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_daum->* 성자 실루안의 깨달음 1
1. 영적인 싸움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쟁터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영혼)이다. 마음은 그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도 깊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은 이 깊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이 깊은 마음은 다른 사람이 결코 들여다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그 진정한 심연은 바라다 볼 수 없다. 이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마음의 심층에 진입한 사람은 자신이 존재의 신비 속에 직접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마음의 심층에서는 그 끝에 이르는 길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영적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무척 난감하게 느껴진다.
2. 실루안은 어떤 환상을 체험함으로 소명을 붙잡게 되었고 그로 인해 광야 생활의 시기를 갖게 되었다. 그가 꾸벅 꾸벅 졸다가 살짝 잠이 들었을 때 한 마리의 뱀이 자기 입으로 기어들어 가는 꿈을 꾸었다. 그가 소스라쳐 놀라 깨었을 때 한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울렸다. "네가 꿈속에서 뱀이 입 속으로 들어가자 역겨움을 느낀 것처럼 내가 본 네 행실도 그러하구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다만 지극히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만 들었다.
그것은 인자한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목소리였고 이를 통해 그는 타락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사건 후 그는 자신의 삶에서 철저히 악을 제거하고 회개하였으며 강한 죄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죄를 회개함으로 용서받는 것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그는 계속 죄로 인한 지옥의 고통을 마음 속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격렬하고도 심각하게 자신의 죄에 대해 참회를 하였고 죄를 합리화하는 습관도 버리게 되었다.
3. 경험이 없는 순진한 영적 군사는 자기를 위한 기쁨까지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동안 수집해 놓은 영적 집중력은 슬며시 상실되고 육신의 정욕과 유혹으로 인해 마음이 번민에 사로잡히게 된다. 유혹의 생각들이 마음 속에서 즉시 좇아 내지지 않고 오래 머무른다면 틀림없이 세속의 쾌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죄의 힘은 놀라워 큰 것을 보고 느낀 자일지라도 그를 다시 지옥 불에 휩싸이게 한다. 또 그 죄에 대한 번민과 고통은 일생을 두고 붙어 다녀 용서를 통해 기쁨을 갖고 구원의 안도감을 느꼈을 때조차 또다시 그곳에서 돌연 멸망하고 말리라는 두려운 생각조차 들게 할 정도다. 이후에도 그는 수많은 죄를 거듭하면서 점차 영적 싸움에 수단을 배우게 되고 불순한 생각이 마음 속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힘도 기르며 이 와중에 자신이 보기에도 답답하다할 정도로 자신의 영적 성장의 더딤을 보며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오랜 영적 훈련만이 사람을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만든다.
4. 신앙의 지식인들은 수 없이 많으나 그들 중 그 지식을 얻을 때의 달콤함으로 인해 그 지식 속에 멸망하는 자들도 무척 많다. 이제는 그 얻은 지식을 모두 버리고 다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일에 전력으로 노력한 자들만이 생명을 얻게 된다. 오 그러나 이 일이 얼마나 어렵던가! 얻을 때는 너무도 기쁘고 감사했으나 버리는데 그 아픔은 얼마나 크던가!
5. 실루안은 기도 중에 자신의 창자를 꿰뚫을 정도로 환한 이상한 불빛 하나가 자신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과 동시 이 불빛이 은총에서 왔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그 생각을 스치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 후 그가 끊임없이 내면적으로 힘을 다해 기도했으나 진지성은 사라지고 회개의 영도 자취를 감추었다. 간신히 정신은 차렸으나 '회개의 영' 없는 기도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불빛을 본 후 마귀들이 그의 시야에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순진하게도 마귀를 사람으로 착각하고 대화하기도 했다. 하늘보다 높은 교만을 심어주고 때로는 지옥의 낙망으로 떨어뜨리는 마귀의 속삭임이 교대로 계속되었다.
영적 훈련생인 실루안은 거의 절망에 빠졌으나 이를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열정적으로 기도했다. 거의 온 밤을 서서 아니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또는 그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는 정도 등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은 고작 두 시간 정도였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마귀들의 괴롭힘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낙심하였고 절망과 멸망에 대한 공포가 그에게 엄습했다. 이런 영적 전투에서는 인간의 힘은 무력하여 아무 쓸모 없는 것이다. 급기야 그는 절망의 마지막 단계까지 내려가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지 않는다'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교회의 성상이 있는 곳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났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 가지고 오셨던 그 불과 함께 그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위대한 하나님의 빛이 그를 두루 비추자 그의 영은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며 새 생명을 받았다. 무한한 사랑의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전 존재를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성령 안에서 그의 모든 것이 열렸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성령이 주님을 자기 영혼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도록 그 마음을 열어주신 것이다.
6. 고행가의 눈물과 정서적 눈물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영적 군사에게는 정서적 눈물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의 눈물은 영혼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런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자의 슬픔에 의한 것이다.
7. 신앙과 회개는 인간의 자유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나 궁극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은 인간이 자유롭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은사의 척도는 인간의 자유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은총의 사역을 하나님이 미리 알려주신 사실에 얼마나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가리지 않고 그 은총의 빛을 비추이나 그 은총이 우리에게 미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고 아니 받는 사람의 자유에 달려있는 것이다.
8. 실루안은 비범한 이해력과 놀라운 직관력을 소유하였다.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신 후와 마찬가지로 그 전에도 그는 죄를 아주 깊이, 강력하게 인식하였다.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죄는 그의 심장을 찔러대었다. 참회할 때 그는 단순히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용서만을 구하지 않고 한 치의 후회나 한 치의 한숨도 없도록 살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실제로 하나님의 은총을 내면 깊이 느낄 정도로 완벽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였다. 즉 머리 속과 말씀의 문자적인 뜻에 입각하여서만 죄 용서를 바라지 않고 실제 자신이 그 순간 하나님을 만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용서를 구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에게 지옥의 실제적 고통을 체험하게 하심으로써 죄의 본질에 관한 지식을 깊이 온전하게 갖도록 인도하셨다.
9. 드디어 옛날에 그가 6개월 동안 경험했던 지옥과 같은 고통은 사라졌고 드디어 그의 심령은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인한 특별한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동안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흘러 넘쳤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 환상을 체험하고 나서 처음 얼마 동안 그의 영혼은 자신의 부활을 확신했고 참되고 영원한 빛을 보았으며 부활의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좋게만 보였다.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다 선해 보였으며 자연은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의 빛을 띠고 있었다. 힘은 더욱 넘쳐나는 것 같았고 육체는 날아갈 듯이 가벼워 더 이상 짐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영혼을 즐겁게 했고 그의 마음은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했으며 그는 세상의 모두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10. 그러나 이처럼 감격적인 첫 째의 은총에 비해 두 번째의 은총은 그리 황홀하지 않았다. 그 후로 얻어진 은총의 체험과 그 감격은 점점 덜하였다. 체험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마음 속의 평강과 기쁨은 점차 시들해졌다. 그 대신에 이전에 소유하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이런 당혹감을 해결하기 위해 신실한 자의 충고나 저술에 의존하였다. 사실 그가 얻은 은총은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아주 예외적이고도 특별한 정도의 높은 것이었고 또 그는 항상 끊임없이 저 자신을 쳐 복종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환상을 본 뒤로 사라졌던 악한 영들이 다시 출현해서 자신을 간혹 어둠에 휩싸이게 하고 죄악에 사로잡히게 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11. 기도할 때는 마음이 어떤 상상이나 부질없는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직 기도의 언어만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마음 속에는 종종 교화로운 생각들이 그럴듯한 말로 위장되어 선한 것이 아니면서도 현명하거나 심지어는 성스러운 것으로 가장되어 엄습하고는 한다. 오직 모든 잡스러운 생각과 상상으로부터 마음과 정신을 보호해주는 실천만이 악마의 세력과 계교로부터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12. 실루안의 전 존재는 하나님을 향해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영적 진보를 이루는 과정 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잡념이 섞여 있었고 악마가 유혹할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가 겪은 이상한 불빛은 참으로 거의 모든 수도자들에게 다가오는 당연한 순서였다. 이러한 중간 과정을 거침으로 그들은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13. 거룩한 수도자들의 생애나 저술을 통해 그리고 성산에 거하는 경건한 영적 선배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점차 영적 전쟁을 치루는 법을 익혀갔다.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눕지 않고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은 채 잠을 잤다. 그러면서도 내면적 순종을 배워 실천했고 자신의 의지를 죽이는 법을 배웠다. 검소한 식생활과 말과 몸짓도 되도록 절제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은 드물게 왔고 수많은 악령들의 괴롭힘에 밤마다 시달렸다.
14. 하지만 그런 갈등은 궁극에 실루안으로 하여금 한 치도 방심하지 않고 깨어있게 하는 유익한 갈등이었다. 끊임없는 기도와 특별히 성격화된 참을성과 담대함이 가져다준 정신의 민감성은 그에게 영적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고 감정에 대항하는 전쟁에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또 영혼을 훔치는 다른 감정에 의해 얼마나 잡스러운 생각들이 주어지는 지도 알게 되었다. 이런 갈등의 주목적은 은총을 깨닫게 하는데 있었고 은총을 완전하고 계속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서 뒤따르는 영적 투쟁에 견고히 대처하게 하였다.
15. 처음에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친히 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앙에 힘을 잃어버릴 것이다. 주님이 그 분에게 나타나신 지 15년이 지났을 지라도 악령과의 전쟁을 치르는 암흑 속에 실루안은 여전히 괴로웠다. 아무리 애를 서도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가 기도할 때 성상 앞에 거대하게 버티고 서서 어서 그가 무릎꿇기를 바라고 있는 악마를 보았다. 그 사이 기도실은 다른 마귀의 세력으로 가득 찼다. 실루안은 다시 의자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아픈 마음으로 애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주님, 당신은 제가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마귀들이 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여야 악마가 방해할 수 없는지 가르쳐 주옵소서" 그 순간 그는 "교만이 언제나 악마를 불러오느니라"라는 영혼의 음성을 들었다. 또 "네 마음이 지옥에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음성도 들었다. 이제 이 일이 있고 나서 그에게는 마음이 고통 속 지옥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조금도 두려움이 있지 않고 평화를 맛보았다. 참으로 낙심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전의 실루안은 종종 낙심하는 지경에 이르곤 하였다. 그리고 많은 세월 동안 힘든 투쟁을 통하여 영적 전쟁을 치루고 난 지금도 예전과 변함 없이 고뇌에 시달리고 실제 소망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상황은 연속되었다. 그러나 이때마다 주님을 생각함으로 절망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은총을 잃어버렸을 때의 그의 실망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다. 숱한 세월을 초인간적인 수고를 다하였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소망을 상실한 채 지내다가 기도 중에 악마가 눈앞에서 자신을 존중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때의 그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 때 주님은 친히 그에게 온전한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 기도의 본질은 추상적이거나 지적인 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죄의 뿌리가 교만이라는 것을 그의 영혼에 실제적으로 심어 주신 계시였다. 이를 통해 실루안은 지금까지 자기를 괴롭혀 오던 것의 실체를 깨닫고 그것을 물리칠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지고의 겸손은 하나님의 사랑과 분리할 수 없는 실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드디어 영원한 존재의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그에게 열리었다. 처음 경험한 주님의 환상은 형언할 수 없는 빛으로 채색되었고 충만한 사랑과 기쁨의 부활, 또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된 황홀한 감동이 어우러진 체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 그러한 벅찬 감격이 사라질 수 있고 또 기록된 말씀처럼 전혀 취소될 수 없는 성격의 은총이 되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 해결된 것이다. 주님께 받았던 그 은총은 아무도 빼앗아갈 자가 없다 하시던 그런 은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잃어버렸다면 이는 은총이 불완전했던지 아니면 실루안 자신이 그것을 수용할 수 없었던지 둘 중의 하나겠지만 이런 의문이 이제는 분명해진 것이다.
실루안 수도사는 왜 자기가 은총을 상실했는지 깨달았다. 그의 영혼은 그 환상을 소유할 만한 지식도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때 그는 겸손이라는 지식의 빛을 받았다. 이 때부터 그는 성경을 이해했고 성인들과 수도사들의 인생이나 작품 속에 나타난 많은 신비들을 깨닫게 되었다. 성 세라핌은 교회의 성찬식 도중에 주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체험한 뒤에도 은총이 사라져버리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자 삭막한 광야에서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천일 밤낮을 벌거벗은 채 바위 위에 서있었다. 또 성자 피멘이 제자들에게 "사단이 어디 있는지를 주목하라 그 곳에 나도 있느니라"고 말한 참 뜻도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이집트의 성자 마타리우스가 "당신의 심장 속으로 내려가라 그리고 거기에서 사단과 싸워라"고 말한 뜻도 알 수 있었다.
16. 추상적으로나 신학적으로가 아닌 체험적으로 자신의 삶을 통하여 사람이 우주적 악을 대적하여 영적으로 투쟁하는 곳은 바로 자신의 마음 속이라는 것을 각성했다. 죄의 가장 깊은 뿌리는 교만이라는 것을 영을 통해 알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을 분리시키고 세상의 불행과 허다한 고통을 초래케 하는 겸손의 최대의 방해꾼은 바로 절망의 어둠으로 인간을 휩싸고 있는 죽음의 근원인 교만이라는 것을 자각하였다. 그 때부터 그는 겸손을 배우는데 전심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 마음이 지옥 속에서도 절망치 않고 주님과 함께 있다는 확신으로 인내로서 싸우는 법을 그는 이제 터득한 것이다.
'나는 곧 죽어서 나의 저주받은 영혼은 지옥의 어둠 속으로 떨어질 것이네 나는 홀로 음침한 어둠의 불꽃 속에서 괴로워하고 나의 주님을 향해 당신은 내 영혼의 빛을 어디에 두셨나요 당신은 왜 나를 버리셨나요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라고 울면서 부르짖을 것이네' 이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17. 이제는 옛날처럼 은총이 그를 떠나는 경우가 없는 확신을 얻었다. 그는 은총을 가슴 깊이 의식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몸소 느끼며 하나님과 심오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깊은 평강이 그에게 찾아왔고 성령은 다시 한 번 그에게 사랑의 힘을 부어주었다. 그러나 그의 눈이 멀거나 어리석지 않았어도, 또 고통을 거쳐 지혜롭고 영적인 군사로 성장해 있어도 여전히 그 본성에 자리잡은 인간 본성의 연약함과 모순성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은총이 사라질 때 어쩔 수 없는 슬픔을 가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전에 그를 괴롭히던 악을 물리치는 능력을 받기까지 다시 또 15년의 세월은 흘러야 했다.
18. 점차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의 모습에 관한 슬픔이 그 기도의 주요 제목이 되어갔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랑이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일지라도 동시에 그것은 다른 어떤 고통보다도 큰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시는 잔을 마시는 것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의 마시는 잔은 화육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할 수만 있다면 마시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그 잔이다.
19. 그는 자신의 마음의 가장 깊은 언저리 곧 먼저는 그의 본성적인 마음의 심연에까지 내려갔다. 그리하여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심령을 발견하고 가장 심오한 영적, 형이상학적 존재의 핵심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다른 이의 존재가 자기와는 무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총이 커질수록 그 빛으로 밝혀진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어둠의 영역은 더 커지고 이에 대한 슬픔도 더 커진다. 또 축복이 클수록 애끓는 마음의 거룩을 향한 거룩한 몸부림의 고통도 더 커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잔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축복인 동시에 자신을 아버지에게서 분리시킬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잔이다.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는 이 잔을 할 수만 있다면 거두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두려움은 사실 이미 그동안의 삶을 통해서 극복된 두려움이었고 실제는 이런 영적 두려움이었다. 그의 두려움은 순수가 두려워하는 비 순수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성질의 것이었다.
20. 그의 눈에 그의 삶은 곧 그의 형제들이었다.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하여 자신의 개별적이고 영원한 실존의 본질적인 부분을 형성한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그가 보았던 것은 사랑에 요구되는 수준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공동체에 요구되는 수준이었다. 세상의 대 주재이신 이 사람의 아들이 마지막 심판 날에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행한 작은 일이라도 바로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은 모든 인간 실존의 총화이고 그 실존을 자신의 인격적 실존 안으로 끌어들이신다. 이 사람의 아들은 모든 인간을 자신 속에 용납하셨다. 그 분은 모든 아담을 받아 들이셨고 그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이런 마음으로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연약한 믿음 탈출하기 http://cafe.daum.net/talchulh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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