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라 두려워말라 (마14:22-33)
오늘의 본문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직후의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보낸 후 따로 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먼저 오병이어의 기적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마리아 발또르따의 ‘하나님이시오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에 의하면 예수님 탄생을 축하했던 목자의 손자를 베드로가 양자를 삼았고, 그 아이가 보리떡 5개와 생선 2마리를 그날 내놓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1/6,1/4밖에 안 되는 작은 덩어리를 나누어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부당했지만 한 제자의 용기 있는 실천은 온전한 생선과 떡을 제공하는 기적을 낳았고, ‘과연 될까, 이걸 진짜 나눠줘야 하나’ 고민하던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의 놀라운 상황을 연달아 체험합니다. 남자만 5천명이니 계수되지 않은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2만 명은 족히 되는 엄청난 배급이 마치고 남은 양은 12광주리. 아마도 제자들은 그 기적의 열기, 기적의 현장을 더 나누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 더 우쭐대며 흥분의 기적을 나누고 싶어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가라앉히시려고 군중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십니다. 과연 우리였다면 눈에 보이는 작은 덩어리가 든 바구니에 손을 넣어 과감히 나누어 줄 수 있었을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제자들의 갈등이 바로 건축을 앞에 두고 있지만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답답한 상황과 흡사하다 여겨집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가셨고 제자들만 배에 남아 있는데 험한 풍랑으로 인해 배가 흔들립니다. 물결이 거세질수록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고, 급기야 살려 달라 아우성칩니다. 급박한 제자들의 형편을 알게 된 예수님은 환난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속히 가시기 위해 물위를 걸어가는 방법을 택하셨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오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에 제자들은 모두 놀랍니다. 그 와중에 베드로는 진짜 예수님이 맞다면 나도 걷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실제 걷습니다. 그리고 이내 물에 빠집니다.
우리는 생각의 배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배에서 내려와야 물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물위를 걸을 때는 주님만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을 놓쳐 물에 빠졌다면 베드로처럼 ‘주여 구원해달라’고 외쳐야 합니다. 내 힘으로 이루는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했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는 반드시 이룹니다. 아버지이신 그분을 의지할 때 우리를 둘러싼 풍랑이 멎게 됩니다.
은혜를 체험하고 능력을 받으면 반드시 시험이 오게 됩니다. 여러 차례의 부흥회로 은혜를 받고 기적을 체험했지만 각자의 생각의 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주님만 주목하며 그분의 도움을 구하지 않기에 성령의 도움이나 기적을 체험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단순한 수량의 개념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된 두 세 사람이 모였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형통과 은혜가 임한다는 개념입니다. 테레사 수녀, 무디 목사님 등 수많은 기적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기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건축을 하기까지 우리는 많은 기도가 필요하고, 건축을 이룬 뒤에 일어날 여러 가지 일들을 위해 지금부터 기도로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교회요, 그렇기에 특별한 사랑을 받아도 될 교회요, 교단입니다. 보다 더 분투하고 보다 더 부르짖어서 가정이 변화되고 지역사회에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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