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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혼의 무지개/스크랩 창고

[스크랩] 이현필 2

by Andrew Y Lee 2011. 9. 23.

 

 

동광원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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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따라 사는 이들의 영적 감화력은 삶을 통하여 드러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삶
맨발과 허술한 옷차림에 마치 거지꼴을 한

이현필 선생의 일행을 반겨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오집사 댁을 찾아서 이현필 선생이 먼저 들어갔다.

“오집사님 계십니까?” 주인을 보고 밤에 좀 쉬고 가자고 사정하니

 “우리 집은 단칸방이라 안 됩니다”라면서 난색을 표하였다.

그러면서 “저기 아무개네 가면 혹시…”하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일행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임을 알고는 방 안으로 안내하고 저녁밥까지 지어왔다.

그날 종일 굶고 시장했던 두 자매는 밥을 먹었으나 이선생은 먹지 않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집주인은 무심결에

“광주에 이공(이세종)의 제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현필이란 분을 혹시 아십니까?

잘 믿는 이라는데…”하고 물었다.

그러나 이선생은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 후 이선생이 깐 밖에 나간 사이에 수레기 어머니가 그 집 식구를 보고

“지금 그 분이 바로 이현필 선생입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가족들은 대경실색하며 “아이고 이렇게 믿다간 천사도 모르고 그냥 지나 보내겠군요.

아이고, 죄송합니다.”라고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다시 길을 떠날 때는 주인 내외가 십리까지나 전송해주며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현필 선생은 실로 성령의 사람이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3:8).

그는 자신을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간에 개의치 않았다.

그냥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갔다.

육적인 애정을 끊어버리는 데 따르는 고통
눈보라를 맞으며 남원에서 광주까지 걸어오니 4일이 훌쩍 넘어섰다.

그들의 모양은 비참할 지경이었다.

헤어진 모자와 떨어진 고무신을 벗어 들고 걷는 이선생이나

그 뒤를 따르는 자매들이나 모두 다 거름뱅이 문둥병자 같았다.

광주까지 걸어오니 도저히 한 걸음도 더 옮길 수가 없었다.

광주 양림 제중병원 앞에 있는 김집사의 집에 들렀다.

 

그 집에 한나 어머니라는 이현필 선생의 제자가 있었다.

이선생은 함께 온 수레기 어머니와 김금남양을 그 집에 두고 밖으로 나갔다.
김금남양은 낯선 집인데다가 한나 어머니와 수레기 어머니가

귓속말로 수군수군 주고받는 모양과 방안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글쎄, 그분이 품속에 독약을 품고 다닌데요. 자기 혼자 죽으려다가 내가 왜 혼자 죽어?

그를 죽이고야 죽지 하면서요.” 가만히 들어보니 이현필 선생 부인의 이야기였다.

그 집이 바로 이선생 부인의 집이었다.
이선생이 출가를 한 후 부인은 혼자 광주에 와 있으면서도 옛 남편을 단념할 수 없어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고 앙심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처럼 따라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편을 잊을 수도 없는 부인은

속이 뒤집히다시피 되어 발악적으로 나온 것이다.
방 안에서 수군수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조금 있더니 뜻밖에 젊은 여자 한 분이 들어왔다.

들어오면서부터 성난 표정으로 방 안에 있는 자매들을 흘겨보더니

복수심에 불타는 그의 눈에 벽에 걸어놓은 이선생의 거지같은 모자가 보였다.

그 여자는 성난 독수리같이 달려들어 그 모자를 자매들이 보는 앞에서 쫙쫙 찢어버렸다.

그가 이현필 선생의 부인이었다.

다음엔 이선생의 다 해어진 고무신도 찢어버렸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김금남양은 무서워 어쩔 줄을 몰랐다.


얼마 후 이현필 선생이 밖에서 들어오더니

이런 광경을 보고도 아무 말도 않고 슬쩍 웃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선생 부인은 방구석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김금남양을 노려 보면서

“큰 애기인가, 각시인가 이리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이선생의 입은 옷을 가리키며 “이 염병할 것들아! 따라다니려면

옷이나 빨아 드리고 따라다니려마!”라고 소리쳤다.
사실 이선생의 꼴은 너무도 추했다.

한나 어머니와 수레기 어머니도 무슨 죄나 지은 듯이 그 방에 따라 들어왔다.

이선생은 방 한 구석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생전 깎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에 습관대로 콧물만 훌쩍거리고 있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앉아서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 앞에는 시장기를 해결하려고 손수 미숫가루 한 그릇을 담아 놓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부인은 남편이 불쌍하기도 하고 밉살스럽기도 하여 더욱 화가 달아올랐다.

한편으로는 미치광이 같고 문둥이 같이 변모한 남편을 보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예수를 믿어도 꼭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가.

금방 이선생에게 달려들어 모자와 고무신을 찢듯이 쥐어뜯기라도

할 듯 하면서도 거기까진 차마 못하고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악만 쓸 뿐이었다.

그러나 부인이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동작을 하든지

이현필 선생은 돌부처 모양 시종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이말 저말 무슨 말로 건드려도 도대체 상대하지 않으니

부인은 한참 그러다가 방에서 나가버리고 말았다.
부인은 부엌에 나가 팥을 갈아 팥죽을 쑤어서 들고 들어와서는

일행을 대접하면서도 말은 여전히 비꼬아서 했다.

남편보다 더 보기 싫은 것은 거지같은 남편을 따라다니는 동광원 여자들이었다.

“보기 싫은 것들, 어디로 또 가려는가?”

팥죽도 먹고 욕도 먹으면서도 무안하기만 한 한나 어머니는

아주 고지식한 분이어서 “심방할 데가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부인은 팥죽을 대접하고 밖으로 아무 말 없이 나가더니,

겉 행실과는 달리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어느새 일행의 차표를 남편 몫까지 사들고 들어왔다.
터미널까지 좇아온 부인을 피해 버스에 먼저 올라탄

이선생은 감추고 있었던 부인의 외투를 버스 창밖으로 내던져 주었다.

그 외투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었다.

얼른 수레기 어머니와 김금남양이 외투 속에서 칼을 뽑아내서 되는 대로 곁의 흙 속에 파묻어 버렸다.
버스를 타고 떠나려 할 때 부인은 자기 외투 안에 숨겨두고 다니던 칼이 없어진 것을 알고는

“이 안에 둔 것을 어디 두었느냐?”고 소리소리 질렀다.

수도자로 나서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이 같은 가정적인 어려움이 있는 법이다.

이때 주저앉는 사람은 수도에 실패한다.
수레기 어머니의 아들 사무엘은 그동안 이선생 부인 집에 함께 머물러 지냈다.

그 아이의 말에 의하면 이선생의 부인은 독약과 칼을 갖고 다니면서

이현필 선생이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부인은 결사적인 준비를 하고 남편이 오기를 고대하였으나,

차마 일을 저지르지 못하고 기회를 놓친 것이다.

남편을 못 잊은 부인은 이렇게 하기를 오랫동안 계속했다.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된 그 여자는 남편이 밉고

동광원 식구들만 보면 오장이 뒤집어지는 듯 했다.

 

이 세상에 얽매인 육적인 끈들을 끊어버리는 데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잠시잠깐의 불화를 뛰어 넘으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날 수 있다.

반드시 고통과 역경을 뛰어넘어선 사람들만이 천국의 보화를 얻을 수 있다.


그 후 30년이 더 지난 뒤 엄두섭 목사가 이현필 선생의 옛 부인을 만나보고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분은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무등원의 폐질환 환자에게 구제도 하고 자선사업을 하며 아직도 옛 남편을 존경하고 있었다.

황여사는 먼 옛날의 회고담을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꽤 오랫동안 남편을 따라다니며

못살게 굴었노라고 술회하면서 자기도 기회를 보아 수도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진리는 영원히 살아 숨 쉰다
1950년경 이현필 선생은 무등산에 있다가

제자들을 데리고 화순군 청소에 가서 수란골에 머물렀다.

그 무렵은 남한 각지에 남로당의 지하공작이 극심해서 밤이면

좌익세력이 깊은 산골짜기나 구석진 마을마다 득실거렸다.

낮이 되면 그들을 소탕하려는 국군의 수색작전이 몹시 심했었다.

그 때 수란골에 있던 이선생은 병중이어서

그러다가 세상 떠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이선생을 따르던 여제자들은 이 소식을 들으면서도 워낙 남녀의 예법이 엄해서

선생을 걱정하면서도 감히 문병 갈 엄두도 못 내고 김금남양은 하나님께 기도만 계속했다.

 “이선생님이 세상 떠나시기 전에 한번 뵙게 해주소서!”


그러던 어느 날 김양의 이모되시는 강화선 어머니가

이선생 문병을 가면서 김금남양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했다.

기쁜 마음으로 동행하며 이선생이 계신 데로 찾아갔더니,

선생은 방 안에 혼자 누워 곁에 누구 시중하는 이도 없이 혼자 앓고 있었다.

이불을 둘둘 말아 쓰고 누워 있어 이선생의 몸은 보이지도 않았다.

두 제자가 문병 갔는데도 병이 심한 이선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죽은 듯 그대로 누워있었다.

강화선 어머니와 김금남양이 오래도록 방안에 앉아 지켜보고 있어도 선생은 한 마디 말도 없었다.

꽤 오랫동안 그런 모양으로 있다가 강화선 어머니는 근처에 사는

이공의 제자 이상복씨를 찾아보고 오겠다고 하면서 김금남양만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는 눈보라가 심했다. 강화선 어머니는 추운 것을 걱정했던지

화로에 불을 담아 방안에 들여다 놓고 떠났다.

 
이현필 선생은 진리를 따르는 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지쳐 쓰러져 일어날 수 없을 지경까지 가더라도 진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쳤다.

병환 중에 계신 이현필 선생의 거친 숨소리 가운데 무언의 소리가 들려왔다.

‘진리는 영원합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끝까지 영혼의 순결을 지키며,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곧장 걸으십시오.

선한 명분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진리는 순결합니다.

진리는 말이 아니라 삶을 통하여 증거 됩니다.”

인생의 큰 사업은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만큼 귀하게 여긴 순결
문 밖에는 눈보라가 심했다. 강화선 어머니는

추운 것을 걱정했든지 화로에 불을 담아 방안에 들여다 놓고 떠났다.

김금남양은 불안한 마음으로 말도 못하고, 기침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한참 후에 죽은 듯 누워 있던

이선생이 덮고 있던 이불 한쪽 자락을 치켜들고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전신은 불덩어리같이 열이 오르고 있었고 선생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방 안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가 선생은 잠깐 김양을 보고서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도로 누워버렸다.

얼마동안 더 앉아 있다가 김금남양은 청소골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튿날 이현필 선생으로부터 모든 제자들에게 전갈이 오기를 모두 모이라고 했다.

김금남양도 다시 갔다. 앓던 이선생은 쇠약한 몸에 호흡이 어려우면서도 일어나 앉아 있었다.

그 곁에는 선생의 병을 걱정해서 김의사, 백장로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밖에 서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선생 곁에 누구를 시켜 꺾어다 놓았는지 한 묶음의 나무가 있었다.

이선생은 병중에서도

앉아 얼마동안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나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모인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허, 참! 사람들 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군! 노인들이 대체 어쩌자는 뜻으로

젊은 처녀를 데리고 와서는 젊은 사람이 혼자 있는 방에 두고 가며,

그 처녀는 또 어쩌자고 그 젊은 남자 혼자 있는 방에 우두커니 앉았던고….

또 병으로 열이 올라 못 견디는 사람 곁에다 화롯불은 무엇 때문에 담아 들여놓고 갔을꼬?

자, 내가 잘못했으면 이 매로 나를 때리고 자기들이 잘못했으면

이리 나와 이 매를 맞으라구!” 그것은 농이 아니고 심각한 태도였다.


조그마한 부주의로 사람들은 오해하고, 오해받기도 하는 것이다.

이선생은 이 기회에 주책없는 행동을 엄히 타일러 주자는 것이다.

손에는 회초리를 들었다.

갑자기 당하는 일에 두렵고 창피한 김금남양은

멋모르고 방구석에 앉았다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더구나 광주에서 온 손님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무안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나이 든 처녀로 이선생을 따르면서도 김금남양 자신의 마음만은 티 하나 섞임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어제 그렇게 선생 문병을 하고 간 것이지만,

지금 선생의 꾸지람을 듣고 보니 몹시 불안했다.

만일 어제 그 광경을 제 삼자가

갑자기 와서 보았다면 무엇이라 짐작했겠는가.

그렇다. 자기도 미처 깨닫지 못한 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를 맞아야지. 이현필 선생은 회초리를 들고

계속 “나오라구, 나오라구!” 소리 질렀다.

이럴 때는 참으로 무서운 선생이었다.

김금남양은 몇 번이나 뛰어나가 선생 앞에 엎드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저를 때려 주세요.” 하고 싶었으나 부끄러워 결국 못나가고 말았다.

이선생은 그 매를 돌려 스스로 자기를 여러 차례 때렸다.

그 매 소리는 가슴을 후려치는 소리인 양 아팠다.

사건은 그것으로 마무리 됐다.

그러나 김금남양의 마음은 몹시도 괴로웠다.

차라리 나가 맞을 것을… 하며 뉘우쳤다.

순결이 생명인 이현필 선생의 모임 안에는 남녀간의 법도가 이만큼 엄격하고 철저했었다.

세상을 초월한 참된 스승
서울 YMCA에서

경기도 능곡에 수양관을 짓고 강연회를 연 일이 있었다.

그 때 이호빈 목사, 현동완 총무 등과 함께

강사로 나선 이현필 선생의 풍모가 이상하였다.

머리는 깎지 않아서 덥수룩하고, 수염은 되는대로 자란데다가

어느 어린 애 옷을 바꿔 입은 듯 체격에 비해 옷이 너무 작았다.

팔꿈치가 나오고,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팽팽히 감겨 있는 느낌이었다.

기차를 타고 오다가 불쌍한 거지 아이를 만나 자기 옷을 벗어 주고

거지 아이의 옷으로 바꿔 입고 온 것이었다.

그런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도 이선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선생은 간단하게 성경을 읽고는

“지금 남쪽에서는 피 흘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하였다.

그 풍모와 말에 깊은 감화력이 있어 큰 감동을 받은 성도들이 있었으나,

주로 목사들은 이선생을 멸시하고 위선자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현필 선생은 결핵병을 앓고 있던 제자 김준호와 함께

전남 화순의 깊은 산마을 청소골짜기에 들어갔다.

당시 그 일대는 여순반란을 일으켰던 공산주의자들이

몰려 와 있어서 밤이 되면 그들 세상이 되고,

낮이 되면 국군들이 밀어닥쳐 토벌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밤마다 반란군들은 마을에 내려와 불온한 내용의 강연을 하고,

동네 구장을 죽이고, 소를 잡아가는 등 못살게 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섯 명의 고아들을 모아 고아원 사역을 시작했다.

김준호씨는 거기서 고아들의 선생으로

뽑혀 매일 고아들을 데리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우리 선생님이여
고아원 건물이 길가였기 때문에 밤이면

산 손님들이 동네 집 소를 끌고 집 앞으로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밤에 국군하고 반란군 사이에 접전이 벌어지면 불똥 같은 총알이 쌩쌩하며 오고갔다.

그럴 때면 식구들은 부엌에 몰려가 엎드려 총알을 피했다.

아이들은 총소리만 나면 “아이고, 아이고!” 하며 죽는 줄 알고 울어댔다.

참으로 살 곳에 온 것이 아니라 죽을 데를 찾아 들어선 느낌이었다.

고아원에서 100미터 쯤 거리에 병든 노인이 외로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김준호씨가 혼자 앓고 있는 노인이 불쌍해서 문병을 갔다.

김준호씨는 입을 옷이 없어서 일본 군인이 입다 버린

군복 같은 것을 입고 지냈는데, 다 해어져 남루한 옷이었다.


병든 노인의 집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서슬이 시퍼런

국군들이 동네 집을 수색하며 산 손님이 숨어 있나 찾고 있었다.

김준호씨는 겁이 나서 그 집 베틀 밑에 기어 들어가 숨었다가 군인에게 잡혀 끌려갔다.

그 때 김준호씨의 옷차림은 영락없는 반란군의 모습이었다.

군인들은 김준호씨를 뒷산으로 끌고 올라가면서 총자루 개머리판으로 때렸다.

그 때는 이유도 변명도 소용이 없었다.

누구나 조금만 의심을 받아도 죽는 때라, 불쌍한 김준호씨는

산에 끌려가 즉결 처분을 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이 때 이 광경을 맞은 편 고아원 마당에 나와서 지켜보던

고아 다섯 명이 자기네 선생이 매 맞으며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끌려가는 사람이 자기 선생인 줄 확인하자 소리소리 질러 울며 산으로 따라 올라갔다.

고아들이 쫓아와 울부짖는 것을 보더니 군인들은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아 기분 나쁘게 왜 우니?”

“우리 선생님이여!” 고아들은 기를 쓰고 자기네 선생이라고 했다.

그 때 군인들은 생사 속을 누비고 다니는 때라

어찌도 살벌한지 눈들이 파랗게 불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고아들은 그런 것도 아랑곳없이 계속 “우리 선생님이여!”만 되풀이 했다.

고아들이 울면서 우리 선생님이라는 바람에 군인들은

고아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 떨어진 곳에 가서 가슴에 총부리를 대고 물었다.

 “저 놈이 밤손님이지?” “우리 선생님이여!”

군인들은 다섯 명의 고아들을 하나씩 끌고 가 심문해 보고는 김준호씨를 풀어 주었다.


살아서 내려오는 김준호씨는

고아들의 어깨를 안고 그냥 가슴에 치밀어 오는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에도 또 밤새 소탕전은 계속됐다.

살아난 김준호씨는 그날 밤에도 고아들을 데리고 피신을 다녔다.

그러나 낮에 고아들의 그 울음소리를 듣고 난 뒤로는

심경이 어제와는 전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은 나의 수호천신(守護天神)이다.

내가 이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나를 지켜준다.

저렇게 총소리가 콩 볶듯 요란해도 이 아이들 곁에 있으면 이렇게 내 마음이 평안하다.

나는 그동안 엄한 선생이어서 아이들이 잘못하면 매를 때리곤 했는데

하루 사이에 나는 이 아이들을 보는 내 인생관이 바뀌어졌다.

스승은 이 아이들이다. 내가 도리어 제자다.’
그는 계속 고아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인생관은 그 뒤로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김준호씨의 마음을 지배했다.

그 뒤로부터 다시는 아이들을 때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깨닫고 보니 매 맞아야 할 인간은 자기 자신이었다.

내가 누구를 가르친다든지 도와 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마음에 크게 깨닫게 된 것이다.
                                                      (계속)


 

출처 : 모세골
글쓴이 : 모세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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