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내면적인 죄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과 8장을 통해서 증거한 경험적 진리를 연구해 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19절을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흠이 없는 완전한 선을 행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하기 쉬운 환경이 생길 때마다 사도 바울이 원하는 선한 마음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원치 않는 악심이 자꾸만 마음속에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사랑과 겸손과 충성과 절제 그리고 온유와 인내로써 생활하기를 원하는데, 항상 흠과 티가 많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하고 절망하는 바울 사도의 괴로운 심정을 로마서 7장에 기록한 것이지요.
이 말씀 중에서 ‘악’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죄악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악을 가리켜 말합니다. 여기에서 표면적인 죄악은 우리의 말과 표정이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죄, 즉 겉으로 나타나는 죄를 의미합니다. 이 표면적인 죄악은 우리가 철저하게 노력하면 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공자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들은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갖추신 분들이었습니까? 오늘날에도 각 분야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격을 갖춘 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분들은 행실 가운데 표면적인 죄악을 쉽게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인 행실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면적인 죄를 나타내지 않도록 할 수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7장 19절에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 즉 마음속에 나타난 악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내면적인 죄는 어느 때 잘 나타날까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애매한 말을 들을 때,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침을 뱉고 얼굴을 때리고 욕설을 퍼부을 때 순간적으로 마음속에 분노나 미움, 혈기가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음란한 잡지나 비디오, 소설, 영화, 인터넷 같은 것을 볼 때 순간순간 마음속에 여러 가지 음란한 마음이 떠오르게 되지요. 또한 큰 자랑거리가 생기거나 남에게 높임을 받게 될 때는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경쟁자가 자기보다 모든 일이 잘 되고 인정받게 될 때는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와 같이 범죄하기 쉬운 환경과 기회가 생겼을 때 내면적인 죄가 나타나서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례를 들어보면 어떤 분은 청소를 잘하고 늘 깨끗한 환경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자녀들이 개구쟁이 같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온 집안의 물건들을 엉망진창으로 어질러 놓거나 온갖 더러운 쓰레기나 먼지 같은 것으로 더럽혀 놓았습니다. 그럴 때 성내지 않고 주님과 같이 온유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하는데도 순식간에 마음 가운데 분노나 신경질이나 미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겉으로 행하는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나타나는 내면적인 죄악 때문에 고민한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5절의 말씀을 보면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행한다’는 표현 때문에 마치 행실로 나타나는 죄로 인하여 고민하는 것으로 왜곡된 해석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8절에서는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행실로 범하는 죄가 아니라 내면적인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하였으므로, ‘내 속’ 즉 내 마음 가운데 나타난 죄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통하여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고 하셨는데, 이 말씀도 역시 마음속에 나타난 내면적인 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 즉 죄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범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살고자 하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이 말씀이 마음에 나타난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3장 15절을 보면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도 역시 마음속에 나타난 미움 즉 악심을 범죄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구약시대의 율법은 주로 표면적인 죄 즉 행실로 범한 죄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우리를 괴롭히거나 애매한 말로 비방을 하거나 손해와 고통을 줄 때, 참고 견디다가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미움이나 분노, 짜증이나 신경질 같은 악심이 나타났다면, 비록 폭언이나 폭행이 없을지라도 그 악심 자체를 살인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고백하신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일곱 가지 죄성 중에서 이기주의 즉 아집성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죄가 기회를 타서 탐심을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죄’는 마음속에 나타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죄’ 즉 근본적으로 영속에 뿌리박혀 있는 ‘죄성’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죄성이 육체와 영속에 뿌리박혀 있다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지면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사람마다 칠종죄(七種罪)는 다 가지고 있지만 개인별로 나타나는 죄성의 정도는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포악성이 강한 사람은 포악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주어질 때마다 마음속에 혈기나 분노가 잘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포악성이 약한 사람은 기회가 주어져도 악심이나 악행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질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죄를 크게 구분하면 영과 육체 가운데 뿌리박힌 ‘죄성’과 마음 가운데 나타나는 악심 즉 ‘내면적인 죄’ 그리고 행실로 나타나는 ‘표면적인 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영속에 뿌리박힌 죄성은 할례은총 즉 성결은총을 받을 때 제거됩니다. 또한 내면적인 죄는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 영과 육체 가운데 뿌리박혀 있던 죄성이 자극되어 나타나는 악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리고 표면적인 죄는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죄의 열매를 가리켜 말합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하여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만 진리 전체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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