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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신비가/무명의 사부

성결은총을 분별하는 경험적 견해

by Andrew Y Lee 2011. 9. 22.

 

성결은총을 분별하는 경험적 견해

 

대부분의 성도들이 영적할례 즉 성결은총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험을 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성결의 은총을 경험적으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지요.

 

먼저 영적할례 즉 성결은총은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결은총은 성경을 통하여 약속해주신 바와 같이 실제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가르쳐주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먼저 에베소서 6장 10-13절에 나온 말씀을 보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셨지요. 전쟁할 때 적군이 활이나 창이나 칼로 찌른다 할지라도 전신갑주를 입으면 몸에 상처가 나지 않는 것과 같이, 영속에 내주하신 하나님의 생명이 생명의 법칙을 나타냄으로써 죄의 법칙이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전신갑주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몸속에 감각적으로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인데, 몸 전체에 하나님의 생명이 마치 몸의 크기와 같은 바위덩어리가 채워진 것과 같이 되지요. 또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평강과 생명의 감각이 몸 전체에 옷을 입은 것과 같이 나타나고, 영적생활에 필요한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경험을 히브리서 6장 5절에서는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경험’이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오면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생명의 감각이 충만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이 감각은 마음속에 기쁨이나 슬픔이나 괴로움이 있을지라도 그 마음 상태와는 아무 상관없이 영체와 육체 가운데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감각이며 기도와 전도, 사랑실천이나 찬양 등 영적생활을 할 때 언제나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되지요.

이 내세의 능력은 열두 가지 빛의 열매를 맺을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인데,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죄의 법칙과 반대가 되는 생명의 성령의 법칙, 즉 내세의 능력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겸손과 용기와 정직 등 모든 덕의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 필요한 능력을 성도들의 의지 가운데 나타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감각은 생명이 내주합일되는 경험 즉 성결의 은총을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도 못했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체험이었는데,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즉 다리나 허리나 가슴이나 얼굴을 비롯한 몸 전체에 하나님의 생명이 감각적으로 체험되었고, 항상 필요할 때마다 초인간적인 능력이 뱃속에서부터 몸 전체를 향하여 용솟음치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게 되지요. 또한 이 생명의 감각은 포근하고 부드러운 솜으로 온 몸을 감싸고 있을 때 느껴지는 감촉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감각은 팽창되기도 하고 수축되기도 하는데 팽창될 때는 육체의 촉각이나 미각 등이 둔해지고, 수축될 때는 몸의 촉각이나 미각이 좀더 강하게 느껴지지요. 생명의 감각이 수축될 때는 얽매인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리고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묵상이나 관상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나 팽창될 때는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거나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게 되지요.

 

또한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라면 위에서 증거한 것과 같은 경험 외에도 다양한 경험적 증표들이 있어야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 7장 38절의 말씀 중에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신 것처럼 생명수가 감각적으로 알 수 있도록 몸 가운데 흘러 들어오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신학적으로 성령의 폭주 또는 생명수의 폭주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생명수는 영적할례 즉 성결은총을 받은 성도들의 이마를 통과하여 뱃속에 흘러 들어와 샘물처럼 용솟음칠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6장 5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내세의 능력이 몸 전체에 감각적으로 나타나도록 역사하게 됩니다. 이 생명수의 폭주는 광야연단과정을 마치고 가나안땅에 들어간 성도들이라면 계속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성령충만이나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나타나는 기분이나 감정 상태 같은 것이 아니고 청각이나 촉각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경험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경험은 소낙비가 내릴 때나 폭포수가 떨어질 때와 같은 소리가 청각으로 선명하게 들리고, 이마에 물이나 기름 같은 것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과 같이 촉감으로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체험되는 것입니다.

생명수가 폭주하는 체험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7족을 정복한 후에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즉 생명수가 흐르는 땅을 분배하여 기업으로 준 것처럼, 예수님께서 광야연단을 마치고 영적할례를 받은 성도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즉 언제나 생명수가 흐르는 천국을 완전히 소유하도록 해주셨다는 것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이 생명수는 생명수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성도들의 이마를 통과하여 몸 안에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병 속에 물이 채워지려면 물이 병의 입구를 통과해야만 되는 것처럼 성령 즉 생명수도 사람의 영과 몸속에 들어오기 위하여 이마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할례 즉 성결은총을 받은 성도들은 이마 가운데 생명수가 유입되는 부분이 있지요.

 

생명수의 유입에 대한 저의 경험을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천국 보좌에 계신 주님을 주목하면서 마음을 집중할 때마다 이마의 양 미간에 구멍이 생긴 것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고 그곳으로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마의 양 미간으로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는 체험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하는 성도들 자신은 알게 됩니다.

양미간에 나타나는 신비로운 감각은 주님만을 향하여 마음을 집중할 때 더욱 강하게 느껴지고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는 상태도 더욱 강하게 되지만, 대화를 하거나 증거를 할 때는 거기에 정신을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그 감각이 강하게 의식되지 않아요. 계시록 7장을 보면 교회시대의 이긴자들 144,000명을 이마에 인맞은 종들이라고 하였는데, 신비로운 하나님의 생명수가 흘러 들어가는 입구 즉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는 통로가 있기 때문에 이마에 인침받았다고 한 것 같아요.

또한 이 경험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체험이므로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체험이나 성령충만과는 전혀 다른 체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광야연단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머리 위에 나타난 불기둥체험이나 제 몸의 고통스러운 부분에 나타난 찬물방울 떨어지는 체험을 수년 동안 계속적으로 했었지만 생명수의 폭주체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 중에는 불체험이나 방언, 신유나 능력 행함 등의 은사를 체험하게 되면 그 체험을 성결의 은총으로 착각하면서 증거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체험은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것이므로 광야연단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체험 즉 성령의 폭주와는 확실하게 구분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성결의 은총을 사모하는 성도들 중에는 이마에 생명수가 흘러들어오는 것과 비슷한 마귀역사를 체험하는 분들도 나타나지요. 이렇게 마귀가 주는 체험을 하고서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으로 착각한 성도들이 저에게 와서 그 체험담을 이야기할 때 자세히 들으면서 분석해 보노라면 분명히 마귀한테 속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지요. 이 말씀을 알기 쉽게 해석해 보면 우리가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빛을 따라 생활하노라면 육체 가운데 예수님의 생명이 감각적으로 알 수 있도록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났다는 것은 천로역정의 간난산에 있는 미궁에서 기독도가 전신갑주를 입게 된다는 경험적 진리와 같은 내용입니다.

 

또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성도들이 좁은문과 좁은길을 통과한 다음에 비로소 우리의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을 완전히 소유하려면 그릇이 깨끗이 닦여져야만 하는 것인데, 그 그릇은 성도들의 행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성도들이 광야연단과정을 통하여 행실을 깨끗하게 닦아서 정결한 그릇이 되면 영과 몸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이 담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결의 은총 즉 영적할례를 받은 성도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전신갑주를 입음으로써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경험이 있는지, 생명수가 폭주하는 경험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또한 천로역정에서 말하는 장망성을 출발하여 전신갑주를 입기까지의 성장과정이 있는지, 그리고 생활 구석구석에서 정결해진 행실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확인해 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