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실패와 성공이라는 말이 하나님께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떤 인생이든, 네가 성공했다. 네가 실패했다라는 단정을 주지 않으셨다.
끊임없이 성장과 성숙을 기다리시면서 그 과정을 인도해나가셨다.
그런데 이 실패하는 말은 왜 나왔을까?
그것은 남과 비교해서 나온 말이다.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도 남과 비교해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든지 어느 특정한 때만 보고 그 인생을 평가할 수는 없다.
쓰러질 때도 있고, 일어날 때도 있고 번성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좋은 영성훈련자로서
광야에서도, 가나안에서도, 바벨론에서도 우리가 승리하도록 돕는다.
승리의 개념과 성공의 개념은 바로 7일의 가치와 6일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말이다.
우리는 승리하기를 원하지, 성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승리는 끊임없는 투쟁에서 이긴 것을 의미한다.
고난과 환란, 그리고 모든 어려움에서도 이긴 것을 의미한다.
모든 적군으로부터 이겨서 환호를 부르짖는 것이다.
이겼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공의 기준은 부와 명예이다.
이런 면에서 성공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이 인생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벨론도 풍성한 곳이지만 우상숭배로 부패할 때로 부패한 곳이었다.
성공은 부패를 동역자로 삼을 수 있지만
승리는 부패를 이겨야 한다.
성공은 세상사람들이 말해주는 것이지만
승리는 하나님이 선포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지 않고 신실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해 주셨다.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이 단정해주는 성공을 위하여 달려가지 말자.
이 세상의 성공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드러나고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하나님은 한번도 네 인생이 성공했다. 실패했다고 단정지으시지 않으셨다.
항상 기회가 있고, 일어서서 회복할 기회를 허락하셨다.
한번 더 믿어주고, 밀어주셨다.
그 분은 끝까지 한결같이 달려가기를 원하신다.
마지막 승리의 주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실패와 성공은 서로 비교하면서 얻는 공간의 가치, 6일의 가치이다.
이것은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승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이 선포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승리의 길을 걷기가 어렵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으셨던 단어라면 우리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다른 인생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인생도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기준대로 우리가 평가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은 성실, 충성이다.
이 기준대로 주님은 칭찬도 해 주시고 상급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그 성실, 충성, 그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하나님의 기준은 보이지 않는 제7일의 가치대로 평가하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인생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평가의 기준은 지금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을 주실 것이고 기회를 주실 것이고
세우고 회복하면서 이끌어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떡만 먹으면 된다.
로뎀나무 아래에 있던 엘리야에게도
주님을 부인하고 떠났던 베드로에게도
단지 주님은 떡을 먹이셨다.
그들은 먹고 힘을 얻었다.
주님은 그 때에도 그들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먹을 것을 먹고 힘을 내자.
그러면 우리도 다시 예루살렘으로, 호렙산으로 로마로 향하여 갈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무지개 > 스크랩 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막 도표 (0) | 2017.04.15 |
---|---|
[스크랩] 그 곳에 그 물건이 있는 이유 (0) | 2017.04.05 |
몸을 낮추니 세상이 아름답다 (0) | 2017.04.03 |
[스크랩] 무너진 데를 다시 세우는 예루살렘 사관학교 (0) | 2017.04.02 |
[스크랩] 늙은 이의 꿈을 부활시키시는 성령님의 역사 (0) | 2017.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