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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핍한 자를 돕는 자

by Andrew Y Lee 2023. 9. 15.

곤핍한 자를 돕는 자

 

이사야 50편 1~6절

 

"1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것이며

거기 물이 없어졌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

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성경은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웃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여러 번 말씀하고 있다.

 

특별히 로마서 12 9~10절 말씀에 보니까

"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11까지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구원의 원리를

말하고 있고 12부터는 믿음으로 의로워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되고 나라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고

이웃에 대해서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면서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 도와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권면 하고 있다.

 

죄로 말미암아 불행 가운데 있는 인생들이

서로 돕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인생은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되는데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도울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서로 도와야 할 인생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첫 번째는,

서로 도와야 할 인생의 모습을 본문에는

4 말씀에 "곤핍한 자" 라고 말씀하셨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공동번역으로 보면

"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여기서 곤핍한 자를 고달픈 자라고 하였다.

 

인생살이가 얼마나 고달픈가?

고달픈 자를 다른 번역에는 "곤고한 자"라고 번역을 했다.

 

곤고한 건 죄 때문에 고민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어떤 성경에는 "지친 자"라고 번역을 했다.

그리고 어떤 성경에는 "피곤한 자"라고 표현 했다.

 

전부 다 비슷비슷하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죄로 타락하여 온갖 불행과 고통 속에 사는 인생 전체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곤핍하고 곤고하고 지치고 피곤하고 고달픈 이런 자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 14~15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다.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이것이 바로 곤고하고 피곤한 인생들

힘이 없는 자들이라 하였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이 있어야 된다.

권력이라는 힘이 있든지 물질에 힘이 있든지

건강에 힘이 있든지 뭔가 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데

힘이 없는 자들은 곤고한 인생들이고 마음이 약한 자들이다.

이 세상은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 말씀대로 살아가려면 얼마나 어려운가?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오래 참고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쫓으라

기독교인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서로 도와주며

선을 쫓아야 한다.

 

두 번째는,

그러면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볼 것인가?

돕는 방법은 많이 있다.

 

물질로 도울 수도 있겠고 힘으로 도울 수도 있고

재능을 기부해서 도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말로 도와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4에 있는 그대로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그러니까 우리는 곤핍한 자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주지만 그 중에 말로 도와주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학자의 혀"라고 말씀하고 있다.

 

학자의 혀를 가져야 말로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다.

 

잠언 15 23 말씀에 보니까

"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라고 하였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말들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때그때마다 때에 맞는 말이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고 하였다.

 

때에 맞는 말, 때에 맞는 대답이 기쁨을 얻게 한다.

 

그래서 때에 딱 맞는 말을 들으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할 수도 있고 나아갈 길을 인도받을 수도 있고

소망이 생기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정답을 주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학자의 혀가 아니면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학자를 혀를 가져야만 때에 맞는 말을 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을 도와줄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학자의 혀는 예수님의 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다.

 

본문 5절과 6 말씀을 보면 우리는 이해가 된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일이다.

 

그러니까 먼저는 예수님의 혀가 학자의 혀가 돼서

예수님은 말로 곤핍한 자를 도와주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났을 때

눈에 보이는 물이 아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할 때 그 여인은 그것으로 인생의 기쁨을 얻고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하며 동네 사람을 다 불러 모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많아지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이 때에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실 그 여인이 취했던 남편들은

육신의 남편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여인은 살면서 이런저런 여러 가지 도를 섭렵했지만은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정작 예수님을 만나니까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고

또 생수가 무엇인지 알게 되니까 기쁨을 얻어서

동네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만나는 인생마다 학자의 혀를 가지고

말로 도와주신다.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인물들과

심지어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만나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니고데모에게는 이것이 제일 중요했던 문제였다.

 

또 중풍병자를 만나 고쳐주면서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다.

이 중풍병자는 이것이 제일 기쁜 소식이었다.

 

문동병자에게도 병을 고쳐주면서

"제사장에 가서 보여라" 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에는 율법에 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을

받아야만 사람들 틈으로 들어갈 수 이었다.

이 또한 문둥병자에게 최고의 기쁨이었다.

 

예수님은 말과 능력으로 도와주셨다.

 

저와 여러분은 이 곤핍한 인생을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되는데 예수님처럼 학자의 혀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말로 도와줄 수 있다

 

세 번째는,

학자의 혀를 가지려면 학자의 귀를 먼저 가져야 된다.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4 하반 절에 뭐라고 말씀하는가?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이것이 학자의 귀다.

 

매일 아침마다 새벽 미명마다 한밤중에 예수님은

그렇게 홀로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주님을 찾았던 이유가 학자의 귀가 열려 있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들었고 들었기 때문에

학자의 혀로 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먼저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한다.

 

한문은 상형 문자다.

물체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그런 글자다.

그래서 한문을 신용 글자라고도 한다.

이 글자는 船 (배 선)이다.

앞은 舟(배 주) 이다.

几 + 口 여덟 입을 말한다.

노아의 방주에 여덟 명이 들어갔다.

그래서 한자에서는 船 배라고 읽는다.

 

이렇게 한문은 전부 그 의미를 다 실제 모습을 그려낸

글자라고 해서 신용 글자, 상형 문자라고 한다.

 

또 다른 글자를 보자.

이 글자는 聖(성스러울 성)이다.

聖 자를 보면 귀(耳)와 입(口) 그리고 왕(王) 이란

글자의 합자이다.

밑에 있는 것은 (임금 왕)자가 변형된 것이다.

그래서 한학자들은 귀와 입이 임금처럼 되는 게

어렵다는 말로 한자 풀이를 많이 한다.

 

그런데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임금이 누구인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귀와 예수님의 입을 가져야

그 사람이 성스러운 성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같은 학자의 입과 학자의 귀를 가져야

(성)자를 붙인다.

 

세상에서도 어떤 일에 우뚝 서서 높은 사람들에게

(성)자를 붙인다.

음악에 최고인 사람을 악성, 바둑을 잘하면 기성,

글을 잘 쓰면 서성이라고 한다.

 

이 (성)은 어떤 일에 아주 으뜸이 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건데 사실은 (성스러운 성)에는 성인, 성자

그리고 재단에 있는 모든 것을 구별해서 (성)자를 붙인다.

성부, 성의..

사실은 이 (성)자가 예수님의 귀와 예수님의 입을 가져야

거룩한 것이고 이것이 성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귀를 가지고

예수님의 혀를 가져야만 곤핍한 자를

말로 도와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3 1~2을 보면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선생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고 쏟아낸 모든 말은

다 심판받아야 되기 때문에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하였다.

 

그러면서 말의 실수가 없어야 온전한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다 완전한 사람이 돼야 하는데 예수님의 귀와

예수님의 입을 가져야 성스러운 것이고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언어 행실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바란다.

 

이번 9월 달에 우리가 대속죄 제사를 앞에 두고

회개의 달로 정했는데 지난 한 주간 나의 입술과

나의 귀가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했는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한다.

 

학자의 입이 되려면 먼저 학자의 귀로 들어서

예수님처럼 새벽 미명마다 아침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우쳐야 한다.

 

저와 여러분은 세 가지 소리를 들어야 한다.

첫 번째는,

남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된다.

 

우리는 남의 소리를 잘 들어야 된다.

여러분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의 소리를 다 들으셨다.

상담의 기본도 그렇다.

상담의 기본은 그 사람의 형편을 보고 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만나면 맥도 잡아보고 혈색도 보고

혓바닥도 보고 하면서 아픈 곳을 듣는다.

그래야만 이 사람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아낼 수 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소리, 진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학자의 혀를 가질 수가 없다.

곤비한 자가 와서 말을 할 때 내가 그것을 다 들어도

내가 진리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그 곤고한 자를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리의 소리를 들을 귀가 있어야

학자의 귀가 된다.

예수님 자체가 진리이시다.

그분은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진리다.

이것이 학자의 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리에 입각해서 말을 해야

그것이 학자의 혀가 돼서 곤고한 자를 도와줄 수가 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고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살린다.

 

우리가 진리의 소리를 듣고 학자의 혀를 가지고

말해야 때에 맞는 말이 나오게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셨다.

 

세 번째,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역사의 소리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를 그 시대의 상황에 맞춰서

역사의 소리를 듣고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움직이셨다.

할렐루야!

우리는 때를 알아야 된다.

여러분 그래야 때에 맞는 말을 할 수가 있게 된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 역사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학자의 혀가 될 수 없다.

 

성경을 보자

마태복음 20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예수님은 인자의 때가 되면 그때마다 움직이셨는데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가 됐다는 것을 아셨고

또 헤롯에 의해서 고문당해야 되고

빌라도에게 정죄를 받아야 되는 그 시대 누구에게

무슨 일을 당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 역사 속에서 다 아셨다.

 

역사의 흐름을 알고 그 때를 알아서

예수님은 때를 따라 움직이셨다.

누가복음 13 31~36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떤 바리새인 하나가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말할 때

예수님은 32절에 "여우"라는 말을 하셨다.

거짓 선지자는 성경에서 여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이 오늘, 내일, 모레 3일 동안만 공생애를

살아가며 갈 길을 가셨는가?

여기에서 하루라고 하는 것은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다.

 

창세기의 엿새 가운데 바로 예수님은 셋째 날을 지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바로 그런 식으로 인류 역사의 과정들을

말하는 그런 3일을 말하고 있다.

 

이 3일 동안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때였고 너희 집은

황폐해져 갔고 그 이스라엘은 다 버림받고

이제 이방인의 교회 시대가 열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여

다시 올 때 그때 너희는 나를 볼 것이라 하였다.

 

예수님은 모든 때를 맞춰서 그 때를 따라 움직이고

그 시대 시대를 아셨다.

 

요한복음 12 13 말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때인데 갈라디아서에 보면

"때가 차매" 하였다

 

예수님은 다니엘의 70 이레의 예언을 따라서 69 이레가

됐을 때 그때 예루살렘 입성하셨다.

아무 때나 들어가셨던 것이 아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가 다 상달됐기 때문에

속죄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 때를 맞춰서 그 시대의 역사가

흘러가는 그 흐름을 보면서 역사의 소리를 늘 들을 수 있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시사를 알아야 된다.

역사를 알아야 되고 그 소리를 들어야 된다.

 

왜 그런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난다고

성경에 그렇게 예언이 되어 있다.

실제로 호적령이 내려져서 요셉 본향인

베들레헴에 가게 되었다.

성경에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에는 수 없이 많은

예언들이 되어 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우리가 때에 맞는 말을 할 수가 있고

학자의 혀를 가질 수가 있다.

 

여러분에게 이렇게 학자의 혀와 학자의 귀가 열려서

때에 맞게 곤핍한 자가 올 때 도와줄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 네 번째는,

이 학자의 혀와 학자의 귀를 가지게 되면 곤핍한 자를

도와주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본문 5~6 말씀을 보면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학자의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의 그 섭리를 듣고 깨달았기

때문에 순종하고 거역치 않았다.

 

그러면서 때리는 자들에게 자기를 다 맡겨서 자신을 내어줄

수가 있었던 것은 학자의 귀가 열렸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나를 향한 구약의 많은 예언이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리, 진리의 소리를 듣는 귀가 열려

있어야 어떠한 환경이 와도 그것이 자기의 때인 걸 알고

자기가 갈 길인 것을 알고 거기에 대해서 자신을 맡기고

위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학자의 귀가 열린다면 예수님처럼

누군가 나를 핍박하고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고

나의 모든 곳에 어려운 환경이 닥쳐와도

그것을 거역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면서

더 영적으로 성숙한 길로 가야만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의 환경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왜 나만 원통하게 이런 일을 당하는지에 대한 마음을

갖는 것 보다 학자의 혀와 학자의 귀가 있으면

그 혼란한 것들이 다 정리가 되고 나의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고 이런 길을 가라고 하시는구나하는

그 섭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환경이 와도 거기에 대해 수긍하면서

예수님과 같이 그 길을 순종하며 가야 한다.

 

여러분!

곤핍한 자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 자신도 곤핍하게 사는 고달픈 인생들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학자의 혀와 학자의 귀가 열려서

매 새벽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혼자 온밤을 지세우면서

주의 음성을 듣고 그 학자의 귀를 갖도록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의 음성을 듣고 그 역사의

소리를 듣고 그러면서 어려운 곤핍한 자를 만나면

거기에 딱 맞는 때에 맞는 말로 도와주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성품을 닮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과 같이 되어야 천국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혀가 열리고

예수님 같은 귀가 열려야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고

그래야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그래야 하나님의 합당한 자녀가 되어 천국 에 이르게 된다.

 

원망하는 입과 불평하는 입과 죄를 짓는 입술을 가지고

어떻게 천국에 가겠는가?

 

내 안에 먼저 학자의 혀가 이뤄지고

학자의 귀가 이뤄지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 속에 하나님 나라가 없는데

무슨 하나님 나라가 내게 올 수 있는가?

 

9월 달은 기도의 달이고 특별히 회개의 달이다.

우리의 부정한 입술들을 회개하고 나의 귀를 회개하면서

미디어도 끊고 세상 소리도 좀 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의 음성을 듣고

시대의 소리를 들으면서 누굴 만나면

그 사람의 모든 환경에서 예수님처럼

학자의 혀를 가지고 사람들을 도와주고

학자의 귀를 가지고 주의 음성을 들으면서

남은 생애 달려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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