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인생
야고보서 4장 13~17절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 설교는 좀 특이한 제목이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하루살이 인생" 이라는
말씀의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욥기서 4장에 보면 욥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의 친구 엘리바스가 와서 욥을 책망하는 말씀이 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성결할 수가 있겠느냐?
그러면서 욥기서 4장 19절에
엘리바스는 이렇게 말을 한다.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우리의 인생은 티끌로 터로 삼고 흙집에 살고
흙으로 만들어진 인생들이다.
그러면서 인생은 하루살이에게도 눌려 죽을 자가
아니겠느냐라고 하며 인생의 연약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공동번역에 보면 이 말씀을 이렇게 풀이였다.
"하물며 땅 위에 터를 잡은 토담에 사는 사람들이랴!
하루살이처럼 쉽게 사라지니"
그러니까 인생은 토담집 흙집에 살며 하루살이처럼
사라지는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사실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이고
하루살이만 못한 인생이고 이렇게 인생은 잠시 왔다 가는
그러한 인생이다.
길을 가다보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때문에
누구나 다 불편을 경험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 하루살이들이 눈으로 들어오고 달려오기 때문이다.
하루살이는 흔히 하루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딱한 존재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 하루살이의 평균 수명은 얼마일까?
궁금할 것이다?
하루살이는 여러 종류가 있다.
평균 수명이 무려 1년에서 3년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 1년에서 3년을 유충으로
물속에서 살게 된다.
그러다가 날개를 달고 성충이 되어서 나오면
짧은 기간만 살게 된다.
성충이 되어 물 밖으로 나오면 하루살이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짝짓기를 쉽게 하려고 떼를 지어 다니고
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떼를 지어 다닌다.
그래서 대부분 날개를 달고 나오면 짝짓기를 하고
몇 시간 내지 이틀 안에 죽는다.
그래서 하루살이이다.
우리의 인생을 하루살이에 비교하면서 얻고자 하는 교훈은
첫 번째는,
예수 믿는 우리가 기독교적인 인생관을 철저히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풀은 잠깐 이렇게 피다가 그냥 스며져 없어져 간다.
모든 인생은 꽃은 피는 것 같지만 잠깐 피었다가 없어지고
베어지고 이렇게 허무한 풀과 꽃과 같은
그런 인생이라는 의미이다.
전도서 1장 2절 말씀을 보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자그마치 한 절에 다섯 번이나 인생이 헛되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전도서 1장 12~14절에 보면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이 전도서를 쓴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이다.
왕으로서 모든 부귀를 다 누려보고 모든 지혜를 받아서
모든 동식물을 다 연구해서 살아보니
인생은 다 괴로운 것이고 인생은 수고하는 것뿐이고
이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것이 다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 한 것이라 하고 있다.
바람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헛된 것을 잡으려고 인생이 다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도서 2장 22~23절 말씀을 보면
"22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헤아려서 수고하는 모든 것, 마음에 애를 써서 소득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 일평생 근심하고 수고하는 것이
다 슬픔뿐이고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고
다 이것이 헛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26절에도 이렇게 말한다.
"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죄인들은 수고하고 애를 써서 많은 재물을 모아
쌓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그것을 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에게 줘버린다
그래서 그것도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전도서 3장 20~21절에 보면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아담을 흙 한 덩어리로 만든 것처럼 인생은 다 흙으로
만들어져 다시 하나님 말씀대로 흙으로 돌아가는데
짐승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지만 인생은 그 영과 혼이
위로 올라가고 짐승은 땅으로 내려가는 차이가 있다고
그것을 누가 알겠느냐 말씀하였다.
시편 90편에도 말씀하고 있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하는 것처럼 시편 기자도
인생이 날아가 버린다고 하였는데 7~80을 주의 진노와
분노 중에 지나가면서 평생을 이렇게 다 보내고 만다고
말씀하였다.
인도에 가면 수도자들은 썩은 시체를 갖다 놓고
그 시체가 비바람을 맞으면서 변형되어가는 걸 보면서
수도생활을 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미남, 미녀가 죽고 나니까 그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비바람에 의해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점점점 썩어가는 그 시체에 변형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고
수도 생활하는 것을 백골관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생은 헛됨을 알면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고
위로 올라가려고만 하고 그런데 인생이 위에 가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는
그 수단으로 시체의 썩어가는 걸 보면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성경 곳곳에는 인생은 턱없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고
또 야고보 사도는 오늘 본문 가운데 뭐라고 말씀하는가?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안개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잠깐 보이다가 해가 뜨면 없어지는 것이 안개인데
그런데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인생은 하나님의 뜻이라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이들은 이것저것 다 해보지만 이것은 다 허탈한 자랑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인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사는 인생만 안내와 같은,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러므로 인생은 하루살이 같은 인생인데
우리는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하루살이는 유충 상태로 꽤 많은 시간 1년, 3년을
물속에서 사는데 왜 성충이 되면 2시간 내지
하루 이틀 사이에 생을 마감하는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 이유는 성충이 되면서 하루살이에 입이 퇴화하여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속에서는 낙엽 쪼가리라든가 여러 가지 물속에 있는
것들을 먹고 살아가는데 이제 날개를 달고 성충이 되면
그 입이 퇴화해서 입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물은 먹을 수 있겠지만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분의 뜻을
우주 만물 속에 다 집어넣어 놓았다.
부정한 동식물이 있고 또 정한 동물이 있고
그 동물 하나하나에도 그 동물을 통하여서 구원받는
정한 짐승 구원받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이 있다.
이 짐승들을 특성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받지
못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다 보여주고 계신다.
그럼 하루살이도 마찬가지로 어떤 영적인 의미의
하루살이 같은 인생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루살이 같은 인생은 입이 없어서
양식을 먹지 못해 죽는 인생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생의 어떤 모형을 하루살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통해 그분은 자신의 뜻을
다 펼치고 계신다.
고대로부터 하나님은 이 우주만물,
하늘의 별자리를 통해서도 그 모든 그분의 뜻을
별을 통해서도 알려주셨다.
그래서 점성술을 하고 천체를 연구하고 별을 연구하였다.
우주 만물이 다 그분의 뜻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동식물도 다 그분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하루살이도 영적인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나님이 하루살이를 만드셨다.
하루살이가 입이 없어서 먹지 못해 죽는 것처럼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지 못하면
죽는 하루살이와 똑같은 인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하려고 하루사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 말씀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데 인생이 풀과 같고 꽃은 같고
허망하고 헛된 인생 속에 살지만 하나님 말씀은 세세토록
있고 우리에게 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오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23절에 말씀하였다.
그러니까 오직 말씀을 먹어야만 영원히 위로 올라가
사는 인생이 되는데 하루살이처럼 그 입이 퇴화하여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먹지 못하는 인생은
하루살이처럼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세 가지 시험을 받았던 예수님도 마태복음 4장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6장에도 말씀하고 있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시겠는가?
성찬식만 하면 되는 것인가?
예수님의 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말씀을 다 100% 지켜내는 것이
그 말씀 즉 살을 다 먹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형제를 용서하라 그 모든 말씀을
지켜내야 그 살을 우리가 다 먹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광야 연단을 지나가면서
우리는 계속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훈련을 하면서
그것을 먹는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그 말씀을 다 먹어야 된다.
그것을 다 지켜야만 된다.
영생을 얻으려면 그분의 피는 무엇인가?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 보혈의 피로 모든 회개가
끝이 나야 그 피를 다 마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살과 피를 다 먹고 마셔야만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사모해야 된다.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만 나의 양식을 위해서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고 내 영혼의 양식을 위해서도
나의 삶에 많은 부분을 투자를 해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10월 달은 성경 읽기에 도전 해보자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도전을 하였지만 과연 3주가 지난 지금
매일매일 얼마나 성경을 접하며 살고 있는지 점검하며
매일매일 영혼의 양식을 접하며 살도록 해야 한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을 보자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모든 만물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인생도 벌거벗은
것처럼 다 그분 앞에 드러나서 영육 간에 우리의 모든 것이
말씀으로 치료받아야 되고 말씀으로 수술해야 되고
말씀을 보내서 살아 움직이는 운동력이 있는 그 말씀에
의해서 모든 환경이 변해지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한 치도 살아갈 수가 없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우리를 죽게 내버려둡니까?" 했을 때
주님은 한마디 말씀하신다.
"바람은 불어 잔잔하라 고요하라"
그분의 한마디 말씀이면
내 환경의 풍파도 다 잠잠해지게 된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통하여
영생의 길을 가도록 힘쓰는 삶을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루 살다가 없어지는 하루살이처럼
입이 없어 먹지 못하고 말씀을 먹지 못하는
이런 인생이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모스 선지자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서 수많은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기 위해서 비틀거리고 이리저리 다녀도 말씀을
찾지 못한다고 육신의 양식이 없어 기갈하는 아니고
영혼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한 기갈이 올 거라고
말씀하셨다.
젊은이고 늙은이고 다 말씀을 찾아다녀도 말씀을
찾지 못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지금 그런 시대를 바로 저와 여러분 코앞에 두고 있다.
먼 장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코앞에 그런 시대를 바로 앞에 두며 살아가고 있다.
은행에 돈을 저축해야 그 돈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내 심령에 예비해 두어야
환란이 올 때 그 말씀을 꺼내서 생각나게 하시면서
그 말씀을 통해서 살 수 있게 된다.
말씀 때문에 사는 것이다.
말씀 때문에 죽지 않고 말씀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인데 그 말씀을 내 영혼에 비축하지 않으면
우린 살 수 없다.
여러분 지금이라도 성경 읽기에 도전하시면서
하나님 말씀을 접하시기 바란다.
말씀의 귀중성을 알아야 된다.
40일 금식을 해보면 안다.
처음에는 빵이 얼마나 귀한가 한 끼를 안 먹으면
배가 고프니까 음식이 얼마나 중한지를 알게 된다.
일주일쯤 지나면 물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된다.
물도 못 먹으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주, 세 주 지나면 그다음부터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금식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씀을 보내주시니까 금식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의 귀중성을 우리는 체험해야 된다.
여러분이 여러 가지 환경에서 갈급해하고
어려움을 당한다면 더 말씀으로 달려들어서
그 말씀 붙잡고 내 인생의 승부가 바로 여기에 있고
내 인생의 해결책이 여기에 있고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하는
간절함을 가지고 도전하시길 바란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나에게 지금 필요한 말씀을 보내주시고
나를 위경에서 건져주시는 말씀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믿고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세 번째는,
하루살이의 인생을 통해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말은 하루살이가 하루를 살고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종족 번식을 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루살이처럼
하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 무엇에 최선을 다해야 되는가?
영적인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3장 13절 말씀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지금 이것을 한 번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여러 번 말씀하고 있다.
7절 말씀과 8절 말씀 그리고 15절에도 말씀하고 있다.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광야를 지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나안을 향해 가는데 여러 가지 환경이 오면
그 환경이 못마땅해서 마음이 격동되고 강퍅해졌다.
그러면 그 사람은 시험에 들고 광야에서 죽게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였다.
뭐 단순하게 성질 내지 마라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음에 강퍅함이 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믿지 않게 되어 순종 못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강퍅케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씀 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말씀을 붙잡고 보려고 애쓰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천국적인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루하루 어떤 일을 당하든지 염려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영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영적으로 살려하지 않고 하루를 허무하게
소비해버리며 살아갈 때가 너무 많다.
통일찬송가 341장에 보면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이 찬송은 노이마르크라고 하는 분이 1600년대에 쓴
찬송인데 이 분은 작시도 하고 작곡도 했다.
독일에서 젊은 날 원하는 대학교를 가려고 길을 떠났는데
가다가 노상강도를 만나 학비를 다 강탈당해버렸다.
졸지에 알지도 못하는 도시에 가서 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옛 생각이 났다.
어머니의 얘기하셨던 늘 야베스의 기도를 해라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야베스의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어떤 목사님을 만나서 그 목사님의
집에서 가정교사 자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다시 돈을 모아
대학을 가게 되었다.
인생의 그 어려움을 당할 때 노이마르크는 작시, 작곡을
하면서 그런 순간이 와도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을 때
또 남은 인생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이끌려서
일평생 주만 바라면 어려울 때 힘주고
언제나 지켜주실 거라고 감동과 고백을 하게 되었다.
2절에 설레는 마음 다듬고 희망 중 기다리면서
그 은혜로우신 주의 뜻과 사랑에 만족하여라
우리를 불러주신 주 마음의 소원을 아신다.
너무나 은혜로운 가사이다.
우리에게 어떤 환경 속에서 철저한 기독교적인 인생을
산다하여도 잠깐 왔다가는 나그네와 같고
금방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들이고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들이다.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자들이고
주의 뜻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여 은혜아래 살려고
애를 써보고 말씀을 접하려고 애를 쓰고,
감사해 보려고 애를 쓰고 기뻐해 보려고 애를 쓰면서
철저하게 그 분만을 의지하는 삶으로 나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시고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 하루살이와 같은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서
남은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시고
매 순간의 영적인 삶으로 최선을 다 하며
은혜를 청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말씀의 향연 > 메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과 자칭 유대인 (0) | 2023.11.04 |
---|---|
엘리사와 수종드는 자 (1) | 2023.10.27 |
한 알의 밀이 죽으면 (1) | 2023.10.18 |
주의 뜰에 거하는 자 (2) | 2023.10.13 |
꺼져 가는 심지 (0) | 2023.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