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이해 – 하나님의 의
율법의 의와 하나님의 의
예수님은 마5:20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무엇이고,
천국에 들어가는 제자들의 더 나은 의는 무엇인가?
로마서10:1-6의 말씀을 보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여기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3절의 자기 의이고,
5절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다.
그리고 제자들의 더 나은 의는 3절의 하나님의 의이고,
6절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대표적인 바리새인이었으므로
예수님을 만나 복음의 비밀을 알기 전에는
자기 의, 즉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만 알았지만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알고 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
바울은 특히 로마서를 통해 이 하나님의 의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 의는 하나님을 믿으매 의로 여기신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로마서4:2-3)
여기서 2절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5절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일로 표현하고 있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여기서도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는 것으로 의로운 것이 아니고
믿는 자를 의로 여기신다고 하고 있다.(롬1:16-17, 3:22, 26, 30)
그러면 의로 여기신다는 무엇인가?
바울은 로마서8:29-30에 구원의 과정(서정)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신학마다, 교파마다, 교단마다
나름대로 구원의 서정을 7단계, 9단계, 10단계로 말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서정은 이 말씀이다. 세 가지 단계이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자, 즉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을 부르신다.
부르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다.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
구원의 과정이다.
여기서 의롭다 하시는 것은 두 가지다.
의롭다고 여기시는 稱義(칭의)가 있고 실제 의로워지는 得義(득의)가 있다.
이 과정을 아브라함을 통해 적용해 보자.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창세기12장에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창12:1-6)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이 그에게 처음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것과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과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을 주시면서 그를 부르셨다.
그리하여 그 지시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 단을 쌓은 것이 그의 출애굽이고,
소명이고 부르심이다.
그후 10년이 지나 두 번째 나타나신 것이 창세기 15장이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1-6)
부르실 때에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했는데 그 후 10년이 지나
두 번 째 나타나셨을 때까지도 자식을 주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리운 자를 상속자로 삼겠다고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하늘의 별을 보여 주시면서 네 몸에서 날 후사가 그와같이
많을 것이라고 다시 약속하신다.
이 때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칭의다.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단계이다.
이 칭의와 실제 의로워지는 득의의 단계를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4:9-11)
창세기 15장에서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 무할례시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할례를 받은 것이 무할례시에 의롭다 여겨 주신 것을 인친 것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인을 쳤다는 것이 실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득의다.
창세기 17장을 보자.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17:1-10)
여기 17장에서 99세에 세 번 째 나타나셔서
완전하라고 하셨다.
열국의 아비가 된다고 하신다. 가나안 일경을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할례를 받게 하신다.
그리고 이름도 이때 새이름을 주셔서 아브라함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삭을 주어 100세에 낳게 하신다.
여기서 할례 받는 것이 곧 인친 것이라 하셨다.
85세에 두 번 째 나타나셔서 하늘을 별을 보여 주시면서 네 몸에서
날 후사가 그렇게 많을 것이라는 것을 믿은 것을 의롭다 여기신 그 믿음을
인쳐서 실제로 의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이름도 받고, 이삭을 받고, 완전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그후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후 구약 성도 얼마간이 예수님을 따라
부활에 이르므로 영화롭게 된 것이다. (마27:51-53, 요17:1, 5, 행3:13-15)
이렇게 율법에 정통했던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율법과 복음의 관계, 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의 관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와
더 나은 제자들의 의의 관계를 아브라함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칭의 이후의 믿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칭의에 대한 오해이다.
칭의는 단순한 한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 칭의 이후 득의가 될 때 까지 계속 칭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칭의 이후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라.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4:17-22)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한다.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믿었다고 한다. 백세나 되어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이 견고해졌다고 한다.
또한 그것을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고 이러한 계속되는 칭의의 믿음이 있으므로
하나님이 할례를 통해 그 믿음을 인치고 의롭다 하신 것이다.
함께 동행했던 사라에게도 같은 과정을 걷게 하셨다.(창17:15-16, 히11:11-12)
믿음과 순종
이러한 하나님의 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믿음과 더불어 필요한 것이 있다.
히브리서3장을 보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3:18-19)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모형으로 하여 안식, 곧
천국에 들어가려면 믿음과 함께 순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로마서6장을 보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16-2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의에 이른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죄에서 해방되는 로마서 8장의 경험이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것은 믿음과 순종의 결과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믿음장에서 똑같이 믿음과 순종을 말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11:8-19)
예수 그리스도의 의
이러한 하나님의 의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후1:1)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라고 하고 있다.
로마서 1:17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한다.
복음은 그의 아들의 복음이다.(롬1:9)
복음은 복된 소식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신데,
이 하나님의 의가 형상을 입고 예수님으로 오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단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은
곧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와 연합하는 것이다. (롬6:3-5)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님께 접붙임을 얻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얻는 길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
할례를 받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나 차별이 없다.(롬3:29-30,22,1:16)
아브라함은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모두에게 믿음의 조상이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롬4:10-1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보다 더 나은 의를 얻자.
그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의가 아니고, 자기 의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하여 그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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