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에게는 각각 다른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 목마름은 우리 인생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
부유하게 살고 싶은 마음,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전도사와 결혼하고 나니까 교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또 부흥회를 인도하는 동안은 많은 성도들이 살아서 일어나고 회복하고 강건해지기를 기대하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저는 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고, 남이 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해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은퇴하고 나서 나의 마음이 남아있는 목마름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들도 다 장성해서 각각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나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저희들도 열심히 목회를 하여 은퇴를 하여서 노후도 걱정 없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의 문제는 자녀들에게 맡기고, 우리 부부만 즐겁게 노후를 보내면 됩니다.
두 사람이 건강하게 살면 되겠지요.
간혹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부부는 그래도 모범적인 부부가 되어 자녀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괜찮은 부모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목마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목마름이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목마름이 되었습니다.
어떤 목마름이 있어서 그것이 해결되도록 기도하고 매달리고,
그리고 사방으로 그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 하던 시기가 그립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직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가나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지만 하나님만은 잊혀지고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광야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하나님만은 계셨는데,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었는데,
가나안에는 그런 것조차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그럼 나는 어느 것을 택하고 싶을까요?
하나님이 계신 광야? 아니면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
저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나안에서조차,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남은 자의 생활인 것입니다.
가나안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실 수 있을까요?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부르기 싶지만 가나안에서는 “각자 자기 소견대로 사는”
현실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하나님을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목마름이 그리웠습니다.
광야에서도, 가나안에서도 바벨론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으로 인하여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사모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고 모두가 하나님을 찾지 않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소원으로 가득 찼었던 사람입니다.
저는 그러한 목마름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것은 목마름에 대한 기름부음이며 이러한 목마름이 있는 한,
가능성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목마름조차 없다면 우리는 이미 끝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영혼의 무지개 > 스크랩 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르가우 성채 교회 (0) | 2017.08.31 |
---|---|
[스크랩] 우주속의 나 (나는 지극히 작지만 소중한 존재입니다!) (0) | 2017.04.29 |
비텐베르그 성채 교회 (0) | 2017.04.26 |
루터의 성채 교회 (0) | 2017.04.26 |
지옥 (0) | 2017.04.15 |