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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성경 이해하기/영적성장론

영적성장론 3

by Andrew Y Lee 2020. 8. 6.

4)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부터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시기 전까지

 

(1) 모형적 진리

민수기 14-19장을 보면 성도들의 옛 사람 즉 자아를 깨뜨리는 과정에 대한 모형적 진리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모형적 진리를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간단히 요약하기로 한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있었던 백성들의 불신과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반역한 백성들 60만 명을 광야에서 죽이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산지로 올라가 가나안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크게 패배하여 호르마까지 쫓겨가게 되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길을 돌아다니던 중에 모세와 아론의 통치권에 대한 고라 일당의 패역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하여 모세와 아론의 통치권을 인정해 주심으로써 큰 시험이 끝나게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광야의 길을 다니다가 가데스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가나안 땅 정탐 이후부터 가데스에 도착할 때까지 죽이기로 작정하신 60만 명은 계속 죽어가고 있었으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새로운 60만 명은 계속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2) 모형적 진리에 대한 해설

 

하나님을 반역한 60만 명을 죽이기로 작정하심

하나님께 반역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죽이기로 작정한 60만 명은 성도들이 버려야 될 자아 중심적 행실 즉 옛 사람의 행실을 상징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되는 백성들 60만 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 중심적 행실 즉 새 사람의 행실을 상징한다.

 

에베소서 4:22-24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4:16에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하였다. 이 과정은 자아가 점진적으로 철저하게 깨어지는 과정이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쫓김

 

모형적 진리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에 하나님을 반역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산지로 올라가 가나안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크게 패배하고 호르마까지 쫓겨갔다는 것은 성도들이 마귀들에게 패배하면서 쫓기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이 과정을 통과할 때 성도들은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난 거칠고 사나운 환경들을 통하여 자아 중심적인 옛 사람의 행실 즉 육적 행실을 본격적으로 깨뜨리게 된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기간은 성도들의 성격이 다양하기 때문에 일정하지는 않으나 대략 6개월에서 1년 반 정도 걸리게 된다. 특히 성격이 강하여 혈기나 아집, 교만, 독선 등을 잘 나타내는 성도들은 이 과정에서 오래 걸리게 되는데 1년 반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천로역정

기독도가 십자가 언덕에서 내려가다가 잠자고 있는 자만(自滿), 나타(懶惰), 천박(淺薄)이라는 세 사람을 깨웠다. 이것은 모형적 진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탐 직후 모세의 말을 거역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산지로 올라가다가 싸움에서 패배하고 쫓겨 내려온 과정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은 좁은 문, 효시의 집, 십자가 언덕을 통과하면서 큰 은혜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충성하며 범사에 좋은 성과들이 나타나는 생활이 계속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만심이 생기게 된다. 또한 철저하게 절제하며 극기생활을 하다가 점점 대접을 받고 편하게 지내기를 좋아하면서 정욕에 사로잡혀 태만에 빠지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큰 시험을 당하게 하셔서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하기 때문에 천박 즉 사람들에게 천대와 박대를 당하게 되고 교만과 나타가 깨어져 겸손케 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고라의 패역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통과하는 도중에 고라 일당이 모세와 아론의 통치권에 대한 패역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은 성도들이 가나안 땅 정탐 즉 일시적 생명의 내주합일을 체험한 후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간 다음에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반역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나타난 역경 가운데서 철저한 영적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이 고라의 패역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칠고 사나운 역경들은 주로 관계가 먼 사람들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갖가지 중상모함을 당하는 시험들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성도들은 세 번째 연단과정과 비슷한 시험을 많이 겪게 되는데 특별히 많은 소유를 잃어버리는 쓰라림을 경험하게 되고 자아 중심적 행실들이 비교적 많이 깨어지는 가운데 연단을 받게 된다.

 

이 고라의 패역 과정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쫓기는 과정 이후부터 수년 또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데 이 과정을 통과하는 기간은 모든 성도들이 똑같지는 않지만 짧게 걸리는 성도들은 대략 6개월, 오래 걸리는 성도들은 대략 1년 반 정도가 된다.

 

그리고 고라당의 패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서 모세와 아론의 통치권을 확증해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고라의 패역과 같은 큰 시험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배반했던 사람들 앞에서 권위를 세워주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된 지도자로 인정해주시는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을 반역한 60만 명을 점진적으로 죽이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부터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영도자로 안수받기 직전, 계수할 때까지 죽이기로 작정하신 60만 명을 광야에서 죽이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새로운 용사 60만 명을 그 기간 동안에 준비하셨다.

 

이것은 성도들이 천로역정의 십자가 언덕에서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되는 체험을 할 때부터 간난산 꼭대기에 있는 미궁에서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을 때까지, 옛 사람의 행실 즉 자아 중심적인 육적 행실을 점진적으로 깨뜨리면서 새 사람의 행실 즉 하나님 중심적인 영적 행실로 정결하게 되는 과정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천로역정의 십자가 언덕을 통과한 이후부터 자아가 철저하게 깨어지고 점진적으로 정결하게 되는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매일매일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성찰할 수 있도록 조명해 주시기 때문에 아무리 거칠고 사나운 역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고 모든 생활의 구석구석을 감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표면적인 죄 즉 행실로 범하는 죄보다 내면적인 죄 즉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를 더 중요시하므로 성도들은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가운데 자아 중심적인 행실이 점진적으로 고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고 성인들의 전기를 많이 읽고 철저한 성찰과 참회를 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경건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라면 달거나 쓰거나 유익이 되든 손해가 되든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라도 철저히 순종을 하면 빠르게 자아가 깨어지고 영적으로 속히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사항 1자아 중심적인 육적 행실을 정결케 하기 위한 주님과의 숨바꼭질

 

성도들은 가나안 정탐 즉 천로역정의 십자가 언덕을 통과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자아(自我)가 깨어지는 영적 훈련을 받게 되는데 자아가 깨어질 때마다 필수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주님과의 숨바꼭질이다. 하나님께서 자아가 깨어질 때마다 주님과의 숨바꼭질을 반복하게 하시는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아가 깨어져서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도록 하시고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다.

 

주님과의 숨바꼭질

 

(이러한 주님과의 숨바꼭질을 반복하는 가운데 자아 중심적인 행실이 점진적으로 깨어지게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완성됨)

 

성도들은 이 과정을 통과할 때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생활에 빠질 때마다 주님과의 숨바꼭질 경험을 하게 되면 은혜를 풍성히 받고 새롭게 결단하고 빛을 따라서 열심히 생활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성도들은 심령 가운데 은혜가 풍성하여 빛을 따라 열심히 생활하다가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영적 생활이 침체되거나 약해지고 육적 생활에 깊이 빠지게 되는데 이때 물질이나 명예, 이성 등 여러 가지 세상적인 것들에게 사로잡혀 육적인 생활에 빠지게 되면 언제나 감찰하면서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손해를 보거나 고통을 당할지라도 사랑과 징계의 채찍으로 때리시고 그 육적인 생활을 밝히 깨닫고 부끄러운 행실을 고칠 수 있도록 영적 훈련을 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성도들이 상당한 기간동안 육적인 생활을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며 잠자코 계시다가 어느 정도 깊이 빠지게 되어 영적 생활이 침체되고 약해지면 마귀의 공격을 허락하셔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나 환경을 통하여 시험과 고통을 받게 하신다. 이때 성도들은 영적 생활에 대한 실패의식과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을 강하게 받으면서 갈급한 마음이 가득하게 되고 자신의 부끄러운 생활에 대하여 밝히 깨닫고 회개하면서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된다.

여기에서 성도들이 영적 생활에 대한 실패의식과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을 가지고 방황할 때는 주님께서 그 성도들을 멀리하며 숨으신 것이고, 모든 일이 자기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면 풍성한 은총을 받고 결단하게 되는데 이것이 숨었던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을 많은 성인들은 주님과의 숨바꼭질이라고 증거하였다. 자아가 깨어질 때마다 성도들은 이러한 주님과의 숨바꼭질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숨바꼭질 경험을 통하여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 가운데 들어있는 육적인 것들은 점진적으로 정결케 되며 예수님의 밝은 빛이 성도들의 양심과 인격을 점령하게 되고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된다.

이러한 주님과의 숨바꼭질 경험은 성도들의 자아가 깨어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다. 성도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빛과 어둠, 선과 악을 분별하면서 자아 중심적인 옛 사람의 행실은 점점 깨어지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 사람의 행실이 점점 많아짐으로써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완성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자아를 깨뜨리기 위하여 다양한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 주님과의 숨바꼭질을 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죄성과 정욕과 결점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포악성이나 아집성이나 음란성 등의 죄성이 각각 다르고 남녀간의 애정이나 혈육간의 애정 혹은 물욕이나 명예욕 등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자아 중심적인 옛 사람의 행실을 깨뜨리고 정결케 하기 위한 환경이나 조건들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의 자아가 모두 깨어져서 정결한 마음과 행실을 갖출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매우 다양하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마다 죄성과 정욕과 결점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발달정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수많은 환경 중에서 주님과의 숨바꼭질 경험이 진행되는 가운데 자아가 깨어지는 기간도 각각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자아가 깨어진 성도들의 생활모습과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성도들의 생활모습을 살펴보도록 한다. 대부분의 교회들 가운데는 순종을 잘하고 봉사를 열심히 하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교역자의 뜻에 불순종하거나 반대를 잘하는 성도들이 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담임교역자가 이러한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거나 도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과연 똑같은 마음과 행실을 가지고 섬길 수 있을까? 자아가 많이 깨어진 교역자들은 이러한 기회가 생겼을 때 사랑과 겸손과 양선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겠지만 자아가 많이 깨어지지 않은 교역자들은 빛의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차별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날 것이다.

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을 온갖 정성을 다 바쳐 도와주었는데 나중에 바로 그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선으로 악을 이겨라?,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 주라?는 빛된 말씀들을 온전하게 실천하기를 원하신다.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성도들은 이러한 환경을 만나게 되면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범죄하게 되지만 자아가 깨어진 성도들은 사랑과 인내, 겸손과 온유의 열매를 맺으면서 예수님의 형상을 더욱더 닮아가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고집이 강한 성도들은 교회나 가정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토론할 때 꼭 자기 주장만 관철시키려고 하는데 이러한 아집을 깨뜨리고 정결케 하기 위하여 주님과의 숨바꼭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과의 숨바꼭질 경험을 통하여 자아가 많이 깨어진 성도들은 범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잘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중요사항 2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 속에서 나타나는 자아의 구체적인 실례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자아를 깨뜨리실 때 크게 두 종류의 환경 가운데서 깨뜨리는데, 그 중에 하나는 형통하는 환경과 조건 가운데 나타나는 자아를 깨뜨리고, 또 하나는 거칠고 사나운 역경과 조건 가운데 나타나는 자아를 깨뜨리신다. 이와 같이 다양한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 나타나는 자아 중심적인 행실에 대하여 구체적인 실례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 날씨 때문에 나타나는 자아 : 무더위, 추위, 장마, 가뭄, 짙은 안개, 높은 습도, 건조한 공기, 뜨거운 햇빛, 많은 비가 내림 등의 좋지 않은 날씨 때문에 불평이나 짜증, 원망, 신경질, 욕설, 혈기, 분노, 탄식, 비방, 악담 등을 마음과 행실과 생활 가운데 나타낸다면 자아 중심적 행실이므로 모두 깨어져야 한다. 또한 맑고 좋은 날씨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경건하게 생활해야만 되는 주일인데도 친구들과 어울려 관광여행을 간다거나 여러 가지 육신적인 만족이나 쾌락, 이익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이러한 행실들은 모두 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환경들을 통하여 자아 중심적인 행실을 발견케 하시고 회개하도록 하심으로써 점점 자아를 깨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있을 때 영적 성장을 추구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만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분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아도 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 생활을 잘하려고 애쓰는 성도들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 자신의 부끄러운 생활모습을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자아가 깨어지게 된다.

 

) 세속적인 유행을 따라 나타나는 자아 : 주택이나 가구, 가전제품, 의복, 머리형태, 자동차, 신발, 화장, 용모 등 세속의 흐름이 변화되고 있을 때 그 유행을 따라 살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거나 생활이 변화되기를 원하거나 또한 그러한 유행을 따라 가지 못하는 환경 때문에 순간순간 불만이나 원망, 불평, 짜증, 신경질, 혈기, 분노, 미움 등등이 나타난다면 모두가 자아 중심적인 마음과 행실이므로 깨어져야 한다.

 

) 명절이나 애경사가 있을 때 나타나는 자아 : 추석, 설날, 환갑잔치, 결혼식, 생일잔치, 집들이, 개업식, 장례식 때문에 예배와 기도 드림, 성경 읽기, 전도, 구제, 봉사, 규칙적인 경건생활을 못하게 된다면 자아 중심적인 생활이므로 깨어져야 한다.

 

) 설교를 들을 때 나타나는 자아 : 성도들이 설교를 들을 때 좋다, 나쁘다, 은혜롭다, 지겹다라고 비평을 한다던가 자기가 듣기 좋은 설교만 들으려고 여러 교회를 옮겨다닌다던가 설교를 듣고 자기에게 유익이 되었거나 손해가 되었을 경우 지나치게 칭찬하고 좋아하며 과대평가를 하거나 불평을 하고 무시하며 수군거리고 시험에 빠지는 일들이 많은데 이러한 것들은 자아 중심적인 행실이다.

 

)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자아 : 성도들이 물질축복을 받았을 때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자랑을 하고 육적 쾌락과 만족을 얻기 위해 그 물질을 사용한다면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사람이다. 자아가 깨어진 사람은 물질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물질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아를 깨뜨리는 것이다.

 

) 음식을 대할 때 나타나는 자아 : 음식을 대할 때 구미나 식성에 맞지 않는다고 불만, 불평, 원망, 짜증, 분노, 신경질 등을 나타낸다면 육적 행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음식 맛이 좋고 먹음직하다고 해서 지나치게 만족스러워하고 기뻐하면서 먹는 행실은 하늘나라에서 상받을 것이 없는 육적인 것이다.

 

그리고 식성에 맞는 음식들이 많이 생겼을 때 폭음폭식을 한다면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것이다. 반면에 음식이 맛이 없거나 분량이 적거나 지나치게 맵고 짜고 싱거울 때 여러 가지 자아가 많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잘 극복하면서 인내와 사랑과 감사와 온유의 열매를 맺는다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많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 냄새를 맡을 때 나타나는 자아 : 싫어하는 냄새를 맡을 때 얼굴을 찡그리고 불평을 하거나 좋아하는 냄새를 맡을 때 코를 씰룩거리면서 기뻐하고 자꾸만 그 냄새를 맡으려고 하는 행실은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육적 행실이다. 실례를 들자면 예배를 드리거나 공부를 조용히 하고 있는데 누군가 방귀를 뀔 때 나타나는 반응이 사람마다 다양하다.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이 냄새를 맡을 때 얼굴을 찡그리거나 불평을 하거나 때로는 무슨 냄새냐고 하면서 방귀를 뀐 사람을 무안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자아가 깨어져서 사랑과 인내와 절제와 겸손과 온유의 덕으로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환경일지라도 태연하고 평안하게 덕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아를 깨뜨리는 영성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 소리를 들을 때 나타나는 자아 :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때 짜증을 내거나 얼굴을 찡그리면서 원망이나 불평을 한다면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것이다. 자기를 칭찬하고 높여주고 인정해주는 말을 들을 때 즐거워하고 더 듣고자하며 흐뭇해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행실이므로 깨져야 한다.

 

) 옷을 입을 때 나타나는 자아 : 성도들은 옷을 입을 때 자기의 성격이나 취향에 맞는 것만 골라서 입으려고 억지와 독선과 고집을 나타내는 것은 자아 중심적 행실이기 때문에 깨어져야 한다. 또한 자기의 취향과 성격에 맞는 옷이 생겼을 때 지나치게 기뻐하고 만족해하며 행복감을 표현하는 것도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육적 행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이나 원망, 짜증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강권하거나 억지로 입게 한다면 이것도 육적 행실이므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

 

) 사람을 만날 때 나타나는 자아 : 서로 성격이나 뜻이나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사랑과 존경과 칭찬을 많이 하고 또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을 만날 때 적극적으로 기쁨이나 만족을 표현한다면 자아 중심적인 육적 행실이므로 고쳐져야 한다. 반면에 기분을 나쁘게 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잘하며 손해만 끼치는 사람을 대할 때 얼굴을 찡그리거나 불평을 하고 무시하거나 미워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현하는 것도 육적 행실이다. 그리고 중상모함을 하고 비방과 아첨을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과 인내와 온유와 자비의 덕으로 대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 성격 가운데 들어있는 결점 때문에 나타나는 자아 : 성도들의 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조급함, 까다로움, 수다스러움, 경솔함, 느린 언행, 무뚝뚝함, 감정적인 성질, 외향적이거나 내성적인 마음씨들은 자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깨어져야 한다.

 

) 성도들의 마음과 생활 가운데 기쁨과 만족, 평안, 행복, 슬픔이나 걱정, 근심, 고민, 갈등 등이 생겼을 때 영적인 것인지 육적인 것인지를 의식적으로 분별하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자아 중심적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례를 들자면 헌차를 새차로 바꾸었을 때, 직장에서 승진을 했을 때,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을 때, 자녀의 성적이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면서 지나치게 기뻐하는 것은 육적인 기쁨이다. 반면에 자기보다 이웃이 잘 되었을 때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나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을 때 생기는 기쁨과 만족, 감사, 평안, 행복감 같은 것은 영적인 것이다. 또 자기는 손해보고 고통과 억울함을 당했을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과 행복, 기쁨을 주게 된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은 영적 기쁨이다.

 

천로역정

기독도가 허례(虛禮)와 위선(僞善)을 만나 대화하면서 동행하는 과정과 진충이 아담노인을 만나 유혹을 받는 과정에 대하여 알아본다.

 

기독도는 십자가 언덕에서 내려가다가 잠을 자고 있는 천박과 나타와 자만을 깨운 후에 얼마동안 길을 가다가 허례와 위선이라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동행하다가 간난산(艱難山) 입구에 도달하여 그들과 헤어진 후 간난산을 오르게 되었다. 진충(盡忠)은 끈질기게 유혹을 하던 음녀를 떨쳐 버린 후에 한동안 길을 가다가 간난산이 가까운 장소에서 아담 노인을 만나게 되었고, 쾌락과 품삯을 주겠다는 말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세 딸과 결혼시켜 주겠다는 말로 유혹을 받다가 큰 고통을 겪으면서 아담 노인을 물리치고 간난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여기서 기독도와 진충은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깨어지고 정결케 되는 영적 성장의 길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도와 진충이 각각 다른 길을 통과한 것처럼 기록한 이유는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과 환경에 대하여 서로 다른 면을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먼저 기독도가 허례와 위선이라는 사람들과 동행하다가 간난산 입구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성도들은 좁은 문과 효시의 집과 십자가 언덕을 통과한 다음에 많은 일들이 형통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봉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성도들은 겸손한 마음과 행실을 가지고 극기생활을 하면서 모든 유혹을 물리치려고 노력은 하게 되지만 무의식중에 마음속에 은근히 이익을 추구하는 욕심이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된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큰 사랑을 실천하는 것 같으나 마음속에는 불순한 욕심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도들이 사랑을 실천할 때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선하고 착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 가운데 불순한 동기와 탐욕이 있는 것을 보시고 위선자라고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이와 같은 부끄러운 생활을 많이 하기 때문에 기독도가 위선과 허례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번에는 진충이 아담 노인을 만나 세 딸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게 이끌리는 과정에 대해서 알아본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에게는 풍성한 육적 축복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킬만한 환경과 조건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마음에는 빛과 어두움에 대한 지식과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있기 때문에 육적인 행복을 자유롭게 누리지는 못하고 영성생활을 철저히 하고자 하는데 잘 되지 않으므로 생기는 갈등 가운데서 순간순간 악전고투하게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도들은 영과 육에 속한 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양심과 지성이 있기 때문에 육적 축복에 대하여 과거와 같이 감사하고 자랑하며 자유롭게 즐기지도 못하고 오히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물리치는 생활을 해야하므로 고민과 갈등이 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시간이 갈수록 육신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 저항력이 약해져서 소극적으로 싸우게 되고 자주자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끌려가게 되므로 빛을 따라 철저히 살려고 애를 쓰는데도 허례와 위선적인 행실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 진충이 아담 노인에게 끌려간 것은 성도들이 영적 생활이 약해져서 육적 축복의 물결을 저항하지 못하고 위선적인 생활을 많이 하면서 은밀하게 정욕적인 삶을 즐기는 것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다가 진충은 잘못된 것을 크게 깨닫고 아담 노인을 떨쳐버린 후 급히 간난산에 오르게 된다. 이것은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잘못된 행실과 삶을 크게 깨닫게 하시고 빛과 진리로 다시 무장하게 하시며 영적인 힘을 강하게 하셔서 모든 어두움의 세력 즉 육적인 마음과 행실들을 철저히 물리치고 밝은 빛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십자가 언덕에서 간난산 입구까지 걸리는 기간은 성도들마다 사역이나 생활환경이나 성격의 차이점이 다양하므로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성도들은 영적으로 앉은뱅이가 되어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성도들은 십 년이나 수십 년 정도 걸리기도 한다.

 

팔단진복

팔단진복에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다섯 번째 단계이다. 여기서 긍휼히 여긴다 함은 고통당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 재앙으로 인하여 불행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덜어주고 위로하며 자기의 것으로 동정을 베푸는 것을 가리켜 말한다.

 

이 과정은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주의적인 자아를 깨뜨리고 주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긍휼을 베푸는 선행의 열매가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긍휼을 베풀면 베풀수록 더욱 더 많은 축복 곧 긍휼히 여김을 받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대접도 많이 받고 사랑을 받으므로 육적 축복이 풍성해진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도 불순한 동기와 부끄러운 행실이 있을 때에는 사랑의 채찍을 맞고 시험고통을 당하게 된다.

 

 

 

 

5)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실 때부터 아모리, 바산, 미디안 군대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을 분배받기까지

 

(1) 모형적 진리

민수기 20장부터 여호수아 19장까지를 보면 성도들의 세 번째 연단과정과 뒤따르는 축복과정에 대한 모형적 진리가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 모형적 진리를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대강의 줄거리만 정리해 보도록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정월에 가데스라고 하는 장소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곳에는 물이 없었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되었는데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 제사장 아론은 호르산에서 별세하였고 그 뒤에 홍해의 옆에 있는 길을 지나가면서 식물이 박하여 모세와 하나님을 향한 백성들의 원망과 반역이 있었다. 이 반역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뱀에 물려 큰 고통을 당하였고 계속 진행하다가 아모리왕 시혼의 군대와 바산왕 옥의 군대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평지에서 발락왕과 발람선지자 그리고 모압의 음녀들의 유혹을 받고 범죄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녀들과 음행하고 우상을 경배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게 되는 범죄를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염병으로 크게 진노하셨다. 그리고 비느하스가 음녀 고스비를 죽이자마자 염병은 그치게 되었다. 그 후에 백성들을 계수하여 광야에서 죽이기로 작정하였던 60만 명이 모두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60만 용사들이 모두 준비된 것을 확인하였으며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후계자로 세웠다.

 

이 일 후에 비느하스가 용사들 12,000명을 이끌고 미디안왕들과 군대들을 멸망시켰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영도를 받으며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입구 길갈에서 할례를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받은 후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키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배하였다.

 

(2) 모형적 진리에 대한 해설

 

가데스 므리바의 생수

광야의 세 번째 연단과 뒤따르는 축복과정에 대한 모형적 진리에 대한 해설은 천로역정과 비교하면서 설명하도록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의 므리바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정욕적이며 세상적인 축복들을 용감하게 떨쳐버리고 세 번째 연단과정에 들어가기 위한 결단을 하도록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을 가리켜 말한다.

 

이 가데스 므리바의 생수는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허례와 위선을 떨쳐버리고 간난산 아래에 있는 샘물을 마시는 과정에 해당한다. 이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시기 전에 성도들은 허례와 위선이 자기의 행실 가운데 많은 것을 발견하고 떨쳐버려야 될 줄 알면서도 쉽게 되지 않기 때문에 무척 고민하며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그러다가 가데스 므리바의 생수 즉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할 때 성도들은 과감하게 결단하고 큰 손해를 보면서 철저한 영적 생활로 정진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므리바의 생수를 마실 때 일사각오의 정신, 엄격한 극기생활, 철저한 절제생활, 영웅적인 사랑실천과 규모 있는 경건생활을 위하여 큰 고난과 손해를 감내하며 명예, 권세, 물질, 고급스런 생활, 남녀관계, 부부관계 등등 모든 것들을 용감히 포기하게 된다. 포기하는 체험은 자아가 깨어질 때마다 조금씩 있었으나 이 가데스 므리바의 생수를 체험할 때는 큰 것들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며 거지같은 신세가 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얻기 위한 결심과 각오로 정욕적인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 번째 연단과정에 들어가는 성도들은 목표의식이 뚜렷하다. 이러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모든 역경들을 잘 극복하게 되며 순간순간 위로와 용기와 희망과 유익을 많이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목표는 성도들마다 견해가 다양하다. 어떤 성도들은 완덕, 어떤 성도들은 생명의 내주합일, 어떤 성도들은 영성결혼 혹은 사랑의 합일 등이 목표라고 하며, 어떤 성도들은 성결 또는 완전성화은총을 목표로 하며,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표현들은 각각 다르지만 성경적인 목표는 영적 할례받고 생명과를 먹는 경험 즉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고 생명이 내주합일되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진충의 경험을 보면 아담 노인의 세 딸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결혼시켜 주겠다는 강력한 유혹에 끌려가다가 잘못을 크게 깨닫고 아담 노인을 떨쳐버리려고 할 때 몸의 반쪽이 떨어져 버리는 것과 같은 큰 고통을 겪었다. 이것은 성도들이 육적 축복 즉 정욕적인 생활에 얽매어 허례와 위선에 빠져 있음을 크게 깨닫고 고민하며 괴로워하다가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면서 용기와 결단력을 얻어 육적인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때 마치 몸의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물이 박함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이 별세한 후 진행하다가 홍해의 옆길을 통과하게 되었을 때 식물이 박하다고 원망하며 반역하였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은 가데스 므리바의 생수를 체험할 때 허례와 위선에 빠지게 했던 정욕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 버리고 예수님의 밝은 빛을 따라 철저한 영적 생활로만 정진하게 된다. 그래서 세 번째 연단과정의 초기에는 풍성한 은혜체험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감격이 넘치고 적극적인 영적 생활을 하게 되는데 얼마 동안 지내다 보면 이미 육신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엄격하게 절제하고 있으므로 식생활을 비롯하여 경제적인 형편과 주변환경들이 극심하게 궁핍한 궁지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이때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였으나 나타나지 않자 순간적으로 낙심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성도들의 자아가 철저히 깨어지게 하고 깨어진 자아들을 계속하여 분리시킨다. 그리고 전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영적인 것들과 육적인 것들을 깨뜨려서 분리시키며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 하시는 것이다.

 

불뱀에 물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식물이 박하다고 불평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불뱀들에게 물려 고통을 당하게 하셨다.

이 과정은 성도들이 식물의 박함 과정에서 낙심을 하고 원망이나 불평을 하였으므로 더욱 더 온전하게 인내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마귀들의 공격을 받아 각종 시험풍파를 한동안 겪게 하시는 과정이다. 그때 성도들은 부족했던 행실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철저히 회개하고 더욱 새로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막다른 궁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면 풍성한 은혜와 위로를 받고 다시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는 과정이다.

 

아모리왕과 바산왕의 군대들과 싸움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뱀에 물린 사건 후에 광야의 길을 진행하다가 아모리왕 시혼의 군대와 바산왕 옥의 군대와 싸워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 경험은 성도들이 불뱀에 물리는 과정에서 괴로움을 당하며 큰 시험을 받다가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용기를 얻어 새롭게 결단하고 철저한 영적 생활을 해 나가고 있을 때 마귀들이 온갖 시험풍파를 일으켜서 범죄하도록 유혹하고 철저한 영적 생활을 방해하지만 거룩한 행실로 승리하면서 용사와 같이 생활하는 과정이다. 이때 성도들은 마음속에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죄의 법칙 때문에 극심한 고민을 하면서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귀가 일으키는 환난풍파는 중상모함 당함, 멸시천대 받음, 심한 경제적 어려움, 가족이나 친척, 친구나 이웃 그리고 교회로부터 버림받음, 배척을 당함, 철저하게 고립되거나 미움을 받음, 애매한 고난을 당함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성도들은 사랑과 인내와 겸손, 온유, 충성, 자비, 절제 등의 영웅적 덕행으로 모든 환난풍파를 잘 극복하면서 승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때로는 낙심과 좌절을 느낄 때도 있지만 성령의 도움을 받아 밝은 빛의 열매를 많이 맺는 생활을 하게 된다.

 

발락, 발람, 음녀들의 유혹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평지에 이르렀을 때 모압왕 발락은 발람 선지자를 초청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발람 선지자는 모압평지에 많은 바알신당을 세우고 음녀들을 풀어놓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케 하였다(2:14). 이 과정에서 성도들은 이미 많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 연단을 받고 지쳤으므로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육적 축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일시 동안 만들어 주신다. 그때 성도들은 엄격한 절제생활이 약해져서 육적 축복에 약간 이끌리기 때문에 마귀들은 좋은 환경과 조건들을 미끼로 사용하여 성도들을 유혹한다.

 

천로역정에서는 기독도가 가파르고 좁은 간난산의 길을 올라가는데 처음에는 달음박질하다가 지쳐서 걸어가게 되고 나중에는 기어서 올라가게 되었다. 간난산 중턱까지 올라갔을 때 거기에는 휴식정(休息亭)이 있었는데 기독도는 그곳에서 쉬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간난산이란 고난이 많기 때문에 올라가기가 어려운 산이라는 뜻이다.

기독도가 간난산을 처음에 달려 올라간 것은 성도들이 간난산 입구에서 풍성한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철저한 영적 생활을 결단하며 정욕적이고 세상적인 생활은 용감하게 떨쳐버리고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정진하는 모습을 가리켜 말한다. 그리고 걸어간다는 것은 많은 시험고통을 겪으면서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은 약간 식어졌지만 오직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빛을 따라 생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기어간다는 것은 계속되는 시험풍파 때문에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이 식어지고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끌려가는 상태로 험난한 시험풍파를 극복하면서 힘겹게 빛을 따라 사는 모습을 상징한다.

 

기독도가 휴식정에서 쉬다가 잠을 잔다고 하였는데 이 휴식정은 하나님께서 환난풍파에 지친 성도들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휴식정은 성도들이 간난산 입구에서부터 휴식정 전까지 올라가는 동안 주님의 밝은 빛을 따라 생활하면서 많은 시험풍파에 지쳤으므로 하나님께서 위로와 힘을 주시는 과정이다. 이때 성도들의 생활환경은 극심했던 시험풍파가 잠잠해지고 물질적 축복을 비롯한 정욕을 만족시켜 주는 환경조건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휴식정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성도가 육적 축복에 얽매여 빛을 따라 사는 엄격한 생활이 약해진 것을 상징한다.

 

염병과 음녀 심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음녀들의 유혹을 받아 음행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제물을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사 염병(染病)으로 징계하셨다. 그리고 제사장 비느하스가 모압의 음녀 고스비를 죽였을 때 염병이 그쳤다.

이 과정은 성도들이 발락, 발람, 음녀들의 유혹을 받는 과정에서 육적 축복에 얽매어 영적인 잠을 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각성시키고자 시험풍파를 일으켜 징계하시는 과정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마귀들에게 공격을 강하게 받으므로 성난 시험풍파가 일어나서 밝은 빛을 따라 생활하는데 극심한 방해를 받는다. 이때 성도들은 심한 불안과 내적 고민과 회의적인 마음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천로역정에서는 기독도가 회의(懷疑)와 억겁(臆怯)을 만나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워하시기 때문에 버림을 받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영적 고통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시험의 불길을 통하여 성도가 가지고 있던 아집과 지극히 작은 악습이라도 철저히 정화시키고 성도들로 하여금 더욱 밝은 예수님의 빛을 사모하며 실천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음녀 심판은 기독도가 미궁(美宮) 앞에 있는 발 묶인 사자들의 곁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세상적이며 정욕적인 사상을 가지고 철저하게 영적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을 유혹했던 마귀의 정체가 폭로된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이 과정을 통과할 때 마지막으로 자아가 철저하게 깨어지고 분리되어 마음과 행실이 정화되는 것이다.

 

계수와 율법선포 그리고 여호수아 안수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하고 신명기에 기록한 율법을 선포하면서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후계자로 세웠다. 여기에서 계수와 율법선포는 성도들이 완전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와 은총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성도들이 염병과 음녀 심판 과정을 통과하면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정화되었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위로와 말씀과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성도의 영 속에 내주합일되는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완전구원을 체험하게 되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할례를 받게 하고 가나안 7족을 정복하고 백성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는 사명을 가진 영도자로서 내주하시는 성령 즉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안수를 받고 모세의 후계자가 되는 순간 성도들의 영 속에는 생명이신 성령께서 내주합일되시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때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되고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경험이 시작된다(8:2; 벧후1:4; 6:5).

 

이 계수와 율법선포 그리고 여호수아가 안수받는 과정은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미궁을 통과하고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입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기독도는 미궁에 들어가 지혜와 명철을 받고 위로와 사랑을 받으면서 풍성한 은혜체험을 하고 난 후 미궁 안에 있는 군기고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게 되었다. 성도들은 세 번째 연단이 시작될 때부터 즉 간난산 입구부터 미궁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세월 동안 엄청나게 많은 환난과 고통을 받으며 오직 주님의 생명만을 사모하면서 철두철미하게 자아가 깨어지고 소유를 버리며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미궁에서는 이와 같이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면서 피곤한 심신을 쉬게 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와 사랑과 말씀과 은총을 받게 되는 경험이며, 전신갑주를 입는 체험은 하나님의 생명이 성도들의 영 속에 내주하는 체험을 가리켜 말한다.

 

이 전신갑주를 입는 체험에 대해서는 어떤 성도의 간증을 들어보기로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할 때 매일매일 극심한 시험풍파에 시달리던 중에 풍성한 위로와 사랑과 지혜와 은총을 3일 동안 받았고, 그 다음날 새벽 2시경에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30분 동안 의지와 정욕이 마음속에서 서로 논쟁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의지는 정욕에게 ?나는 지금까지 너 때문에 죄를 많이 짓고 살았기 때문에 결코 너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떨쳐버리려고 하였고, 정욕은 ?나는 지금까지 너와 함께 살아왔고 결코 너를 버리고는 살 수 없으므로 너는 꼭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의지를 어떻게 해서라도 놓지 않고 붙잡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논쟁이 마음속에서 계속되다가 230분쯤 되었을 때 갑자기 의지와 정욕이 서로 툭하고 끊어져버리는 것과 같은 체험이 있었고, 그순간 마치 몸의 크기와 똑같은 바위덩어리가 몸 속에 꽉 차게 들어온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된 것을 감각적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때부터 생명의 감각이 손끝, 발끝, 머리끝을 비롯하여 온몸에 신비롭게 체험되었다. 그리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생명과 평강의 감각이 몸 안에 충만하게 나타났고, 마음은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상태가 되었으며, 몸 안에는 내주하신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신비로운 내세의 능력이 감각적으로 풍성히 나타나게 되었다.

 

미디안왕들의 군대들과 싸움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백성 천만인 중에서 용사들 12,000명을 무장시켜 이끌고 가서 미디안왕들의 군대들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이것은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 싸움을 마지막으로 광야의 세 번째 연단과정이 끝나고 성도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성도들의 영 속에 내주하고자 했던 마귀는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실패하게 되자 분노하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은 육체적으로는 많은 고통을 받을지라도 영적으로는 온전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천로역정에서는 이 경험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기독도가 아볼루온과 단병접전(短兵接戰)을 하는 과정으로 상징하고 있다. 이 경험을 통과할 때 마귀들은 성도들의 눈에 보이게 나타나서 실제로 공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보이지 않고 몸이나 환경을 통하여 공격한다.

 

중요사항세 번째 연단과정에 대한 종합적 해설

세 번째 연단과정은 모형적 진리에서 가데스 므리바의 생수를 마신 이후부터 광야의 마지막 전쟁이었던 이스라엘 12,000명 용사들이 미디안왕들의 군대들을 멸망시킨 때까지이다. 그리고 천로역정에서는 기독도가 간난산 입구에 있는 샘물을 마신 때부터 아볼루온과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간난산을 통과하는 과정이 세 번째 연단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연단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며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소유들을 철저히 버리고, 세상적이고 마귀적이고 정욕적인 자아가 철저하게 깨어지며, 영적인 것들과 육적인 것들이 온전히 분리되어 마음과 행실이 정결케 될 때까지 극심한 연단을 받게 된다.

 

이 세 번째 연단과정은 식물이 박함, 불뱀에 물림, 아모리왕과 바산왕과의 싸움, 발락발람모압 음녀들의 유혹 그리고 미디안왕들의 군대들과의 싸움 등 성도들의 생활환경 가운데 악령들이 역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혹독한 시험풍파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영적 할례를 받고 생명과를 먹게 되는 경험 즉 하나님의 생명이 영 안에 내주하고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는 경험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빛을 따라 살면서 용감하게 모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 또한 이 목표는 역경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순간순간 큰 위로와 용기와 희망이 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마귀를 통해서 주시는 역경

 

성도들은 그동안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어왔으나 세 번째 연단과정에 접어들면서부터 주위 환경 속에 마귀가 만드는 거칠고 사나운 풍파들이 점점 강해지게 된다. 이때 성도들은 철저한 극기생활과 절제생활을 하며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고 흠 없는 경건생활을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게 된다. 명예와 권세도 물리치고 물질을 비롯하여 사랑하던 것, 아끼던 것, 좋아하던 것들을 외면하거나 버리게 된다.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기 위하여 세속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불의와 타협하는 일이 없게 되므로 과거에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들로부터 배반당하기도 한다.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리며 사람들에게 미움과 중상모략을 당하고 질병에 시달리기도 하며 또한 아내나 남편을 비롯한 가족, 친척들에게도 핍박이나 외면당하는 일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맹렬한 시련 속에서 성도들에게 남아있는 자아를 철저히 깨뜨리신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자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모든 육적 축복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어떠한 역경 중에서라도 그리스도 중심적인 말과 행동을 가지고 철저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강력하게 인도하신다.

 

) 모든 소유를 버리는 과정

 

광야의 세 번째 연단과정은 누가복음 14:33과 마태복음 13:44-46의 말씀과 같이 보화 즉 생명을 얻기 위하여 모든 소유를 파는 과정이다. 성도들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될 수 있다. 소유라는 것은 단순하게 물질적인 것들만이 아니고 에덴낙원에서 타락한 이후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속한 모든 것들을 가리켜 말한다. 다시 말해서 세 번째 연단과정은 주님의 뜻 즉 밝은 빛을 철저하게 따르기 위하여 크고 작은 모든 소유를 버리게 되는 과정이다. 또한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 가운데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마귀적이고 정욕적이고 세상적인 것들 즉 애굽적인 것들을 철저히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는 과정이다.

 

) 자아가 깨어지고 영적인 것들과 육적인 것들이 세밀하게 분리되는 과정

 

세 번째 연단과정은 지극히 작은 자아까지도 깨어지게 되고 영적인 것들과 육적인 것들이 분리되는 과정이다. 성도들의 자아는 첫 번째, 두 번째 연단과 뒤따르는 축복과정을 통과하면서 점진적으로 깨어지다가 세 번째 연단과정에서 철두철미하게 깨어지고 온전하게 정결해진다. 이렇게 자아가 깨어지는 광야의 훈련과정을 점진적 성화과정이라고도 한다. 히브리서 5:14을 보면 성도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한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연단을 받으면서 지각을 통하여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분별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성도들의 지성 가운데는 이미 빛과 어두움에 대한 지식이 있으므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느냐, 육신을 따라 가느냐, 또는 빛을 따라 사느냐, 어두움을 따라 사느냐를 깨닫고 분리되는 것이다.

 

)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정결케 됨

 

세 번째 연단과정에서 성도들은 생명되신 주님만을 소유하기 위하여 욥과 같이 철저하게 극기하며 영웅적인 덕행으로 육적인 세력과 싸우게 된다. 따라서 마귀가 가져오는 수많은 시험풍파 속에서도 빛을 따라 연전연승하게 되므로 행실로는 거의 범죄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의 가장 큰 고통은 마음속에 죄의 법칙이 순간순간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경험이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은 모든 환경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깨닫고 철저한 연단을 받게 된다. 그들은 양심의 빛이 성화된 성도들처럼 대단히 밝으므로 마음과 행실의 구석구석까지 성찰하면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정결케 된다. 따라서 성도들은 모든 행실을 통하여 사랑과 인내와 겸손 등 덕의 향기를 강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 실업자와 같이 되는 죄성과 정욕

 

세 번째 연단과정에서 성도들은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랑하게 된다. 그러므로 혈육간의 애정이나 남녀간의 애정, 친구간의 애정, 사물에 대한 애정 등 육신에 속한 애정들과 식욕이나 성욕, 물욕, 명예욕, 수면욕 등의 육적 욕망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된다. 또한 심령과 육체 가운데 뿌리 박힌 죄성의 지배를 받아 순간순간 마음속에 나타나는 생각이나 감정까지 철저하게 참회하며 고백하게 된다. 이와 같이 연단을 받으면서 죄성과 정욕은 실업자와 같이 되어 더 이상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을 지배하거나 더럽힐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의 은혜로 영 속에 뿌리 박힌 죄성이 제거되는 영적 할례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세 번째 연단과정은 영적 할례를 받고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기 위한 연단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사항십자가의 요한 성자가 증거한 ?영성의 밤?

 

십자가의 요한 성자는 ?교회박사? 혹은 ?신비박사?라고 불리우는 분인데,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고 이곳저곳에 수도원을 설립하였으며, 많은 수도자들과 성직자들과 성도들의 영성지도자로서 일생을 헌신하였다.

그분이 증거한 핵심적인 사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감성의 밤??영성의 밤?을 통과하여 사랑의 합일 즉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되는 목표에 도달해야된다는 것과 더욱더 영적으로 진보되어 하나님과의 친밀한 결합 즉 완덕(完德)에까지 성장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 요한 성자는 하나님과의 합일에 대하여 신비적이며 실제적인 체험에만 근거하지 않고 신학적인 모든 원리를 종합적으로 정돈하여 가르쳤으며, 경험과 지식 중에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된 내용과 명석한 논증으로서 체계를 이룬 분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자의 저서들을 보면 성도들이 하나님과 사랑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성의 밤? 즉 광야의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해야된다고 증거한 것을 볼 수 있다. 요한 성자는 세속적인 소유를 버리고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수도자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일생을 바쳤기 때문에 영성의 밤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 변화되어 가는 상태, 고통과 깨달음, 신비체험 등등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허드슨 테일러나 요한 웨슬리, 하천풍언 같은 성자들은 똑같은 성결은총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되어 영적으로 장성한 분들이지만 선교활동이나 여러 가지 선한 사업을 위하여 헌신한 분들이기 때문에 내면적인 영적 진리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정돈하여 발표한 저서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십자가의 요한 성자는 내면적인 영성생활에 대한 관찰력이 풍성한 분이었으므로 그가 저술한 책들을 보면 영성의 밤에 대한 견해들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를 다양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산발적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마치 나무에 잎이 너무 무성하면 열매가 많이 달려있다 할지라도 그 우거진 잎사귀들 때문에 열매가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영성의 밤과 생명이 내주합일되는 체험에 대해서 세밀하고 다양하게 설명은 많이 하였지만 이러한 진리를 종합적이며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정돈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십자가의 요한 성자가 지은 어둔 밤이라는 책과 일생동안 이 요한 성자의 가르침에 대하여 연구하고 보급하기 위해 헌신하였던 가르멜회 국제신학교의 신비신학 교수 가브리엘의 저서 사랑에 산다라는 책 중에서 ?영성의 밤?에 대한 진리를 인용하여 이해를 돕도록 한다.

 

메마름과 고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정화되는 ?감각의 밤?을 통과한 영혼들은 대부분 오랜 세월이 흘러간 후에 ?영성의 밤?에 들어가게 된다. ?영성의 밤?을 통과하면서 영혼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영적으로 정화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합일되는 경험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성의 밤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말이나 글로 자세하게 증거한 내용들은 많지 않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합일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영적으로 어른이 된 것이며 풍성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위대한 일을 하게 된다. 그들의 능력과 행위는 인간적이기보다 신령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성의 밤을 통하여 묵은 인간을 벗기시고 새로운 인간을 만드시기 위하여 성도들의 묵은 능력과 애착과 감성을 모두 벗겨버리고 또한 지성은 어둡게, 의지를 메마르게, 기억은 텅비게, 애착은 극도의 불안과 고민에 빠지게 하여 과거에 있었던 영적인 체험들로부터 느끼던 맛과 감각을 없애 버리신다. 사실 이 없앰은 사랑의 합일이라는 신비롭고 실제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영 안에 도입되기 위하여 요구되는 원칙이다.

 

영성의 밤이란 영혼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한 작용으로서 그 영혼을 육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에 대한 무지, 또한 불완전한 것들 즉 죄로부터 정화시키는 것이다. 관상가들은 이러한 경험에 대하여 주부적관상(注賦的觀想) 혹은 신비신학이라고 한다. 이 영성의 밤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은밀히 가르치시며 사랑으로 돌봐주시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부적 관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지나가게 된다. 이러한 관상은 사랑겨운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 중요한 결과를 만드시는데 그것은 당신과의 합일을 위하여 그 영혼을 씻고 빛내며 준비하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상생활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빛과 지혜가 매우 밝고 맑은 반면에, 그 빛을 받게 된 영혼은 어둡고 불결하다는 것 때문에 겪어야하는 괴로움이 매우 크다. 한량없는 하나님의 맑고 밝은 빛이 더러움을 몰아내기 위하여 영혼 가운데 비춰지게 되면, 그 영혼은 더 더러워지고 더 이상은 비참해질 수 없다고 느끼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크게 거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혼들은 이러한 경험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또한 이때 영혼들은 그의 육신적이며, 도덕적이며, 영성적인 연약함 때문에 심히 괴로워하게 된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이 신령한 관상이 영혼을 굳세게 만들고 강하게 사로잡기 위하여 강권적인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영혼은 자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많은데 더욱더 강한 사랑의 세력으로 붙잡아주시고 위로해주실 경우 자신의 부끄러움이 아주 심하게 느껴져서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때 육체의 감각과 영혼은 어떤 한량없이 더럽고 크고 무거운 짐에 눌려있는 것처럼 고생과 슬픔이 극심하여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하고 더 낫겠다는 마음으로 가득차게 될 지경이 된다. 이와 같이 어두운 세력의 억누름과 아주 무겁게 느껴지는 힘 가운데서 영혼은 은혜의 길이 다 끊어진 것만 같고, 평소에 의지하던 것들조차 다른 것들과 함께 다 잃어버린 것처럼 극심하게 느껴지고, 누구도 자기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영혼이 가장 심하게 아픔을 겪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운 문제점들 때문에 자기를 미워하시게 되어 캄캄한 어둠과 절망 속에 내어버리셨다는 심각한 생각과 느낌인데 이러한 경험보다 더 슬픈 영혼의 고통은 없다. 이러한 정화의 밤이 영혼을 조일 때면 죽음의 그림자와 그 비탄 그리고 지옥의 고통을 아주 생생하게 경험하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영혼들이 관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초월성 즉 그 존엄과 위대하심을 깨닫고 경험하는 중에 이와 비교되는 자신의 기막힌 빈곤과 비참을 통감하게 되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이 정화(淨化)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가장 큰 고통 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구미를 당기게 하는 세 가지 소유 즉 현세적, 육신적, 영성적인 것들에 대한 빈곤과 철저한 공허를 자기 안에서 아주 심하게 느끼는 까닭에 그 영혼은 스스로가 좋아하는 소유들과 좋아하지 않는 소유들 즉 죄악들과 결함의 비참함과 메마름과 지각의 공허와 어둠 속에 버려진 자신의 영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성의 밤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영혼을 온전히 정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모든 일을 관상을 통해서 하시게 된다. 이 관상 가운데서 영혼들은 육신적인 도움과 지적인 것들이 모두 끊어지고 없어지게 되기 때문에 마치 공중에 매달려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도 더 큰 고생을 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마치 불이 곰팡이나 쇠붙이의 녹을 태워서 없애버리는 것처럼 평생 가장 깊은 곳에 지녀오던 애집과 몹쓸 버릇들 즉 악습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말끔히 비우게 하심으로써 영혼을 정화시키신다. 이와 같은 애집이나 악습이 영혼의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영혼은 육신적인 것이나 영성적인 빈곤이나 공허 외에도 심한 불안과 내적 고민을 겪게 된다. 이러한 영혼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애집의 녹을 떨어버리고 정결케 되려면 철저한 자기 부정과 자기 말살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 어둔 밤을 통해서 오는 고독과 무의무탁(無依無托)하므로 말미암아 어떤 가르침이나 영성지도자를 통해서라도 위로와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당하게 되는 고통이 극심하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영혼의 정화를 끝내시기까지는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어떠한 약이나 수단방법을 동원한다할지라도 아무 소용도 없고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은 마치 손발이 묶여있는 사람이 캄캄한 지하감옥에 갇혀있을 때에 볼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고 아래에서나 위에서나 어떠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아주 빈곤하고 초라하고 연약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험은 영혼이 겸손하고 유순하게 되어 온전히 정화되기까지 겪는 고통이므로 하나님의 영과 하나가 될만큼 영혼이 가늘고 얇고 순일하기까지 있게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의 합일을 체험하도록 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시는 정도에 따라 다르고 정화의 강약과 시간의 장단에 따라 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화시키는 영성의 밤이 비록 강할지라도 참으로 순결하기 위해서는 그 연단기간이 몇 해를 끌게 된다. 영혼들은

 

이 영성의 밤을 통과하는 중에 고통이 경감되는 때도 더러 있어서 푸짐한 영의 교통이 수월한 가운데 하나님과의 벗다운 사귐과 평화의 맛을 크게 체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은혜를 푸짐하게 받는다 싶을 때면 아직도 불완전과 불결의 뿌리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고생이 다 끝난줄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고 영혼의 정화가 완성되기까지는 그 남아있는 죄의 뿌리를 덮어버릴만큼 풍성한 친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영혼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이 또 한가지 있다. 이 과정을 통과할 때 영혼은 수동적인 상태인데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일을 하시므로 영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 즉 기도를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일을 의식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며 세상일 같은 것은 더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혼은 대개 실신상태와 기억상실에 빠져 무엇을 생각했고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되는지 모르는 가운데 오랜 시간이 흐르게 된다. 심지어 자기와 관련되는 일에 마음을 쓰려고해도 도무지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람의 이성이 정화될 뿐 아니라 기억도 그 개념과 지각에서 정화되는 까닭에 영혼의 모든 것을 무로 돌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화가 없으면 영성의 맛을 마음껏 다 느끼고 흐뭇하게 맛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습관적이거나 현실적인 애호나 정붙인 것이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사랑이 합일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영의 그 심오한 맛을 절대 느끼거나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심은 영혼이 오직 당신을 위하여 일체의 낙을 멀리하고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세찬 사랑의 합일을 받을만한 자격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정화하는 방법을 통해서 합일을 주기 시작하신다.

[십자가의 요한, 최민순 역, 어둔 밤, 성바오로출판사, 1988, p62-100 중에서 인용]

 

이 영성의 밤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합일되는 날을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 무서운 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겸손의 덕으로 튼튼하게 단장시키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영혼으로 하여금 자기의 비참과 무능함을 심각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시고, 그 초인간적인 관상기도를 통해서 자기의 무()에 대한 확신을 얻게 하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성의 밤을 통과하여 정화된 영혼은 육적인 쾌락이나 교만에 미혹되지 않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은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될 것은 모든 성도들의 영혼이 언젠가는 반드시 완전히 정화되는 과정을 밟아야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모든 집착과 불완전에서 정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온전한 합일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며 살다가 죽었을지라도 그 영혼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절제없는 모든 욕망에서 온전히 정화되지 않았다면 반드시 연옥에서 정화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영성의 밤을 통과하는 영혼이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 가운데 닻을 내리고 있으므로 육적인 일은 아무 것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성도는 아직 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만 영혼을 정화하는 관상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상 이 과정에서 영혼이 견디는 모든 힘은 성령의 은혜로 영혼을 비춰주시며 쏟아주시는 사랑의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과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주도권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로 말미암아 영혼은 정화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화된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뜨거운 사랑이 생기고 차라리 천번 죽을지라도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또한 감각적으로는 낙담을 하며 절망에까지 끌려가는 듯하면서도 죄를 짓는 위험에서는 아주 등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도들이 영성의 밤을 통과하면서 행실이 정결케 되고 마음이 순수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아무 것도 거스르지 않게 되면 이때부터 하나님의 빛이 폭포처럼 흘러 들어온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그의 저서 중에서 이러한 체험에 대하여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집안에 들어오는 태양빛?과 같다고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태양빛이 문만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들어오는 것처럼 깨끗이 닦여진 영혼 안에 들어오셔서 큰 은사로 채워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태양처럼 당신을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려고 항상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완전한 자아포기로써 영혼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영혼 가운데 흘러들어 오시어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가브리엘, 부산가르멜수도회 역, 사랑에 산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p189-193]

 

팔단진복

팔단진복의 여섯 번째 단계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하여 양심의 빛이 밝아지고 선한 의지가 튼튼해지며 밝은 예수님의 빛을 따라 철저하게 생활하기를 좋아하고, 이 연단과정이 끝날 때 할례를 받고 생명이 내주합일되어 죄의 법에서 해방된 마음 상태를 가리켜 말한다. 또한 하나님을 본다는 말씀은 육체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이 성도들의 영 안에 내주하므로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한다.

 

할례산과 가나안 땅 정복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영도(領導)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입구 즉 길갈의 할례산에서 할례를 받은 후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다. 할례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남자들의 양피를 베어내는 것을 가리켜 말한다. 이러한 육체의 할례는 이미 교회시대의 이긴자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영적 할례에 대한 모형이다. 영적 할례란 영혼 속에 뿌리 박힌 일곱 가지 죄성이 굴러 떨어짐으로써 즉 제거됨으로써 의인(義人)이 되는 체험을 가리켜 말한다.

 

그리고 가나안 7족은 사람의 영 속에 뿌리 박힌 일곱 가지 죄성에 따라서 구분되는 지옥백성 일곱 지파를 상징한다. 따라서 가나안 7족이 멸망했다는 것은 죄성 때문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성도들이 죄성이 제거되었으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가나안 7족이 멸망당한 것은 7종 죄성이 제거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영적 할례를 받은 것과 가나안 7족이 멸망당한 것은 같은 이치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안수받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하고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땅 입구에서 백성들에게 할례를 주었고 가나안 7족을 멸망시켰다. 여기에서 여호수아는 내주하시는 성령 즉 생명의 모형이므로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가나안 7족을 제거하기 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성령께서 성도들의 영 안에 있는 죄성을 제거하면서 내주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영계의 천국이나 천년왕국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죄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도들의 영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천로역정과 비교해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가나안 7족이 살고 있던 가나안 땅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키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은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은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분배

여호수아가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킨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다.

여기에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일곱 족속을 멸망시켰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대로 성도들의 영 속에 있는 일곱 가지 죄성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생명수가 흐르는 천국을 상징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았다는 것은 성도들이 생명수가 흐르는 천국의 처소를 확보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성도들의 영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성도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국은 영원토록 생명수가 흐르는 처소이기 때문에 교회시대에 이 땅 위에 살면서 이 경지에 도달한 성도들의 영 속에는 폭포수처럼 생명수가 영원히 흘러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명수가 계속적으로 폭포수처럼 흘러 들어오는 체험이 없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성도라고 할 수 없다.

 

이 생명수의 폭주 경험은 광야의 신앙생활 중에도 경험할 수 있는 성령충만이나 성령의 불체험이나 진리를 깨닫고 은혜체험을 하여 기분이 좋은 상태나 입신체험 또는 고린도전서 12장의 여러 가지 은사들을 체험한 것 등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가리켜 말한다. 이 생명수의 폭주 경험은 청각이나 촉각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신비로운 체험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성도들은 요란한 폭포수나 사나운 소낙비가 쏟아질 때와 같은 소리나 봄비나 이슬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소리를 계속적으로 듣게 되고, 이마에 물이나 기름이 흘러내리는 것과 같은 생명수의 유입을 끊임없이 체험하는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 요한복음 7:37-39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도들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경험도 생명수의 폭주 경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명수의 폭주 경험을 하고 있는 성도들은 이미 천국의 기업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휴거된다는 것을 이미 교회시대의 이긴자들에서 알게 되었다.

 

참고사항하나님의 생명이 폭포수와 같이 유입되는 체험에 대한 증언

 

) 계시사역자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여기에서는 계시사역자인 L선생님이 기도할 때 나타난 생명수 폭주에 대한 계시를 이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생명수가 폭포수와 같이 유입되는 체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령한 은사이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강물이 성도들의 이마에 폭포수처럼 강하게 흘러 들어와 배에까지 이어지며, 그곳에서부터 온 몸의 구석구석까지 감각으로 알게 되는 실제적 체험이다. 이 체험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가장 큰 은사로서 끊임없이 유입되는 것인데, 다만 강하게 내릴 때와 약하게 내릴 때의 차이는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신령한 생명수이기 때문에 초능력이 나타나서 신비로운 천국의 평강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 생명수 폭주를 체험한 성도들의 증언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극소수의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광야에서 연단을 다 받고 정결케 된 후에 하나님의 생명이 폭포수와 같이 흘러 들어오는 체험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체험자들이 증거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한국의 ?감리교 교육국?에서 번역하고 출판한 신약의 성결이라는 책은 미국에 있는 감리교에 속한 신학대학의 교수 토마스 쿡의 저서인데 이 책을 보면 생명수의 폭주 체험에 대하여 ?요란한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다? 혹은 ?사나운 소낙비가 쳐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증거한 것을 볼 수 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40일 금식을 한 직후부터 ?은혜의 소낙비가 내린다?고 증거하였다.

중국내륙선교회의 창설자 허드슨 테일러 성자는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는 체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제 심령 가운데는 양자강보다도 더욱 힘이 있고 더 깊으며 더욱 넘치는 강물이 항상 흐르고 있으며 아무도 이것을 저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워치만 니 성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주관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자아가 다 깨어지고 나면 암흑의 밤을 잠깐 동안 통과한 후에 부활의 아침이 오게 되는데 그때부터 항상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고 간증하고 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이러한 체험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네가 너 자신을 완전히 허무한 것으로 여기고 또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철저히 끊어버리게 된다면 나는 풍성한 성총과 더불어 네 안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스페인의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였던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는 ?사랑의 공세 즉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의 물결이 공격하는 세력과 같이 흘러 들어온다?고 하였으며, 이 성녀와 함께 사역을 했던 십자가의 요한 성자는 ?하나님의 빛과 생명이 폭포와 같이 넘쳐 들어온다?고 하였다.

 

스웨덴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대 신비가인 스웨덴 보르그는 28년간 영계를 출입하면서 경험하고 깨달은 모든 내용들을 천국과 지옥이라는 책에 기록하였다. 이 책을 보면 성도들의 영혼과 몸 가운데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는 체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주님 자신이 사람에게 유입(流入)하는 것은 이마에서 시작하여 얼굴전체에 유입하신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마는 사랑에 상응(相應)하고, 얼굴은 그의 모든 내부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장 내적(內的) 천국에 있는 천인들은 그러한 유입을 명백히 알고 느끼며 그들은 그것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이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병상생활을 하면서 이 책에 나온 하나님의 복음진리를 증거한 K성도님은 생명수의 폭주 체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간증하고 있다. ?197114일 새벽에 소낙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생명수의 폭주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이마를 통하여 물이나 기름이 흘러 들어오는 것과 같이 촉감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생명수의 유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생명수 폭주 체험은 성령충만이나 성령의 감동

 

그리고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 체험들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생명수가 세차게 흘러 들어오는 이 체험은 청각이나 촉각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수가 강하게 흘러 들어오는 중심부는 양쪽 눈썹 사이에 있는 미간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수가 폭포수와 같이 유입되는 체험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체험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명수의 폭주 체험이 시작된 날부터 지금까지 만 32년이 지나갔지만 잠시동안이라도 중단된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증거하거나 대화할 때는 이슬비나 가을비처럼 약하게 체험되지만 조용한 시간에 혼자 눈을 감고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집중할 때는 소낙비나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생명수가 세차게 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잠잘 때는 대부분 생명수의 유입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확실히 의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생명수의 폭주가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내리지만 잠시라도 끊어진 적은 없습니다.?

이상과 같이 여러 성도들이 생명수의 폭주(暴注) 즉 성령의 폭주 체험에 대하여 개인별로 다양하게 표현을 하였지만 동일한 체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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