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시간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창조 전 ---> 창조 ---> 시간의 창조 ---> 타락 ---> 예수님 ---> 십자가 ---> 부활 ---> 재림
이러한 시간관이 바로 1차적인 육적 시간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2차적 묵시적 시간관입니다.
이 묵시적 시간관은 육적 시간관과 대비되면서 불쑥 불쑥 등장합니다.
비유하자면 1층집 아래 지하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집 주인은 지하실에서 누군가가 천장을 망치로 쿵쿵 치면 "왜 바닥이 쿵쿵거리고 흔들리지, 혹시 지진인가?" 할 것입니다.
그림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1층 집 : 창조 전 ---> 창조 ---> 시간의 창조 ---> 타락 ---> 예수님 ---> 십자가 ---> 부활 ---> 재림
비밀 지하실 :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러니까 묵시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표면 위로 창조, 타락, 대속, 부활, 재림이라는 시간이 비가역적(꺼꾸로 되돌릴 수 없는 성질)흐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십자가 사건 안에서 흐르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창조 전의 때도 예수님의 사건에 포섭되며 한 몸도 그대로 그 곳에 위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간관은 그리스인들의 시관개념인 크노로스 혹은 히브리인들의 시간개념인 카이로스와는 다릅니다.
그리스인들의 크노로스 시간 개념은 위에서 말씀드린 1층집의 시간관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카이로스 시간 개념은 그 1층집 시간의 수평적 흐름 위에 묵시적 사건이 수직적으로 뚫고 들어온다고 합니다만, 1층집 시간의 전체 흐름을 변경하지는 못합니다.
전체 흐름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이 사건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이다.'를 강조하는 정도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는 관계 없는 시간관입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는 시간관이 모두 붕괴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십자가 마을 (박윤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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