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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복선교사 이야기

by Andrew Y Lee 2020. 11. 21.

우광복선교사 이야기

 

지금부터 100여년전 한 젊은 선교사 (아버지, 프랭크 윌리엄스) 부부가 미국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을 받습니다. 이 젊은 선교사 부부는 공주를 선교 기반으로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1907년에 인천에서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우광복입니다. 영어이름은 조지 윌리엄스. 아버지 선교사는, 첫 아들의 이름을 한국의 광복을 기원하면서 한국식으로 우광복 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올리브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아버지 프랭크는, 독립 운동을 한 연유로, 일제에 의해 추방되어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선교사 사모님도 과부가 되어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놀라운 사실은 2년후 두 자녀를 데리고 다시 한국 공주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공주에 교회들을 세우는데 기여를 하고 47년간 사역하였습니다. 그런데 딸이 풍토병에 걸려서 죽었는데 우광복 여동생 올리브가 11살에 죽어서 영명동산에 묻힙니다. (1908~1919) 우광복은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나오고 미국으로 갑니다. 그러나 다시 한국으로 옵니다. 인천에서 태어난 조지 윌리엄스는 영명학교 졸업후 조부모가 있는 미 콜로라도주 덴버로 가서 고등학교와 의과대학을 마쳤습니다.

 

그때가 바로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하지 장군이 군정 책임자로 다스릴 때입니다. 1945년 경이었죠. 그때 영어와 한국말을 능통하게 할 사람이 필요 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의 아들 우광복(조지 윌리엄스)입니다. 우광복이 하지의 참모가 되어 정부수립에 관여 합니다. 그때 하지가 우광복에게 '자네가 한국 실정을 잘 아니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 갈 인재 50명을 추천해 달라'고 합니다. 우광복은 엄마와 상의합니다. 엄마가 추천해준 50명중 48명이 거의 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정부 수립할 때 요소요소에 기독교인들이 들어가서 나라를 세웁니다. 특별히 문교부 장관에 기독교인이 되어 미신 타파를 시작했습니다. 국방부장관이 기독교인이 되어 군대안에 군목 토대를 마련하여 하나님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헌 국회의 국회의원들이 거의 기독교인들이였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제헌국회 속기록 첫장을 열면 기도로 국회를 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48년 5월 30일 이승만 대통령은 이윤영목사에게 기도로 국회를 열것을 다음과 같이 주문합니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을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이때 기독교인이 5%도 안 되는 때 였습니다. 그런데 윌리엄스 사모님이 추천해준 50명의 기독교인들이, 각 분야에 들어가서 영향을 미친 결과 20년만에 5백만이 되고, 30년 만에 1천만 성도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기적이 어떻게 가능 했습니까? 미군정시절 우광복 Geroge Williams이 추천한 50명부터 시작했습니다. 우광복의 50명을 누가 추천했습니까? 바로 우광복의 어머니 윌리엄스 사모님이십니다. 이역 만리 타국에서 남편을 잃어 버리고 Frank Williams 딸을 잃어 버렸는데도 Oliver Williams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알의 밀알이되신 사모님 때문입니다. 우광복은, 1994년 87세 일기로 소천했는데 유언하기를 '11살에 죽은 내 동생 올리브가 공주 영명동산에 묻혀 있는데 내 동생 올리브 옆에 나를 묻어 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아마도 한평생 동안, 한국에서 풍토병으로 죽은 동생이 가슴에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지금 우광복의 묘가 동생 앨리스의 묘 옆에 나란히 있습니다. 공주시 영명학교 뒷산에 있는 우광복 선교사의 묘, 지금도 공주시 영명중학교 연역에 보시면 1906년 10월 15일에 윌리엄스 선교사가 이 학교를 설립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 뒷산에 가시면 우광복 선교사의 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비록 정식 선교사로 파송 받지는 않았지만, 선교사의 자녀로서, 또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평신도 선교사로서 특히 해방 후 한국 건국기에 기둥과 같은 역할을 했던 한국 정부와 한국 교회의 산 증인입니다. 이런 의식 있는 신앙인들이 많이 나와서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줄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참고로, 공주 영명학교는 영원한 광명 eternal light이란 뜻이며, 아버지 프랭크 윌리엄스가 1906년에 세운 학교입니다. 이 학교의 모태는 명선학당인데, 이 학교의 설립자는 엘리스 하몬드이며, 이 학교에서 유관순이 1913년부터 공부했습니다. 즉 엘리스 선교사 밑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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