절을 지켰는데,
그것은 어린양의 피로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애굽을 떠나는 사람은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로 죄를 용서받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애굽을 떠났지만 거기는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광야40년을 지나야 하는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 광야는 연단과정과 훈련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40년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애굽에서 살던 60만 명이 다 죽고, 새로운 60만 명이
태어나서 가나안 들어갔는데, 애굽에서 살던 60만 명은 우리가 주님 만나기 전에
변화되지 못한 옛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60만 명은 광야 연단 과정을 통해 변화 받은 새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40년 광야 속에서 세 차례의 외세의 공격을 받았는데,
첫 번 째는 바로의 추격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말렉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세 번 째는 가나안 들어가기 직전 미디안에 있는 연합국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외세는 바로 악령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사단을 통해 여러 가지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자녀가 죽고, 짐승이 다 죽어 재산이 없어지고, 아내가 저주하며, 몸에는 악창이 나는
모든 시험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다만 생명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훈련이 바로 나의 옛사람이 죽어지고 새 사람이 나타나는 과정인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에 속한 원망, 불평, 의심, 미움, 악을 가지고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욥에게 하신 것처럼, 환경 배후에 악령을 통해 많은 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모든 환경은 애굽에서 살던 나의 옛사람인 60만 명을 죽이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옛사람이 죽어지는 만큼 더 완전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의 형상을 본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예수의 형상이 아닌,
옛사람을 죽이는 완전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아말렉과 싸우는 두 번째 연단을 마친 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짓게
하시고 율법을 주셔서 지키도록 피로 언약을 하셨습니다.
이는 옛사람인 60만 명을 죽이려고 본격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말씀의 기준을 세워 지키지 않는 옛사람의 자아를 합법적으로 죽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두 번째 싸움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요,
청년의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두 번째 연단 이후에야 비로서 우리의 옛사람인 60만 명이
죽어지며 본격적인 완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신부와 신랑이 영성결혼 전에 하는 영성 약혼과 같은 것입니다.
약혼도 안했는데,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약혼이 되어야 신랑이 집을 장만 하고 오는 동안에, 신부는 자신을 정결케 하며 신부단장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악령만 붙이시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싸움과 연단인
바로의 추격이 끝나면 홍해를 건너게 하시며 따라오는 악령을 그 홍해에 다 수장하여
환경이 바뀌어 신 광야에 이르러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축복과정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었기 때문에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주시는 것이지요.
그 이후는 영적성장을 사모하고 신부가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에게만 두 번째, 세 번째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사모함이 없으면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연단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싸움이 끝나면 거기에 걸 맞는 보상도 하시고
전쟁에 이긴 것처럼, 전리품도 취하게 하십니다.
대부분의 기적과 응답은 몇 가지의 때가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때입니다.
크로노스라는 일상적인 수평의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성도의 삶에 개입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애굽을 떠나게 하실 때 바로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주셨다가 애굽을 떠나면,
출애굽의 큰 기쁨과 함께, 떠나게 하시려고 주었던 어려움이 기적적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게 하고 먹을 것을 주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병으로 바로의 탄압을 받았다면
이 때 병이 낳는 기적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한 가지의 연단이 끝나면 그 때 축복하시면서 기적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바로가 추격해오는 것은 애굽을 떠난 성도들을 다시 붙들어 애굽으로
끌고 가려는 어려움인데, 이를 잘 극복하고 나면 따라오는 악령을 홍해에 수장하여
환경을 바꾸어 주시며 기적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때도 병이 낳기도 하고 어렵던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사람 편에서는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그 분량을 채우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기적을 베풀며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더 성장을 사모하여 청년의 신앙, 아비의 신앙으로
나가기를 원하며, 신부의 반열을 사모하면, 두 번째, 세 번째 싸움을 하게 하시는데
그 큰 싸움에 들어가기 전과, 끝나고 나오는 때에 큰 기적과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합니다.
먼저 은혜를 주시어 감당하게 하는 것이고, 감당하여 수고했음으로 보상하시는 것입니다.
한번만 영혼이 잘 되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정도에 따라 일생에 여러 번 반복적으로 체험하며 완전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에서는 이를 형통과 곤고라고 하며, 두 가지를 인생에게 병행하게 하셨다고 하셨고,
창세기에는 이를 아침과 저녁, 밤과 낮이라는 말로 표현하셨고,
이를 체험적으로 경험한 믿음의 대가들은 “하나님과의 숨바꼭질”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려운 과정은 하나님이 숨으신 것이고, 축복과정은 하나님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가서의 술남미는 이것을 북풍과 남풍이라고 하며 오직 이 바람이 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만을 날리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이 오던지 그것은 모두 우리를 사랑하셔서 완전의 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기 어렵고.....
다만 이스라엘의 가는 과정이 모세오경에 나와 있는데,
그것이 우리 개인의 영적 성장과 완전의 길의 모형이요,
인류전체 구속의 진행과정과 특별히 계시록의 짝이라는 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완전의 길을 깨닫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고 마음눈이 밝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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