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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복

by Andrew Y Lee 2020. 12. 23.

믿음의 기복이 심할 때

 

인생에는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의 삶에도 기쁨과 슬픔이 공존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뜻하지 않았던 때에 갑자기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때에 절망적인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일을 미리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삽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우리 영혼의 닻과 같아서 파도에 이리 저리 흔들릴지언정 떠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의 유효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여름 실과 같이 쉽게 상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렘 17:9)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돌아서는데 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바뀌곤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을 의지하는 것은 물위에 떠다니는 나뭇잎을 붙잡고 자기도 물 위에 떠 있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임에도 사람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합니다. 마음에는 살아온 날들의 수많은 쓰레기들이 쌓여 있습니다. 많은 상처와 좌절, 절망과 슬픔, 고독과 분노, 두려움과 공포가 덕지덕지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자극이 이들 중 어떤 것을 건드리면 우리 마음은 순식간에 요동치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대개는 이성의 통제를 받아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조심하지만 종종 그 통제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하나님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깊은 곳에서 만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의심입니다.

 

생각은 우리를 속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생각하지만 드러나는 행동은 생각과 같지 않습니다. 생각으로 마음을 통제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이런 내면의 갈등 속에서 우리의 삶은 휘청거립니다.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행동은 그와 다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생각과 마음의 갭을 줄이는 일이요, 둘째는 마음과 생각에 켜켜이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일입니다.

 

생각과 마음의 갭을 줄이는 능력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릴 적부터 신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생각에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록 일찍부터 복음을 듣고 복음의 사고방식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생각이 세속적인 생각을 항상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생각이 ‘부패한 마음’을 만날 때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그 생각과 마음이 모두 성령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생각의 흐름이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고, 마음의 움직임이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생각 속에 자리 잡은 부적절한 많은 것들이나 마음에 자리 잡은 부정적인 요인들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성령충만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엡 5:18).

 

마음과 생각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여 사고방식과 생각의 흐름이 말씀의 틀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일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해야 조금씩 진전이 이루어집니다.

 

마음에 쌓인 쓰레기들은 종종 그 정체를 숨기고 있습니다. 자기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이 그 마음의 깊은 것들을 꼭꼭 숨겨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이 반복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나타날 때, 그 행동은 종종 숨겨진 마음의 비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들에 대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깊이 묵상하다 보면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던 쓰레기들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빛으로 조명할 때, 부정적 감정들은 처리되고 깊은 상처들은 보석과 같이 빛나게 됩니다(엡 5:13).

 

마음과 생각이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고, 그 안에 쌓인 것들이 진리의 빛으로 조명되어가는 과정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과정이고,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의 틀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은 우리들의 삶의 틀은 시간과 공간 위에서 견고하게 서야 합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주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틀의 문제입니다. 틀이 무너지면 삶도 같이 무너집니다. 이런 틀을 지키면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 자체가 어떤 공적이 되어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부패한 마음이 이런 일정한 틀에서 잘 다스려지며,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쉽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에서는 상번제를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씩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초막절과 같이 수많은 제사가 드려지는 날에도 상번제는 반드시 드려야 했습니다. 상번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올라 타미드’인데 올라는 번제, 타미드는 ‘연속해서, 계속적으로’라는 뜻입니다. 하루에 두 번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제사를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드린 것으로 받아들이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는 것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할 때, 그는 상번제를 염두에 두었다고 확신합니다.

 

믿음의 기복이 심할 때, 제일 먼저 점검해 봐야 할 분야는 상번제입니다. 시공간의 틀을 잘 지키고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실패하면서 믿음이 성장하는 기회를 상실합니다. 결심하고 며칠 또는 몇 달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중단합니다. 기분이 좋건 나쁘건, 좋은 일이 있건 아니건, 기쁘건 슬프건 매일 꾸준하게 일정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일평생, 죽는 날까지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꾸준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의 양은 각자 사정에 따라 적은 시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킬 수 있는 분량이 좋습니다. 이런 틀이 견고해지면 지경을 넓히고 믿음의 집을 건축하는 일이 용이해질 것입니다. 이 틀이 흔들리면 믿음도 인생도 같이 흔들립니다. 새해에는 시공간의 틀이 견고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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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유의집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미가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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