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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혼의 글

머리말 3

by Andrew Y Lee 2020. 7. 15.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지 200년이 되고 개신교가 들어온 지도 100 년의 세월이 흘러가지만 얼이 빠진 우리들은 아직도 종교적인 사대주의 와 식민주의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전해준 교파의 주형(鑄型)에 찍혀 죽은 교리를 금과옥조(金 科玉條)처럼 고집하면서 남을 정죄하고 이단시하는 독선과 아집과 교만이 교계에서 판을 치고 있다.

 

샤마니즘의 위장으로 구미신학을 비빔밥처럼 포식하더니 소화불량에 걸린 기독교 무당들이 독버섯처럼 돋아나 기복신앙으로 양들을 오도하고 있다.

 

한때 키에르케골의 실존철학이 전염병처럼 유행하면서 야스퍼스와 하 이데거, 니체와 샤르트르의 사상이 반추되고 소화되지도 않은 채 마구 잡이로 선전되었다.

 

실존사상의 병이 치유되는가 싶더니 바르트의 신학 이 어설프게 논의되고 성경을 비신화한 불트만의 흰 소리가 교계에 메아리치기도 했다. 조직신학을 공부하는 신학도들은 틸리히를 흉내내고 〈너 와 나의 관계〉를 떠벌리면서 부버를 엉터리로 설교하는 자들도 있었고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하비 콕스를 열변하는 얼뜨기도 있었다.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진 자들은 나인홀드 니버에 심취했고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반골(反骨)들은 본 회퍼를 탐독하기도 했다.

 

해방신학이 수입되고 도시산업 선교회가 생기고 알타이저의 ‘사신론(死神論)’까지 수입되어 교회시장에는 서양신학의 다양한 상품들이 화려하게 진열되었다.

 

보수와 자유주의 신학자 간의 끝없는 논쟁, 예수교와 기독교의 더러운 싸움, 기성종교와 신흥종교 간의 정통과 이단 시비 등으로 교계는 핵분열을 일으 키듯 찢겨졌고 온갖 유형의 교파가 급조되어 아파트 단지에는 십자가를 상품처럼 내걸고 신장개업을 한 전세교회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가 논의되어 메스콤의 파도를 타는 듯 하더니 판소리 찬송가 몇 편을 부르는 행사로 끝났다. 구미신학자들이 부는 마적(魔笛)에 놀아난 우리들은 꼭두각시의 춤을 추었을 뿐 한국인의 심성, 그 깊은 곳에서 흥겹게 울려 나오는 가락과 신들린 춤사위를 우리는 이날까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갓쓰고 양복을 입은 몰골로 어릿광대의 춤을 춘 모습이 우리들 기독 교인들의 자화상이었다.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녹아든 노래가락은 판소리의 한맺힌 가락과 흥겨운 서도민요(潟民謠), 구성진 남도창(南道唱)의 신들린 선율과 농악이지 바그너의 가극과 베토벤의 교향곡과 헨델의 할렐루야가 아니다.

 

마늘과 된장 냄새가 우리들의 체취이지 치-즈나 뻐터 의 누린내가 아니다. 선교사에게 잘 보여 외국으로 유학을 간 자들은 몇 년 동안 서양신학에 세뇌당하고 교파와 교리의 밀실에 갇혀 밀봉교육을 받고 돌아오면 남의 사상을 소개하는 〈거간꾼 신학자〉 내지 〈복덕방 교수〉로 전락되었고 돈으로 가짜 박사학위를 사가지고 돌아온 자들은 무인가 신학교의 교수 가 되어 히브리어나 헬라어 몇 마디를 지껄이면서 신학생들에게 자기의 무식을 위장하는 희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미 서양에서는 한물간 사상 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새 사상인양 선전하는 〈신학 오파상〉들이 주름잡고 있는 것이 한국 신학의 현주소이다. 히틀러의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풀로센부르크 형무소에서 처형당한 본 회퍼를 신앙의 영웅으로 추대하는 이 나라 신학자들이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강요당할 때 본 회퍼같은 신학자 한 사람이 탄생하지 못한 정신적 빈곤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있다.

 

남과 북이 이데올로기의 괴뢰가 되어 피비린 싸움을 하는 마당에 현존 하면서 불로흐나 부버같은 사상가가 탄생하지 못하고 있는 사상의 황무 지를 탄식하는 자각된 성직자가 과연 이 나라에 몇 명이나 있었든가?

 

일찌기 유(濡)·불 (佛)·도 (道)에 의해 윤간당한 한국인의 심성은 마지막 때를 당해 맑스교와 기독교의 꼬임을 받고 세계의 갈보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더럽혀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원효같은 위대한 화쟁혼(和諍魂) 이 있었고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서도 풍류의 얼을 고이 간직한 고 운(孤雲)이 있었고 썩은 선비들이 사색당쟁의 개판을 칠 때도 퇴계와 율곡과 같은 사상의 거봉들이 정신의 산맥을 융기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기독교의 원효’, ‘기독교의 고운’, ‘기독교의 퇴계와 율곡’은 없는 가? 이는 자각이 없는 얼빠진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서구신학에 오염된 종 교적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서 탈출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제는 남의 가락과 장단에 춤을 추는 괴뢰의 놀음을 그만두고 제 얼을 찾는 정신적 영적 성인이 되어 역사의 물음에 바른 해답을 제시할 줄 아는 자각의 구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교파의 길 아닌 하나님의 대도를 걸어가고 교리가 아닌 성경을 보고 개 안(開眼)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죽은 신학의 이론이 아닌 예수의 산 말씀 을 실천하는 〈사랑의 성도〉들이 일어나야 한다.

 

〈물질축복〉, 〈사업축복〉, 〈영혼축복〉을 떠벌리는 기독교 무당들에게 속지 말고 유치한 기복신앙에서 떠나 영원한 하늘을 향해 비상의 큰 날개를 펴야 한다. 잡다한 교리 의 선전, 비어(卑語)와 욕설로 설교하는 유치한 배우 부흥사들의 말장난, 유행가처럼 인기를 얻었다 사라지는 신학사상들도 성경의 자리에 돌아와 보면 다 들뜬 잡소리이며 까마귀의 지껄이는 소음들이다.

 

외래종교에 의해 윤간당한 〈한(恨)의 심성〉에 풍류도(風流道)의 거문고 줄을 다시 매어 심금의 올을 바르게 하면 하나님은 새 날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우리들 에게 계시할 것이다.

 

번개와 피와 아픔과 눈물과 고독 속에서 쓴 『성경의 원리』 상·중·하 세 권은 두 사이비 종교(기독교와 맑스교)의 괴뢰로 전락된 이 민족과 세계 앞 에 제출한 나의 피 묻은 각서(覺書)이다.

 

성경은 〈선(僊)의 문서〉인데 2천 년 동안 서양의 지혜는 이 도맥(道脈)을 발굴하지 못했다. 현묘(玄妙)한 풍류도(風流道)인 동방의 지혜는 낡은 하늘의 쪼각나고 흩어진 모든 종교 를 구원할 수 있는 새 날의 대기(大器)이며 더럽고 추한 모든 종교싸움을 종식시킬 화쟁(和諍)의 신기(神器)이다.

 

이 신기를 쓸 줄 아는 신부는 다시 오시는 예수를 신랑으로 맞이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개명(開明)할 것 이다.

 

성경은 보혜사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풀 수 없고(요 14:26, 요 16:7–8) 그 내오(內奧)한 마음에 새벽별이 떠오르지 않으면(벧후 1:19-21)깨달을 수 없는 신비한 문서이다.

 

백주에 난도(亂道) 난법(亂法)이 큰소리치며 곳곳에 거짓 목자들이 일어나 굿거리 부흥회를 열고 종교상인들이 공모하여 민족복음화니 세계복음화니 하면서 과장되고 허위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축출하는 그레샴 법칙 모양 정의는 불의에게 정죄당하고 복음은 비복음에게 이단으로 몰리고 진리가 비리(非理)에게 순교당하는 이 어지러운 세상나라에서 성경의 산으로 퇴수하여 하나님 앞에 정좌한 깬 혼이 몇 사람이나 될까?

 

선(禪)적 자리에서 고요히 기도하며 벌거벗은 적자(赤子)의 마음으로 성경을 고쳐읽는 가난한 마음 속에 예수의 샛별이 떠올라 대각(大覺)을 이루게 할 것이다.

 

새벽별은 정각자(正覺者)만이 볼 수 있는 계시의 심성(心 星)이다(계 2:28). 『성경의 원리』 상·중 권이 출판된 이후 곳곳에서 도적(道賊)들이 나타나 이 책을 도용(盜用)하며 오용(誤用)한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심지어 어떤 목사들은 이 책의 내용을 자기가 산에서 기도하다가 계시받았다고 선전하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아무에게도 선전된 일이 없고 신문광고 한 번 없이 서울에 있는 두어군데 서점에 나왔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기화(奇貨)로 종교상인인 삯군 목사들이 도용(盜用)하고 있지만 참 양들은 속지 않을 것이다.

 

모든 외래종교에 윤간당해 갈보로 전락한 한국의 심성들은 세계심전 (世界心田)의 때(垢)를 받는 바다가 되자.

 

늙은 갈보가 성처녀(聖處女)로 부활하는 날 동방은 밝아 세계의 빛이 될 것이다.



1981년 개천절 아침

 

 

선비헌(仙飛軒)에서

 

한밝 산인(散人) 식(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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