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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혼의 무지개/이스라엘

사상5

by Andrew Y Lee 2017. 8. 17.

히브리적 영성

[1] 한국사회와 지구촌의 위기 극복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성서적 영성 되찾기

1. 오늘의 지구촌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다음 4가지로 수렴할 수 있다.

   첫째, 자연과학 기술문명의 발전속도와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성숙과의 심각한 괴리
   둘째, 지구화의 강제적 세계경제 편제가 불러온 양극화의 심화와 전쟁,폭력 문제
   셋째, 지구촌의 교통 정보교류의 발달로 발생한 문화,종교의 갈등과 그 해결과제
   넷째, 자연환경,생태계 파괴가 불러온 생명위기 앞에서 생명윤리 및 실재관의 재정립

   위에 언급한 현대문명위기와 우리사회의 선교적 과제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은 부적절하고 무능한 상태에 빠져있다. 그 그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의 갈릴리 복음’의 원뿌리가 되고 예언자 신앙의 핵심인 ‘히브리적 영성’의 실종과 변질에 기인하는 바 크다.

  히브리적 영성은 하느님 신앙, 인간이해, 자연과 역사이해, 삶과 죽음이해에 있어서 헬라적 영성이나 아시아종교의 영성과는 구별된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세속주의와 거대한 경제적, 정치적 힘숭배 신앙에 오염된 종교의 자기정화 와 건강한 갈릴리 복음의 영성회복을 위해서 히브리적 영성에로 복귀가 절실하다.

[3] 히브리적 영성의 특징은 무엇인가?

    1. 존재세계는 창발적 과정이고 은총의 선물로 받으며, 열려진 미래를 향하여 ,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역사지평을 열고 나아가는 영성이다.

     * 세계를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창발적 과정’으로 보며, 새로움이 출현하는 ‘열려진 실재’로 파악하며, 창조주의 은총과 사랑의 선물로서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파악한다. (창세기 1장)

      * 히브리적 영성은 존재하는 만유가  합리적 법칙에 의해 반복운동하는 ‘합리적 질서’(Cosmos)라고 파악하는 헬라적, 동양종교적 실재관과 다르다. 히브리적 실재관은 ‘존재’(Being)보다는 ‘생성’(Becoming)에 더 관심이 쏠리는 실재관을 지녔고 존재세계는 ‘우주발생’(Cosmogenesis)이라고 이해한다.
      
      * 히브리적 영성이란 내가 생명있는 세계 안에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감사하며 감격해하고 이웃동료와 축제로써 향유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선하고 좋은 것이라고 본다.  생존을 지탱하기 위하여, ‘땅과 가축’이 중요하지만 '소유하는 일’이 ‘생명 있다는  사실’보다  앞서게 할 수 없다.

       * 히브리적 영성은 아브라함이 정처없이 하란을 떠나 나그네길을 떠나듯이,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열려진 순례자 의식을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며,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라고 본다(빌3:12). 물질도, 정신도, 우리의 몸도 변화될 것이라고 본다(빌3:21).

      2. 히브리적 영성은 사람(Adam)이란 흙(Adama)에서 연유하는 연약한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그 생명 안에 ‘하나님의 형상’ 곧  자기초월능력을 지닌 영물이라고 본다.

       * 히브리적 영성에서 인간이해는 매우 역설적이며 아이러니칼 하다. 인간은 본래 천상의 존재이거나, 신들의 자녀이거나, 영혼세계에 영존하던 영혼들의 화육체가 아니다. 히브리적 영성은 인간은 ‘흙과 먼지로’ 지어진 연약한 피조물이며, 땅위에 사는 짐승들과 같은 범주로서 동일한 ‘여섯째날’에 지음받고 지상에 출현한 것으로 이야기한다.(창1:24-31, 창2:7, 시90:1-6)
        * 어거스틴, 칼 바르트, 라인홀드 니버 등 탁월한 기독교 신학자들은 인간존재를 영/육 이원론으로 나누어 보는 헬라적 인간관을 부정하고 ‘영육통일체로서 인간’론이 히브리적 이라고 본다. 사람의 범죄와 타락은 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육체성이나 본능에 기인하지 않고, 매우 역설적 진실이지만 인간의 위대성 곧 그의 ‘자기초월능력과 자유’의 오남용에 기인한다.  사람은 자기가 피조물,유한자,상대적 존재,관계적 존재임을 부정하여 우쭐대고 지배하고 무한욕망을 추구하며 하나님과 동료인간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교만’에 떨어지는 존재라고 본다.
         * 히브리적 영성은 인간의 이성과 지식보다는 의지적 존재로서의 ‘자기초월적 자 아성(The Self)'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인류역사를  뒤돌아보면 인간의 이성과 지성도 인간의 이기심과 명예심과 권력욕에 ‘하인’으로서  복무했다는 것을 확증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는 지성인 니고데모에게 더 많은 지식이나 심오한 지성함양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 아니라 ‘거듭나는 것’(重生, Rebirth) 이 긴요하다고 말한다.
         

        * 히브리적 영성의 통찰에 의하면, 자기초월능력을 지닌 인간의 자아가 ‘창조성과 파괴성’, ‘신성과 마성’, ‘사랑과 미움’, ‘정의와 불의’, ‘겸손과 독선’, ‘선과 악’등등 양날검 같은 존재이므로, 인간본성과 역사의 운명에 관하여 천박한 낙과주의나 비관주의를 동시에 경고한다. : “정의를 위한 인간의 능력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고, 불의를 위한 인간의 경향성이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R.니버).

      3. 히브리적 영성은 인간의 개체성과 인간의 사회성이 맞물려있다고 봄으로서, 인간공동체성을 강조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 너와 나, 우리와 그들’이라는 ‘더불어 있음의 존재’라고 본다.

          * 히브리적 영성에 의하면, 인간이란 르네 데까르트 철학과 달리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이 존재한 후에, 타자와의 인격적 관계를 맺거나 사회적 계약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성이 나를 주체로 발생시킨다. 현대문명사회를 휩쓸고 있는 ‘개인주의’는 진실이 아니고 인간성을 파괴한다.
          

          * ‘더불어 있음의 존재로서 인간성의 기본구조’는 높낮음 없이 평등하게 서로마주 볼 수 있는 관계,두려움없이 서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열린소통의 언어관계, 정신적 물질적 자산을 서로 주고 받는 상부상조관계, 기쁨과 신명나는 어울림의 축제성이 중요하다(K. Barth) . 우리사회의 비인간화는 사회신분적 차별, 성차별, 언어생활의 왜곡과 타락, 언론기관의 집단적 이기심과 권력지배, 바리세적 선행, 모방문화와 축제의 상업화등이다.

       4. 히브리적 영성은, 야곱의 벧엘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 꿈이야기에서 ‘지금,여기’가 ‘하늘의 문’이며,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브니엘 체험의 장소’라고 강조하는 ‘창조의 영성’(마이스터 엑카르트)이다.

         * 히브리적 영성은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희망의 영성 이지만, ‘오늘․ 여기’의  삶을 창조적 책임성을 가지고 대하려는 건강한 생명신앙이다. 13세기 신비사상가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그 면을 ‘창조의 영성’이라고 부른다. 
         

        *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독교 교회사 속에서 복음이 지중해를 중심으로한 고대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전파되어 가면서, 헬라철학 특히 플라톤철학 및 신플라톤 철학과 만나 히브리영성이 변질되어갔다. 
        

       * 헬라철학체계와 만남으로서 기독교는 자기의 신앙을 사상체계와 교리로서 표현해내는 장점을 얻었으나, ‘사닥다리  꿈’의 비젼의 초점을 ‘여기․지금’이라는 창조현실로부터 초자연적 세계, 천계, 사후세계, 영계, 이데아세계로 강조점이 옮겨지게 되었다. 
         

       * 마침네, 히브리적 영성은 창조적 현실세계를 무가치한 것으로, 죄로서 가득찬 역사현실세계라고 기피 대상으로서 여기면서,  순수정신 세계와 영혼세계를 추구하는 영지주의적  영성으로 갔다. 결과, 한국 기독교계 일반은 자연/초자연주의라고 하는 이중구조의 편리한 이층구조 속으로 도피하거나, 일부 극단적 종말론자들은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여 사회의 빈축을 사게 되었다.

        5. 히브리적 영성의 중심맥락은 이스라엘 예언자들 신앙속에 활화산 처럼 다시 타오르게 되었다. 그 핵심은 정치권력과 종교속화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공동체 속에 인간다운 얼굴을 지닌 사회적 삶의 실현을 위하여 ‘정의,평등,샬롬’의 영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청하는데 있다.

           * 아모스와 호세아로 시작되어 미가예언자로서 총괄되는 히브리적 영성의 본질은 미가서 6:8절에 압축되어 표현되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正義)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謙遜)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  위의 히브리적 영성은 신약성경 야고보서에서 다시한번 명료하게 천명된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2:27)
 
         * 히브리적 영성은 오늘날 세계를 덮고있는 소위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치,경제,군사 권력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인류문명의 최종적 대안이념으로 당연시하는 이데올로기적 우상화를 용납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가난한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무한한 피해와 고난을 담보로하는 장미빛  부드러운 유토피아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역사적 실패를 경험한 좌파이념들의 경직된 유토피아주의를 용납해서는 더욱 더 아니된다. 대안은 히브리적 영성을 어떻게 정치,경제,사회, 문화 속에 스며들게 하여, 문화정신과 사회적 에토스를 저질적 물신숭배와 권력도취와 형제살인적 카인의 후예들의 파렴치를 개혁해내는 일에 달렸다. 현단계 인류의 성숙도를 감안하면 조직화된 힘의 균형을 통해서 ‘정의 원리’와 ‘평등 원리’를 통섭해가는 샬롬공동체 실현을 위한 진지한 노략밖엔 다른 뾰쪽한 대안이 없는 것이다(FTA 협정에 반대한 농민과 NGO의 경험).  

          6. 히브리적 영성은, 지구환경파괴와 생태계 파손의 위기를 겪으면서, 창조계 속에서 인류종(人類種) 의 올바른 위상 재정립 과제에 직면하여, 감상주의적 만물동체론적(萬物同體論的) 유기체 자연관이나, 기존 창지기 책임론을 넘어서서 ‘중추신경계적 유기체 몸’의 은유론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 린 하이트가 지적한바대로, 적어도 도덕적 차원에서일지라도, 기독교적 실재관이 자연훼손과 자연정복적 논리를 정당화시켜왔다는 비난을 겸손하게 받고, 변명대신 대안적 자연관(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설정)을 제시해야 한다.
             

            * 가장 대표적인 히브리적 영성의 자연신학 기초성구는 호세아서 2:21-23과 로마서 8:18-23이다. 거기엔 하나님, 하늘, 땅, 생명체, 인간이 구별되면서도 깊이 관계되어 있다. 함께 체휼하며 함께 신음한다.  거기엔 절대 타자적인 초월신도 없고, 범신론적 내재신도 없다. 오직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시는 유일하신 한 하나님(엡4:6)이 고백될 수 있다.
             

            * 생태학적 여성신학의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지구라고 부르는 유기체 한 몸안에서 인간종이  갖는 위상은 ‘청지기’ 은유보다는 ‘중추신경계’라고 생각하는 은유가 더 적당하다. ‘중추신경계’는 몸의 다른 기관의 덕분으로 형성되지만, 신체의 일부기관이지만  다른 기관과 비교할 때 오직 유일하게 몸 전체의 메카니즘을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종합판단을 내리면서 통제할 수 있는  의식적 기관이기 때문이다.

            7. 히브리적 영성은, 인간의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드리되,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로 인간을 초청하시는 놀라운 음성을 경외하는 맘으로 받아드리며, ‘빛도짓고 어둠도 지으신’ 하나님(사 45:7)이 우리가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 흙의 몸이 아닌 신령한 ‘영적 몸’(고전 15:42-49)을 덧입혀 주시리라는 영생신앙을 갖는다.

             * 히브리적 영성은 존재계와 생명계가 인간의 오감으로 경험하는 시공4차원의 세계에 국한 시키려는 인식론적 교만을 경계한다. 동시에 유한한 인간생명을 무한으로 연장하는 헬라철학적  영혼불멸설과 동아시아 종교의 ‘위대한 자연주의’에 제약받지 않으려고 한다.
             

             * 육체는 자연으로 빌려 구성된 것이므로 자연으로 환원된다고 본다. ‘몸의 부활신앙’을 육체소생적으로 생각하는 전과학적 신화론은 참된 히브리적 영성에 기초한 영생신앙이 아니다. 히브리적 영성이 기초한 성경적 영생신앙은, 오직 ‘만유를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자비,은총’에 대한 신앙에만 둔다. 18세기 독일신학자 프리드리히 외    팅거(Friedrich Oetinger)의 기도문으로 알려져 있고, 20세기 라인홀드 니버 가 평생 사랑했던 저 유명한 「고요함의 기도」(Serenity Prayer)는  히브리적 영성에 어울린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고요함을 우리에게 주소서: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주소서:
    두가지를 구별 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God, give us the serenity to accept what cannot be changed:
    Give us the courage to change what should be changed:
    Give us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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