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순례자들이 겸손의 골짜기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내가 꿈에 보니,
그들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가 한 언덕배기에 이르렀을 때,
경건이 무언가 생각이 난듯 갑자기 소리를 쳤다.
"저런, 크리스티아나와 그 일행에게 드리려던 것을
깜빡 잊고 그냥 왔네. 내가 다시 가서 가져 올께요."
그리고 나서 그녀는 물건을 가지러 돌아갔다.
그녀가 가고 없는 사이에,
크리스티아나는 길 오른쪽 조금 떨어진 수풀로부터
지극히 기이하고도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내 평생에 주님의 은총이
숨김없이 내게 나타났네.
그러므로 주님의 집이영원토록 내 처소가 되겠네."
그녀가 다시 귀를 기울여 듣자, 다음과 같이 회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렴, 주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니,
그의 자비는 영원토록 확실하네.
그의 진리는 항상 굳게 서 있어세세토록 보전되겠네."
크리스티아나는 누가 이 신기한 노래를 부르느냐고
분별에게 물었다. 분별이 말했다.
"저 노래는 우리 나라의 새들이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들이 항상 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꽃이 피고 햇빛이 따뜻하게 비치는 봄에만 노래를 부르는데,
그때에는 이 노래 소리를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답니다.
나는 노래를 들으려고 자주 이리로 오곤 하는데,
때때로 우리는 새들을 집에 가져가서 길들이기도 하지요.
새들은 우리가 우울할 때 매우 좋은 친구가 되어주며,
삼림과 숲, 적막한 장소를 쾌적한 곳으로 바꿔주지요(아2:11,13)."
이 때 경건이 돌아와서 크리스티아나에게 말했다.
"여기를 좀 보세요.
이것은 여러분이 우리 집에서 본 모든 것들의 개괄이에요.
보신 것 혹시 잊어버릴 때 이걸 보시면,
다시 기억이 되살아나 믿음이 굳건해지고
위안을 얻게 될 거예요."
그들은 이제 겸손의 골짜기를 향하여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비탈은 매우 가파르고 미끄러웠지만,
무척 조심해서 내려갔기 때문에
무사히 밑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골짜기에 도착하자, 경건이 크리스티아나에게 말했다.
"이곳은 당신의 남편이 악한 마귀 아볼루온을 만나 큰 싸움을 벌였던 곳입니다.
물론 당신도 그 이야기를 들었겠죠. 그러나 용기를 내세요.
여러분에게는 안내자요, 보호자인 담대 씨가 있으니, 좀 더 편안히 여행할 수 있을 겨예요."
이 말을 하고 나서 경건과 분별 두 처녀는,
순례자들을 안내자에게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 담대 씨가 말했다.
"우리는 이 골짜기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화를 자초하지 않는 이상,
여기는 우리에게 해를 끼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크리스챤이 아볼루온을 만나 격렬한 싸움을
벌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소동은,
그가 산을 내려 오면서 미끄러졌기 때문에
생긴 결과 였습니다. 내려오면서 미끄러지는 사람은,
누구나 여기서 싸움을 만나게 되지요.
그래서 이 골짜기가 사나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누가 여기서 어떤 놀랍고 무서운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만 듣고서, 이 곳에 못된 마귀와 귀신들이
득실거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여기서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입니다.
이 겸손의 골짜기도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여느 골짜기들처럼 기름진 곳이지요.
내 생각에 우리가 찾아 보면,
어디엔가 크리스챤이 왜 여기서 그렇게 고생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있을 듯 싶군요."
이때 야고보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보세요. 저기 기둥 하나가 서 있는데,
그위에 무언가가 적혀있는 것 같아요. 가서 뭐라고 적혀 있는지 봐요."
그래서 일행은 기둥으로 갔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크리스챤이 여기까지 오기 전에 미끄러진 일과,
그가 여기서 당한 어려움을 보고, 이후 사람들은 경고를 삼으라.'
안내자가 말했다.
"보세요. 크리스챤이 왜 여기서 고생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있을 거라고 했죠?"
그리고 나서 그는 크리스티아나에게 말했다.
"크리스챤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여기서 그런 일을 당했지만,
그들을 결코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려운데,
세상에서 이러한 산은 매우 드뭅니다.
이제 그 착한 크리스챤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그는 지금 안식에 들어가 있고,
또 원수와 용감히 싸워 승리를 거두었으니까요.
우리도 시험을 당할 때 그처럼 용감히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위에 거하시는 분께 기도드립시다.
다시 이 겸손의 골짜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이곳은, 요 근방에서 가장 훌륭하고 비옥한 땅입니다.
기름지기가 이를 데 없고, 여러분이 보다시피, 대부분이 목초지입니다.
만약 우리들처럼 누가 여름철에 이곳에 온다면,
그리고 이곳에 관한 아무 선입견 없이,
다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길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면,
여기서 큰 즐거움을 얻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 푸른 계곡과 저 아름다운 백합화를(아2:1; 약4:6; 벧전5:5)!
나는 또한 이 겸손의 골짜기에 좋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근면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하였으므로).
정말 이 땅은 비옥한 곳이라서 수확을 많이 거두지요.
어떤 이들은 여기서 곧장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언덕과 산을 오르는 수고를 더 이상 하기 싫어서죠. 그러나 길은 길이니만큼 끝이 있는 법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길을 가다가,
그들은 자기 아버지의 양떼를 치고 있는 한 소년을 보았다.
그 소년은 매우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용모는 아주 순박하고 복스러웠다.
그는 앉아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담대 씨가 말했다.
"들어 보세요. 저 양치기 소년이 뭐라고 하는가."
그리하여 저들이 귀를 기울이자, 소년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낮은 곳에 있는 자는 떨어질 염려를 하지 않으며 아래에 있는 자는 교만함이 없네.
겸손한 자는 항상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리.
나 가진 것 많든 적든 이제 나 만족하겠네.
주여, 제가 더욱 만족하옵는 것은, 당신이 저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짐 가득 지고순례길을 가는 자요,
이 세상에선 보잘 것 없더라도이후에 세세토록 복 받으리."
이때 안내자가 말했다.
"저 소년의 노래가 들립니까?
그는 가슴에 마음의 평안(heart's ease)이라는 약초를
품고 있기 때문에, 비단과 우단 옷을 입고 있는 자보다
더 즐거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다시 우리가 하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예전에 우리 주님께서 이 골짜기에
오두막을 지으신 일이 있었지요.
그는 여기 내려오시는 걸 무척 좋아하셨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풀밭 위를 걷는 것도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세상의 소음과 번잡이 없지요.
세상에는 소음과 혼돈이 가득 차 있지만,
겸손의 골짜기에만은 한적함과 평정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묵상을 하기 어렵지만,
여기 오면 묵상하는 데에 방해받을 일이 없지요.
이 골짜기는 순례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습니다. 비록 크리스챤이 여기서
아볼루온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는 했으나,
예전에 지나간 사람들 중에는,
여기서 천사를 만나기도 하고,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고,
생명의 말씀을 얻기도 했습니다(호2:4,5).
아까 내가 우리 주님께서 예전에 이곳에 오두막을 지으시고,
여기서 산책하시기를 좋아했다고 말씀드렸지요?
거기에 덧붙여 말씀드리지요.
주께서는 이 땅을 사랑하며,
지나다니는 자들을 위해 연금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 돈은 저들이 계속해서 이 길을 지나다니며
용기있게 순례길을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일정한 절기마다 저들에게 신실하게 지불됩니다."
그들이 계속 길을 나아가는데,
사무엘이 담대 씨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 골짜기는 저희 아버지와 아볼루온이 싸움을 벌인 곳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서 그 싸움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네요. 이 골짜기는 너무 크거든요."
담대: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망각의 초원(Forgetful Green)' 바로 다음에
좁은 통로가 하나 나오는데,
거기서 너희 아버지와 아볼루온이 싸움을 벌였단다.
실제로 그곳은 여기서 가장 위험한 곳이란다.
왜냐하면, 순례자들이 공격을 당하는 때는,
항상 그들이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어버려
자격 없는 자가 되는 경우이기 때문이지.
거기서 다른 이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단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거기 도착하거든 또 하기로 하자.
거기 가면 틀림없이 싸움의 흔적이나,
그것을 증거하는 기념물 같은 것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거야."
그때 자비심이 말했다.
"이 골짜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여행해 온 그 어느 곳 못지않게
훌륭한 곳이라고 여겨져요!
여기는 제 마음에 쏙 들어요.
저는 마차 지나가는 소리나 수레 털그럭거리는 소리가 없는
그러한 곳이 좋아요. 여기서는 별로 방해받지 않고도
명상에 잠겨, 내가 누구며, 어디서 왔고, 무슨 일을 해 왔으며,
나를 부르신 임금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곳에서 생각에 잠기는 사람은,
마음이 깨어지고, 정신이 녹아,
그 눈이 '헤스본의 연못'처럼 될 거예요.
이 '눈물 골짜기'를 똑바로 통과하는 자는,
이곳을 우물로 만들 것이며,
하나님께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내려 주시는 비가
'못을 채울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신자들에게 포도원을 주시겠다고 하신 곳도,
바로 이 골짜기입니다(아7:4; 시84:6; 호2:15).
그리고 그들은 크리스챤이 아볼루온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던 것처럼
노래를 부르며 이곳을 지나갈 것입니다."
안내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나는 이 골짜기를 여러 번 왕래했는데,
여기 있을 때보다 더 좋은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인도했던 수많은 순례자들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을 내가 돌봐 주리라.'(사66:2)."
이제 그들은 조금 전에 언급했던 싸움 장소에 도달했다.
안내자는 크리스티아나와 아이들과 자비심에게 말했다.
"여기가 바로 싸움 장소입니다.
크리스챤은 이 자리에 서서 싸웠고,
아볼루온은 저기 있었습니다.
내가 흔적이 있을 거라고 말했죠?
자, 여기를 보세요.
이 돌들 위에 당신 남편이 흘린 피자국이 있지요?
그리고 아볼루온이 사용한 창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 않습니까? 또 보십시오.
두 사람이 싸우는 중에
서로 자기의 위치를 유리하게 만들려고
발로 땅을 두드려 놓은 흔적이 있지요?
그리고 저들이 헛치는 바람에,
맞고 깨어진 돌 조각들을 좀 보세요.
참으로 크리스챤은
그 싸움에서 대장부다운 기세를 발휘했지요.
거기 헤라클레스가 있었을지라도,
그처럼 용감하게 싸우지는 못했을 거요.
아볼루온은 싸움에서 지자, 다음 골짜기로 도망갔지요.
그곳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불리는데,
우리도 앞으로 그곳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보세요, 저기 기념비가 서 있지요?
저 위에는 크리스챤의 싸움과 승리가 새겨져 있어
그의 명성을 영원토록 기리고 있습니다."
기념비는 바로 길가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거기로 가서 기록된 글을 읽었다.
그 글을 다음과 같다.
"여기서 크리스챤이 아볼루온과 서로를 굴복시키려고
지극히 이상하고도 지극히 진실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는 사나이답게 용감히 싸워 마귀를 패주시켰으니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기념비를 여기 세우노라."
이곳을 지나 그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섰다.
이 골짜기는 지난 번 골짜기보다 더 길고,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다시피,
각종 악한 것들이 출몰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두 여인과 아이들은
별일 없이 이곳을 지나갈 수 있었다.
때가 마침 낮인데다, 담대 씨가 지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죽은 사람들의 신음소리 같은 것을 들었는데,
그 소리는 대단히 큰 신음소리였다.
그들이 듣기에, 이 소리는 크나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발하는 애곡소리 같았다.
이 소리에 소년들은 부들부들 떨었고,
여인들도 창백하고 파리해졌지만,
안내자는 그들에게 안심하라고 타일렀다.
그들이 좀 더 나아가자,
마치 땅 밑에 빈 구덩이가 있는 듯이
땅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또 그들은 뱀이 '쉭쉭'대는 것 같은 소리도 들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때 소년들이 말했다.
"이 음울한 곳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나요?"
그러자 안내자는 용기를 내라고 권면하면서,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함정에 빠질 염려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일러 주었다. 이때 야고보가 몸이 아픈듯
비틀대기 시작햇는데,
내가 보기에 그 원인이 두려움인 것 같았다.
그 어머니가 해석자의 집에서 받은
정신 나게 하는 음료 한잔과
노련 씨에게서 얻어 온 약 세 알을 아이에게 먹이자,
소년은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골짜기의 중간쯤 통과햇을 때
크리스티아나가 말했다.
"저 앞에 뭔지 이상한 게 보이는 것 같은데, 생전 처음 보는 형태네요."
요셉이 물었다.
"엄마 뭐예요?"
크리스티아나:
"고약하게 생겼구나, 애야, 아주 고약해."
요셉:
"그런데 엄마, 그게 어떻게 생겼어요?"
크리스티아나: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구나. 지금 과히 멀지 않은 데까지 왔다. 저런, 아주 가까이 왔어."
담대: "자, 무서워서 못견디는 사람은 내 가까이로 오세요."
악귀는 계속 다가왔고, 안내자는 그를 막으러 나섰다.
그러나 악귀가 막 담대 씨와 만나자,
그는 모든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때 일행은 얼마 전에 들었던 말씀을 상기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약간 정신을 가다듬은 그들은 계속해서 길을 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뒤를 돌아본 자비심은,
마치 사자처럼 생긴 것이
성큼성큼 따라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짐승은 공허한 포효 소리를 내었는데,
그 울음 소리에 골짜기가 울렸고,
안내자 외의 모든 사람들 마음에는 공포가 퍼졌다.
짐승이 다가오자,
담대 씨는 순례자들의 뒤로 가 일행을 모두 앞세웠다.
사자는 계속 같은 속도로 다가왔으며,
담대 씨는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사자는 저항이 있을 것을 눈치채고는,
물러서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벧전5:5).
그리하여 다시 안내자를 앞세워 가던 일행은,
길 밑이 전부 구덩이로 되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들이 구덩이 위로 건널 준비도 갖추기 전에,
자욱한 안개와 어둠이 그들을 덮쳐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순례자들이 말했다. "아뿔싸! 이제 우린 어떻게 하죠?"
그러나 안내자가 대답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어떤 결과가 생기나 두고 봅시다."
길이 막혔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들은 원수들이 떠들며 달려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또한 구덩이 안의 불길과 연기도
쉽게 분간이 되었다.
그러자 크리스티아나가 자비심에게 말했다.
"이제사 불쌍한 내 남편이 어떠한 난관을 돌파했는지 알겠어요.
이곳에 대한 소문은 이미 많이 들었지만, 직접 와 보니 정말 엄청나군요.
불쌍한 사람! 그이는 이곳을 밤새 혼자 지나갔대요.
그가 이 길을 거의다 지나갈 때까지 날이 새지 않았고,
원수들은 그를 갈가리 찢으려고 동분서주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만,
직접 여기 와 보기 전까지는, 이곳이 정말 어떤 곳인지 아마도 모를 거예요.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잠14:10).
이 길을 가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담대: "이는 마치 큰 물 가운데 있는 것과,
깊은 물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지요.
또한 이는 바다 밑바닥에 있거나,
산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영원한 빗장으로 땅에 갇히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사50:10)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나는 이 골짜기를 여러 번 왕래했고,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도 당했었지만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내가 자랑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해 주신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자, 우리 다 함께 하나님께 빕시다.
우리에게 빛을 주셔서 어둠을 물러가게 하시며,
저 악귀들뿐 아니라,
지옥에 있는 모든 귀신들을 다 꾸짖어
물러가게 하시도록요."
그리하여 그들은 울며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광명과 구원을 보내주시어,
그들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의 발걸음을 막았던 구덩이가 없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골짜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길을 갔다. 이때 어디선가 지독하게
역겨운 악취가 풍겨나와그들을 몹시도 괴롭혔다.
자비심이 크리스티아나에게 말했다.
"좁은 문과 해석자의 집,
그리고 어젯밤 우리가 묵었던 집에 있던 즐거운 것들은
여기언 하나도 없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이 길을 지나야만 우리를 위해 예비된 집에
갈 수 있게 하신 한 가지 이유는,
그 집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를
더욱 절실히 깨닫게 하시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안내자가 말했다.
"사무엘아, 대장부답게 말을 참 잘했다."
사무엘이 말했다.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햇빛과 좋은 길을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게 될 것 같아요."
안내자가 말했다. "머지않아 이곳을 벗어나게 될거다."
다시 길을 걷다가 요셉이 말했다.
"아직도 골짜기 끝이 안보이나요?"
이에 안내자가 말했다.
"네 발이나 조심해라.
이제 곧 함정투성이의 길에 들어서게 될테니."
그리하여 그들은 발을 조심하며 계속 나아갔지만,
함정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함정 사이를 지나고 있을 때,
그들은 왼편으로 한 사람이 갈가리 살이 찢긴 채
도랑 안에 던져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안내자가 말했다.
"저 사람은 부주의(Heedless)인데,
길을 가다가 저렇게 되었죠.
저기 누워 있은 지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그가 붙잡혀 살해당할 때,
주의(Take-heed)라는 사람도 함께 있었는데,
주의 씨는 화를 모면했지요.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는지,
상상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순례길을 가볍게 생각하여,
안내자도 없이 길을 떠나곤 하지요.
불쌍한 크리스챤!
그가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건,
하나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또 그 자신이 착한 마음을 가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러면 변을 당하고 말았을 거에요."
그 길의 거의 끝에 이르렀을 때,
일행은 길가에 있는 굴을 보았다.
이 굴은 예전에
크리스챤이 지나가다가 보았던 그 굴이었다.
거기에서 철퇴(Maul)라는 이름의 거인이 하나 나왔는데,
그는 억지 궤변으로
젊은 순례자들을 현혹시키곤 하는 자였다.
철퇴는 담대 씨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일을 하지 말라고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이 일렀느냐?"
그러자 담대 씨가 말했다. "무슨 일 말이냐?"
거인이 말했다.
"무슨 일이냐니! 그걸 몰라서 묻느냐? 하여튼 내 오늘 너의 일을 끝장내 주마."
다시 담대 씨가 말했다.
"글쎄, 싸우기 전에 무슨 일로 싸워야 하는지 이유나 알자."
이때 여인들과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거인이 말했다.
"너는 우리 나라를 도적질하고 있어. 가장 악질적으로 말이다."
담대 씨가 말했다.
"이봐, 막연한 말은 그만 두고 구체적으로 말해 봐."
그러자 거인이 대답했다.
"네가 사람들을 납치하는 술수를 부리고 있다는 게다.
네가 여자와 아이들을 모아 이상한 나라로 데려가기 때문에,
우리 주인의 왕국이 약화되고 있단 말이다."
이에 담대 씨가 답변했다.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죄인들을 설득해 회개시키는 것이 나의 임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이끌라는 명을 받았다.
만약 이로 인해 네가 시비를 건다면 얼마든지 오너라.
겨루어 주마."
그리하여 거인과 담대 씨는 마주 다가갔다.
담대 씨는 칼을 뽑아든 반면, 거인은 철봉을 손에 잡았다.
그들은 지체 없이 싸움에 돌입했는데,
거인의 첫 공격에 담대 씨는 무릎을 하나 꿇었다.
이를 본 여인들과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얼른 기력을 회복한 담대 씨는
힘껏 칼을 뻗어 거인의 팔에 부상을 입혔다.
싸움은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는데,
열이 얼마나 높았던지,
거인의 코에서 쏟아져 나오는 김이
마치 끓는 가마 가마솥에서 나오는 김 같았다.
그후 두 사람은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였다.
담대 씨는 기도를 올렸으며,
여인들과 아이들도 싸움이 끝날 때까지
줄곧 한숨을 쉬며 부르짖었다.
잠시 쉬면서 숨을 돌린 두 사람은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담대 씨가 있는 힘을 다해 칼로 내려치자,
거인은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거인이 외쳤다.
"잠깐, 기다려, 내가 일어날 때까지."
담대 씨는 신사적으로 거인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싸움에 들어갔는데,
거인이 내려치는 철봉에
하마터면 담대 씨의 머리가 산산조각날 뻔했다.
거인의 철봉이 빗나가자,
이를 본 담대 씨는 전력을 다해 그에게 달려들어
거인의 다섯 번째 갈빗대로 아래를 푹 찔렀다.
이에 거인은 비틀거리면서 철봉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그러자 담대 씨는 다시 칼을 내리쳐
거인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이에 여인들과 아이들은 기뻐 뛰었고,
담대 씨는 구원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 저들은,
그 자리에 기둥을 하나 세우고,
거인의 머리를 매달아 놓고는
여행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다.
"이 머리의 임자는순례자들을 괴롭히던 자다.
그는 저들의 길을 막고닥치는 대로 욕을 보였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안내자인 나 담대가 일어나
순례자들의 원수였던그를 쳐서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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