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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Francisco Goya, 1746~1826), 〈베드로 사도의 회개〉, 1823~25년경, 유화, 29×25.5 cm, 필립스 콜렉션, 워싱턴 사도 베드로 |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사도 베드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이 고백위에 주님은 친히 교회를 세우셨다. 그 분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다. 복음 안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하고 구주로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교회이다. 건물이 화려하고 웅장해도 “주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의 터 위에 세워지지 않는 교회라면, 그것은 한 낱 군중의 모임에 불과하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은 참된 교회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다. 영세무궁토록 변함없는 교회의 원리다. 순박한 어부 바요나 시몬의 위대한 신앙고백에 주님의 마음은 설레었을 것이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그 분의 거룩하신 빛 아래 죄인임을 깨닫는 자들은 반석이요, 참된 교회이다. 갈릴리 출신의 시몬 갈릴리 벳새다에서 출생한 시몬은 전형적인 유대인이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부친인 요나와 모친 요안나의 슬하에서 성장한 시몬은 형 안드레와 함께 가난하지만 건강한 삶을 살았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처럼 회당에서 성경을 배웠고 장성하면서 부친의 업을 따라 어부노릇을 하였다. 예수님보다 훨씬 더 연장으로써 주님을 만나기전 시몬은 이미 아내를 맞이한, 한 가정의 충실한 가장이기도 했다. 때마침 400여 년간의 긴 침묵을 깨우는 요단강가의 세례요한의 외침은 메마른 심령을 해갈하는 단비였다. 또한 로마의 통치 아래 힘들고 가난한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한 가닥 소망이 큰 위로였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마음이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진 자들에게 세례요한의 외침은 어둠을 깨우는 빛이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성령의 큰 감동하심으로 예수님의 나아오심을 환영하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머리 위에 머물러,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하늘이 친히 나타내셨다.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요한의 제자인 안드레는 스승의 말을 듣고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주님을 좇았다. 메시아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였다. 스승 세례 요한에 대한 연민도 체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끌리듯이 주님을 따라나섰다. “와 보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함께 거하며 안드레는 한껏 들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와의 만남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감격의 도가니였다. 형제 시몬을 찾아 주님을 뵙도록 하였다. 예수님께서 자상하고 사랑스런 눈길로 시몬을 바라보시며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라고 하셨다. 너무나 엄청난 말씀이기도 했지만 안드레와는 달리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또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인지도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는 가정이 있었기에 내심 결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여전히 고향에 돌아와 고기를 잡았으나 마음은 허탈했다. 어느 날 안드레와 함께 밤새 그물을 쳤으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빈 그물을 씻고 있을 때,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호숫가로 주님은 찾아오셨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다. 만선이 되어 배가 가라앉을 정도였다. 갈등하던 마음은 곧 행함으로 이어졌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5:10) 하시니, 이들 형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완덕으로 나가는 제자의 길 충성스럽고 단순한 성품의 시몬이 베드로가 되기까지는 제자훈련 과정이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지만, 아직은 애굽의 사상과 습관이 몸에 젖어있는 까닭에 그에게도 제자의 도를 배우는 과정은 필수였다. 3년간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주님의 인격을 보았고, 진리의 말씀이 제자의 삶속에 육화되는 과정을 지나야만 했다. 그 길은 좁은 길이요, 완덕으로 나가는 시작이요, 거룩에 이르는 새로운 출발이었다. 주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수제자 베드로, 그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변화산의 황홀함을 나타나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주님의 심적 고통을 나타나실 때도 함께 했던 제자이다. 그러기에 그의 충성심 또한 다른 제자들을 능가하고 있다. 스승을 생각하는 열정이 지나쳐 말고의 귀를 베어버린 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주님의 뒤를 따르며 밤새도록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지킨 자는 누구였던가. 그러나 그에게도 통탄할 실수는 있었다.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라고 장담했으나, 가야바의 뜰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의 배반으로 한없는 통회의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반석이 되기까지 치러야 할 시험이었다. 그것은 바울의 고백대로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었다(고후1:9). 주님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거룩에 이르는 길은 반드시 자기부인, 자아상실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갈릴리 호수가의 상심한 제자들을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 그것은 더없는 위로였다.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주님이시다”라는 말을 듣자마다 베드로는 곧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지체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주님과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는 반사적인 행동은 회한과 감격이 교차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느냐?”는 세 번의 물음 앞에 “주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대답이었다. 어느 것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일 것이다. “장차 게바라 하리라”는 주님 말씀대로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반석이었다. 동족의 핍박과 시대의 관원들 앞에서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전함으로써 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사형을 하루 앞둔 한 밤중, 깊은 감옥에서 착고에 다리가 묶인 채, 천사의 도움으로 옥에서 나오자 교회는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이후 로마로 간 베드로는 로마교회 성도들의 권유에 의해 마지못해 서남쪽을 향해 로마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대적 박해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반대편에서 주님은 로마를 향해 오셨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때 주님은 “나는 네가 버리고 가는 로마의 영혼들을 위해서 로마로 간다”고 말씀하셨다. 제자는 충격 속에 그 길로 돌아가 장렬한 순교를 하였다. 전승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똑바로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을 입었으니 내 머리는 땅을 가리키고 다리는 하늘을 향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똑 바로 달릴 자격이 없으니 십자가를 돌려서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매달아 주십시오.”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리고 나서도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똑바로 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은 홀로 바로 달리실 분이십니다.” 주님의 황송한 십자가의 죽으심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거꾸로 달리기를 스스로 자청했을 것이다 마사치오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Masaccio, Crucifixion of St Peter 1426, Tempera on panel, 22 x 31 cm, Staatliche Museen, Berlin |
출처 : 모세골
글쓴이 : 모세골 원글보기
메모 : 감사, 오랫만에 들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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